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순 - 한국브레히트학회

22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곧 언어능력을 통해 표출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
물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계몽주의 전통에서 인
간과 비인간 사이를 구별해 주는 유일한 속성은 영혼에 있다. 르네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서설에서 이성적 영혼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짐승과 구별되게 해주
는 유일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24) 기독교 전통 및 계몽주의 전통에서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 영혼에 있다면, 이와 달리 골렘은 영혼이 없는 존재이다. 골렘이 영혼이 없다
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언어능력의 결여를 통해 표출되고 있
다. 골렘은 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된 인간처럼 진흙으로 된 신체를 소유하고 있지만,
신의 입김이 제공되지 않은 미숙한 존재이다. 즉 골렘은 인간을 이루는 결정적인 요
소들인 물질과 정신 가운데 물질적인 속성만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이다. 골렘이 이처
럼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되는 이면에는 기독교 전통 및 계몽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이분법적인 사고체계가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결론을 대신하여: 골렘의 현대적 재해석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골렘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골렘창조는 하나님의 인간창조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신성한 제의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골렘에 내포되
어 있던 신비적인 요소는 사라지고, 골렘은 민간전설로 유포되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
가 변화되었다. 즉 골렘은 민간전설을 통해 한편으론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하인
으로서, 또 다른 한편으론 인간에게 위협적인 괴물로서 인식되었다. 골렘 소재는 이
후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도플갱어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20세기 현대에
들어서면서 골렘은 특히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는 비극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본고에서 살펴본 파울 베게너의 영화는 근본적으로 이
러한 시대적인 흐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의 비극을 다룬 영
24)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1997. 143-237쪽, 여
기서는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