TCN 117호 2024년 6월 28일 A면

28.06.2024 Views

34 | 칼럼 JUN 28 2024 인생의 참 주인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래도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 도 없고 될 능력도 없다. 인생의 문제는 그것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사인이다. 살면서 우리 인생 속에는 정말 일어나질 않길 바라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네 가지다. 건강, 자녀들, 배 우자(가정), 재산(직업)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들 에 문제가 생기면 삶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모든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다 사용한다. “할 수 있는 한 내가 지키겠다는 것” 은 내가 내 인생에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되어 사 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 길 간절히 바래도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인생이다. 우리 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도 없고 될 능력도 없다. 인생 의 문제는 그것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사인이다. 이스라엘의 가나라는 동네에 결혼식 중에 가장 중요 한 포도주가 떨어져버렸다. 결혼식에서 포도주는 대체 가 불가능한 품목이다.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보통 7일 간 지속되는데,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는 중간 쯤에 포도 주가 떨어졌다. 결혼식을 망친 것이다. 정말 마주대하기 싫은 현실과 맞딱뜨린 것이다. 주인이 모든 것을 계획하 고 준비했는데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이 혼인잔 치는 영원히 수치와 욕을 먹고 끝날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뒤집히는 일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초청받은 손님으로 그곳에 계셨다.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요2:2)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 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마리아의 생각과 달랐다. “3. 포도주가 떨 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 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 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 다.”(요2:3-4) 예수님은 그 문제에 즉시 개입하지 않으 신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는 말씀만 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이 있다. 예수님이 계신 것 만으로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다. 예수님을 아는 것만으 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복음을 앎으로 구원받지 못 한다.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럼 믿음은 어떻게 표현이 되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 이 믿음의 표현이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 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 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2:5) 이것은 마리 아가 하인에게 한 말이지만 자신이 예수님께 한 말이기 도 하다. “예수님 말씀만 하십시오. 그대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을 왕과 주인으로 우리 인생의 문제 안으로 들어오도록 요 청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뒤흔 드시도록 삶 가운데로 깊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 리아는 예수님께 요청을 하면서 예수님의 어머니의 자 리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의 명령을 듣는 하인의 자리로 갔다. 예수님이 자기 삶에 들어오도록 요청하면서 삶이 뒤 흔들린 것이다. 진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내 삶 속에 끌어들이 고 싶다. 혼자 하고 싶지 않다. 더 깊숙하게 들어와 주셨 으면 좋겠다. 그래서 기도가 깊어지고, 기도가 더 진지해 지고, 기도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문제를 놓고 하나님 과 진지하게 상의한다. (주실 말씀이 없나요? 해 주실 말 이 없나요?) 하나님을 향한 고백도 나오고, 하나님께 약 속을 드리기도 한다. 하나님께 넘치도록 드리고 싶은 마 음도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인생이 뒤틀릴 정도로 깊숙하게 모셔 들인 마리아의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을 주셨다. “9. 연회장 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 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 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 다 하니라.”(요2:9-10)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쁨을 맛보 았다. 이 기쁨은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기쁨이었다. 이 기쁨은 연회장도 모르는 기쁨, 포도주를 마신 사람들도 모르는 기쁨이었다. 포도주 맛에서 나오 는 기쁨이 아니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었다. 우리는 이 기적을 통해서 이루시려고 했던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 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2:11)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 적을 제자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것을 성경에서 표적(signs)이라고 부른다. 표적은 기적적인 일을 통해서 진리가 입증되거 나,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거나,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바라는 것 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표적이 나타나는 것 이다. 기적이 나의 필요를 채우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으로 끝나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기적이 예 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믿는 도구로 사용되 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선포하는 도구가 되길 원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겪는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 셨다.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해결하신다. 문제 앞에 서 예수님이 가장 깊숙하게 간섭해주시길 요청하라. 진 지하게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라. 그리고 그 문제가 예수 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도구 가 되길 위해서 기도하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35 JUN 28 2024 texaschristiannews.com 불쌍히 여기다(have compassion)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마치 목자 없는 양같이 지쳤기에…” 그리스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우리말 신약성경에 ‘불 쌍히 여기다’로 번역됐습니다. 스플랑크나(내장, 애타는 마음, 사랑)에서 유래했는데요. 심장 폐 간 같은 신체 부위를 뜻하면 서 속에 있는 감정을 뜻합니다.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문자 그대 로 몸속 장기로 느껴 가여워한다는 뜻으로, 마태 마가 누가복 음에만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마 14:14)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두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눈먼 사 람 둘을 불쌍히 여겨(마 20:34) 그들이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막 1:41) 깨끗하게 해주셨습니 다. 다시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측은히 여겨(눅 15:20) 달려가 반겼습니다. 영어 성경은 스플랑크니조마이를 ‘해브 컴패션’(have compassion·동정심을 갖다)으로 번역했습니다. 컴패션은 라틴어 쿰(~와 함께)을 파티(시달리다 고통받다)에 붙인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 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 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마 9:35~36, 새 번역)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세상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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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8 2024<br />

texaschristiannews.com<br />

불쌍히 여기다(have compassion)<br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마치 목자 없는 양같이 지쳤기에…”<br />

그리스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우리말 신약성경에 ‘불<br />

쌍히 여기다’로 번역됐습니다. 스플랑크나(내장, 애타는 마음,<br />

사랑)에서 유래했는데요. 심장 폐 간 같은 신체 부위를 뜻하면<br />

서 속에 있는 감정을 뜻합니다.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문자 그대<br />

로 몸속 장기로 느껴 가여워한다는 뜻으로, 마태 마가 누가복<br />

음에만 있는 단어입니다.<br />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마 14:14) 빵 다섯<br />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두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눈먼 사<br />

람 둘을 불쌍히 여겨(마 20:34) 그들이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br />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막 1:41) 깨끗하게 해주셨습니<br />

다. 다시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측은히 여겨(눅<br />

15:20) 달려가 반겼습니다.<br />

영어 성경은 스플랑크니조마이를 ‘해브 컴패션’(have<br />

compassion·동정심을 갖다)으로 번역했습니다.<br />

컴패션은 라틴어 쿰(~와 함께)을 파티(시달리다 고통받다)에<br />

붙인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br />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br />

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br />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br />

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br />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마 9:35~36, 새<br />

번역)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세상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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