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 - 한국뷔히너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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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화음의 엑스터시 *<br />
- 문학과 폭력에 관한 소고<br />
I. 들어가는 말<br />
박은경 (홍익대)<br />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폭력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작게는 가정의 폭력<br />
에서 크게는 국가의 폭력에 이르기까지, 개인에게 닥쳐오는 폭력의 위협은 끝이<br />
없다. 폭력은 자연 속에도 존재한다. 태곳적부터 자연의 폭력에 시달려왔던 인<br />
간, 자연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 써왔던 인간은 이제 거꾸로 자연에 폭<br />
력을 가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연에 가해지는 인간의 폭력은 더 큰 재앙이 되어<br />
인간에게 돌아온다. 또한 인간은 에로스의 광포한 폭력에 휘둘리기도 한다. 1) 인<br />
간은 이처럼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 자연과 성/사랑 등, 숱한 폭력에 내맡겨<br />
진 채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가 종국에는 삶에 종지부를 찍는 타나토스의 피할<br />
수 없는 폭력 앞에 내던져지고 마는 것이다.<br />
폭력과 무관한 개인의 삶이 있을 수 없듯이,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폭<br />
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세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리스 고전주<br />
의는 괴테시대부터 줄곧 이상화되고 미화되어 왔지만 정작 5세기는 전쟁과 권<br />
력투쟁으로 점철된 “폭력의 세기 ein Jahrhundert der Gewalt” 2)였다. 고도로 문명<br />
화되었다는 오늘날에도 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br />
획기적인 기술문명의 발달은 현대 사회에서 폭력을 몰아내기는커녕 거꾸로 가<br />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br />
행된 연구임(KRF-2008-A00155).<br />
1) 예를 들어 죠르쥬 바따이유에게 에로티즘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폭력과 위반의 영역이다.<br />
(죠르쥬 바따이유: 에로티즘. 조한경 옮김, 민음사 1995.)<br />
2) Bernd Seidensticker/ Martin Vöhler (Hrsg.): Gewalt und Ästhetik. Zur Gewalt und ihrer<br />
Darstellung in der griechischen Klassik. Berlin 2006. Hier: S. V.
244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공할 만한 규모의 폭력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야만적 폭력의 정점을 이루는<br />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20세기에 일어났고, 아직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9․11 사<br />
태는 21세기 초에 일어났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br />
다른 한편, 현대에 와서 폭력은 부드럽고 깔끔한 가면 아래 얼굴을 숨기는 경<br />
향이 있다. 문명화가 진행되는 동안 적어도 개인적 차원에서의 물리적 폭력은<br />
점점 더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이제 법과 제도 등 시스템의 폭력, 폭력 행사<br />
권을 독점한 국가의 폭력, 자본과 미디어의 폭력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외적,<br />
물리적 폭력을 축출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개인은<br />
부지불식간에 기존의 지배적 질서와 문화가 휘두르는, 형체도 소리도 없는 거대<br />
한 폭력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br />
모사를 통해서든,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서든, 문학과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br />
현실과 관계를 맺는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초월’하려는 문학 역시 현실과 무<br />
관하지 않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 유토피아적 시공간으로 공중부양하는 문학<br />
은 현실의 참혹하고 비루한 시공간을 역으로 되비쳐준다. 문학은 개인적, 사회<br />
적 차원이나 물리적, 심리적 차원을 막론하고 온갖 형태의 폭력을 끊임없이 묘<br />
사하고, 주제화하고, 비판하거나 성찰해왔다. 전쟁과 같은 폭력의 장면들을 생생<br />
하게 묘사하고 있는 호메로스의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45<br />
잔인무도한 유형, 무형의 폭력이 횡행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폭력은 결<br />
코 무해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미화될 수 없다. 하지만 폭력은 무조건 악이요, 추<br />
방해야 할 대상일 뿐인가? 발터 벤야민은 「폭력 비판을 위하여 Zur Kritik der<br />
Gewalt」에서 폭력의 긍정적 요소에 주목함으로써 폭력에 대한 일면적 시각의 전<br />
환을 유도한 바 있다. 4) 또한 신성과 폭력의 밀접한 연관에 관한 르네 지라르 R.<br />
Girard의 논의 역시 폭력의 양면성에 대한 성찰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5) 문<br />
학에서도 폭력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br />
다. 문학의 대상이자 방법, 그리고 주어진 규범을 무너뜨리고 혁신과 새로운 규<br />
범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는 폭력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br />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술과 문학의 정전 Kanon은 고정된 하나의 형태를 갖는 것<br />
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적 충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정립되<br />
는 산물이라는 논리와도 통한다.<br />
문학과 예술에서 폭력은 흔히 경악, 공포, 고통과 연관되지만, 다른 한편 유혹<br />
과 쾌락의 측면을 지니고 있어 독자를 끌어당기고 매료시키기도 한다. 폭력은<br />
또한 파괴적, 부정적 측면과 더불어 창조와 생성을 촉발하는 긍정적 측면을 지<br />
니기도 한다. 정치적 질서가 되었건, 예술적 규범이 되었건, 하나의 질서가 확정<br />
되면 그 질서는 근본적으로 체계를 유지, 존속시키려는 속성을 갖게 되며, 확립<br />
된 체계를 교란하거나 파괴하려는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국가, 법, 경찰이<br />
그렇듯이 기존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제도적 폭력이 행사되는 것이다. 하지만<br />
어떠한 체계에나 잠재해 있는 폭력적 에너지는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분출되어<br />
형의 폭력의 체험과 형상화는 카프카의 작품들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이다.<br />
브레히트의 “코이너씨”는 「폭력에 대한 조치」에 관해 이야기 하며,
246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폭력에는 이처럼 정체된 시<br />
스템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발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br />
본 논문은 경악과 공포, 고통이라는 부정적인 가치 외에 파괴를 통한 창조와<br />
생성, 정체된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계기로서 폭력이 가지는 양면성에 주목하며<br />
문학과 폭력의 관계를 새롭게 천착하고자 한다.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폭력의<br />
형상화, 폭력의 소재와 모티프에만 시각을 제한하지 않고 문학이라는 언어매체<br />
자체, 문학의 형식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의 요소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br />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21세기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력의 예술적, 문학적 표<br />
현과 묘사는 물론, 폭력을 둘러싼 미학적 담론 역시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br />
변화를 거듭해왔다. 숭고한 것, 추한 것, 그로테스크한 것, 악한 것 등 현대 미학<br />
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개념들과 폭력에 대한 점증하는 미학적 관심은<br />
일정한 연관성을 보인다. 폭력과 문학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천착하고자 하는 본<br />
논문은 먼저 파괴와 창조, 혼돈과 생성, 광기와 이성, 잔혹과 열정이 맞닿는 폭<br />
력의 이중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디오니소스라는 신화적 형상을<br />
탐구하고자 한다.(I) 이를 토대로 근현대 독일문학에서 폭력의 기제가 미적으로<br />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처음 ‘출현’한<br />
디오니소스의 세계가 독일 근현대 문학과 문학 담론에서 어떤 모습으로 ‘귀환’<br />
하는지 그리고 미학적으로 어떤 위치를 점하게 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br />
다.(II) 또한 ‘폭력의 문학’과 ‘문학의 폭력’의 측면을 함께 목도하게 되는 하이네<br />
의 경우를 통해 전복적 언어의 폭력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III) 본 논문은 폭<br />
력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더욱 다양한 접근과 심도 있는 성찰을 촉발하는 계기<br />
가 되고자 한다.<br />
II. 혼돈과 창조 - 전복적 폭력의 태동<br />
1. 신화, 폭력, 문학<br />
서구 문화의 기점인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이미 우리는 폭력의 원형을 만날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47<br />
수 있다.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폭력의 이야기이다. 우라노스 이래<br />
벌어지는 부자간 권력 쟁탈전은 피로 물들어 있다. 옛 신들과 새로운 신들 간의<br />
전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화에서 우리는 신과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신들<br />
과 숱하게 맞닥뜨리게 된다. 6) 신화 속에는 부친 살해, 형제간의 험악한 쟁투, 전<br />
쟁, 자살과 친자살해 등 온갖 종류의 폭력이 망라되어 있다. 폭력으로 점철되어<br />
있는 신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과 세계, 사회의 폭력이 얼마나 근원적인 것인지<br />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폭력의 양면성에 대한 통찰도 얻을 수 있다. 혼돈으로부<br />
터 천지창조로 가는 길목에는 늘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br />
서가 들어서기 위해서는 낡은 세계와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폭력이 개입할 수<br />
밖에 없는 것이다.<br />
신화를 토대로 하는 그리스 문학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br />
귀결이라 하겠다. 그리스 시대에 폭력은 인간의 삶과 본질의 구성요소로 인식된<br />
듯하다. 이는 헤시오도스의
248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리는 가능한 폭력의 유형을 거의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가<br />
시적 폭력이 있는가 하면 두 인물 사이의 쟁론에서 표현되는 언어적 폭력, 한 인<br />
물에 행사되는, 거의 실제적 제압에 상응하는 심리적 폭력과 같은 간접적이고<br />
정신적인 비가시적 폭력도 형상화되고 있다. 7)<br />
현실에서도 그렇듯이 8) 문학과 예술에서 폭력은 특히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br />
있다. 그리스어로 폭력에 해당하는 말은 ‘비아 Biá’로서, 어원상 원래 ‘폭력적 제<br />
압/압도’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프로메테<br />
우스 비극(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49<br />
정치적 권력의 외적 표현 형식으로 파악될 수 있다. 10) 프로메테우스 비극은 폭<br />
력과 권력의 관계를 드러내어주는 ‘폭력의 드라마’인 셈인데, 이는 프로메테우<br />
스가 권력에 굴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고 침묵함으로써 제우스에게 일종의 대<br />
항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br />
2. 디오니소스의 출현<br />
고대의 신화적 형상 가운데 특히 디오니소스의 형상은 폭력의 양면성, 즉 폭<br />
력의 파괴력과 생성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신화적 원형으로서 주목을 끌기에 충<br />
분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12 신들에<br />
속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 뒤늦게 출현하는 “새로운 신” 11)이며, 그리<br />
스 신이면서 이방에서 온 ‘낯선 신’이자 바야흐로 ‘오고 있는 신’이기도 하다. 가<br />
공할 만한 위력을 지녔으면서도 온유한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는 신들이 일반<br />
적으로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에우리피데스의<br />
현존하는 마지막 비극이자 신화적, 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폭력의 한 정점이기<br />
도 한
250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그리스 문학에서 디오니소스의 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에우리피데<br />
스의 극에서 신과 인간, 여성과 남성, 그리스인과 이방인의 관계는 일종의 권력<br />
투쟁의 관계, 폭력으로 점철된 관계이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낯선 신의 힘에<br />
저항하는 권력자 펜테우스는 현존질서를 훼손하고 어지럽히는 광기의 집단에<br />
대해 물리적 폭력으로 기존의 질서를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디오니소스의<br />
잔혹한 응징을 받는다. 디오니소스를 경배하는 테베의 여인들은 맨손으로 동물<br />
들을 갈기갈기 찢어죽이며, 광기에 사로잡힌 아가베는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사<br />
자로 오인하고 ‘도륙’하고 만다. 12)<br />
디오니소스의 광란의 축연은 일상성과 질서가 파괴되는 혼돈의 시간이며, 고<br />
막을 찢는 소음으로 가득한 난장, 선혈이 낭자한 도살의 장이다. 하지만 다른 한<br />
편 폭력이 횡행하면서도 인간과 자연, 동물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축제의 장, 포<br />
도주와 피리 소리에 취해 환희의 춤을 추는 낙원과도 같은 곳이기도 하다. 모든<br />
형식과 경계, 차이가 제거되는 축제의 장인 것이다. 성별, 나이, 지위나 신분, 인<br />
종과 문화의 경계가 모두 사라져버리는 지대, 성적 통제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br />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일종의 ‘해방구’인 셈이다. 열광적인 춤과 떠들썩<br />
하고 부조화하면서도 유쾌한 음악, 동물적․원초적 본능과 광기의 발산이 있는<br />
곳이다. 공격성, 잔인함, 폭력성은 이 전복적 공간의 핵심을 이룬다. 13) 광란의 유<br />
희 속에서 여신도들이 휘두르는 튀르소스는 넘치는 생명력과 폭력적 무기로서<br />
의 양면을 지닌다.<br />
이렇듯 디오니소스의 세계는 새로운 질서의 창조적 계기가 되는 혼돈과 폭력<br />
을 내포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적, 사회적, 성적 질서 그리고 자연적 질서마저도<br />
12) Vgl. ebd., S. 538f.<br />
13) 죠르쥬 바따이유는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51<br />
폭력에 의해 와해되고 전복되고 만다. 하지만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뒤흔들어놓<br />
는 가운데 폭력은 새로운 질서가 정립될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혼돈을 거쳐 새<br />
롭게 정립된 질서는 또다시 폭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br />
이처럼 그리스 신화와 문학에서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전복시키는 막강한 에<br />
너지를 풀어놓으며 아름다움의 세계, 온유한 미적 조화의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br />
계, 즉 끔찍한 것, 흉한 것, 그로테스크한 것 등 부조화와 불협화음의 세계를 환<br />
기시키는 이 ‘늦둥이 신’ 디오니소스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br />
III. 불협화음의 엑스터시 - 폭력의 미적 권리획득<br />
1. 디오니소스의 귀환<br />
고대 그리스에 ‘출현’한 디오니소스의 형상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예술<br />
에서 끝없는 변주를 거듭해왔다. 늘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신 der kommende<br />
Gott” 14)인 디오니소스는 각 시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br />
독일문학에서 디오니소스와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본격적인 ‘귀환’은 특히 낭만<br />
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세기전환기와 20세기의 작가들, 예를 들어 토마스<br />
만의 작품(특히
252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연구서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15) 여기에서는 그보다는 디오니소스로 대변되<br />
는 세계가 현대로 가는 경계에서 미학적으로 새롭게 부각되는 이유와 배경을 탐<br />
색하고자 한다. 니체가 규정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개념은 사실상 그리 독창적<br />
인 것이 아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낭만주의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이미 규정해놓<br />
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 자신이 매우 높게 평가한 하이네와<br />
의 연관성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렇듯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니체의 개념<br />
규정은 독창적 사유라기보다는 “발견”의 의미가 크다. 16)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br />
것이 본격적으로 ‘귀환’하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하이<br />
네는 더 나아가 “낭만적 세계상의 디오니소스적 파괴” 17)를 노렸다.<br />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폭력은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태초의 신들<br />
의 권력 쟁탈전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은 폭력을 통해 질서를 정립한다. 구약의<br />
신 역시 폭력의 독점을 고집하며, 이 형상에 이미 법치국가의 폭력 독점으로 가<br />
는 길이 예비 되어 있다. 18) 하지만 폭력을 통해 정립된 질서는 영구한 것이 아<br />
니다. 권력자들의 폭력에 대항하는 무력한 자들의 폭력에 의해 기존의 질서는<br />
뿌리째 흔들리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자들의 폭력은 정당화되며, 그들이<br />
설령 폭력행사를 포기하더라도 이는 그 정당성의 극치일 따름이다. 19) 하지만 권<br />
력이 없는 자들, 무력한 자들의 폭력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며, 다르게 표출된<br />
다. 그들은 “되받아치고 마구잡이로 치고 달려든다. 분노에 차서. 화가 나서 물<br />
불을 가리지 않고.” 20)<br />
권력자들의 폭력은 정당화되고 무력한 자들의 폭력은 부당한 것으로 규정되<br />
는 단순한 규칙은 그대로 문학과 예술에서도 적용된다. 예술적 수단을 통한 폭<br />
력의 미적 연출은 유희적 발산이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베르<br />
15) Max L. Baeumer: Dionysos und das Dionysische in der antiken und deutschen Literatur.<br />
Darmstadt 2006.<br />
16) Ebd., S. 337.<br />
17) Ebd., S. 287.<br />
18) Vgl. Jürgen Wertheimer: Ästhetik der Gewalt? Literarische Darstellung und emotionale<br />
Effekte. In: Julia Dietrich, Uta Müller-Koch (Hrsg.): Ethik und Ästhetik der Gewalt.<br />
Paderborn 2006. S. 9-25. Hier: S. 11.<br />
19) Vgl. ebd., S. 12.<br />
20) Ebd., S. 12.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53<br />
트하이머의 테제 21)는 설득력이 있다. 폭력을 공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보여주는<br />
자는 지배의 독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력한 자들에<br />
속하는 여성들의 폭력에 곱지 않은 시선이 모아지는 것도 이러한 권력관계에서<br />
설명될 수 있다. 유디트나 살로메, 클뤼템네스트라 혹은 맥베트 부인이 “불복종<br />
의 괴물들로” 22) 묘사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br />
폭력의 윤리화와 미학화는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미학<br />
적인 것을 둘러싼 논쟁 뒤에서 현실의 질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폭력을<br />
표출하는 극단적 형태의 예술은 집단적으로 합의된 현실의 그늘과 침묵의 경계<br />
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23) 폭력, 경악스럽고 끔찍한 것은 미의 영역, 미학의 영역<br />
에서 끊임없이 배제되고 억압되어왔다. 하지만 유르겐 니라트 Jürgen Nieraad의<br />
지적처럼 오늘날의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으며, 실은 이전에도 결코 아름<br />
다웠던 적이 없었다. 24) 끔찍한 것은 아름다움의 이면이요, 끔찍한 것의 끊임없<br />
는 억압이 바로 아름다움인 것이다. 25)<br />
문학은 세계를 텍스트화하고 현실을 구성하는 형식이며, 따라서 다른 모든 상<br />
징체계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지배를 받는다. 권력은 폭력묘사의 상징체계를 통<br />
제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언사도 통제한다. 26) 문학적 폭력의 상<br />
상력에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는 권력은 폭력을 표현하는 상징을 통제하<br />
고 검열하는 데 전력투구하게 된다. 자신이 행사한 폭력이 텍스트 세계의 상징<br />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규정하거나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권력 자<br />
체인 것이다. “권력은 하나의 단순한 속임수를 통해 오랫동안 이에 성공했다: 2<br />
천년 이상 동안 자동화된 예술과 미(美)의 결합을 통해서.” 27) 문학사적으로 거의<br />
모든 시기의 문학에서 폭력의 상상력은 실제로 존재했다. 하지만 이론적 현상으<br />
로는 아름다운 것의 상위담론에 의해 주변화 되었다. 현실적 폭력체험의 문학적<br />
21) Ebd., S. 20.<br />
22) Ebd., S. 12.<br />
23) Vgl. ebd., S. 15.<br />
24) Vgl. Jürgen Nieraad: Die Spur der Gewalt. Zur Geschichte des Schrecklichen in der<br />
Literatur und ihrer Theorie, Lüneburg 1994. Hier: S. 10.<br />
25) Vgl. ebd., S. 11.<br />
26) Vgl. ebd., S. 30.<br />
27) Ebd., S. 25.
254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주제화 여부, 주제화 방식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각 시대의 문학담론과 철학<br />
적, 미학적 상위담론이다. 28)<br />
폭력은 끔찍한 것, 혐오스러운 것, 악한 것, ‘추한 것’에 속했고 이로써 ‘아름<br />
다운 예술’의 개념에 따르면 존재론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아름다운 것과 선한<br />
것의 정당화가 필요한 상관개념으로, 따라서 미적인 것 자체의 경계현상으로 파<br />
악된 것에 속했다. 29) 칼 로젠크란츠 Karl Rosenkranz의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55<br />
Opfers” 33)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즉, 고통 받는 영웅/주인공의 몰락 속에 신들,<br />
신, 혹은 관습의 더 높은 질서가 체현되는 것이다. 문학에서 중세에서 근대로,<br />
즉 상징의 언어가 표현의 언어로 본격적으로 전환되는 것은 18세기 후반에 이르<br />
러서이다. 특히 슈투름 운트 드랑의 텍스트들은 거세, 살해와 자살에서 식인행<br />
위에 이르기까지 당대 관객/독자에게는 충격적인 끔찍한 수난의 이야기와 극단<br />
적인 폭력의 상상력으로 가득한데, 이는 보편적인 것의 현현이나 질서를 투시하<br />
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주체 자신과 사회적 질서에 대한 그의 고통을 표현한<br />
다. 34)<br />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주의가 정신적인 것의 감성화로 나아가 무신론적 유물<br />
론으로 귀착된 반면, 18세기 말 독일 미학과 문학 이론은 허무주의적 위협에 대<br />
한 방어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독일의 후기 계몽주의, 고전주의에서는 회의,<br />
의미상실, 허무주의에 대한 방어전이라는 맥락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하는<br />
예술작품의 이론이 동원되는 것이다. “폭력의 경험에서 나타나는 반이성적인 것<br />
이 미적 가상 속에서의 화해를 거부하면, 그것은 숭고의 이론으로 수용되어 무<br />
화될 때까지 처리되었다.” 35)<br />
바이마르의 화해적 사고와는 달리 “쾌적한 무서움”이라는 구상으로 영국과<br />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덕적 제한으로부터 폭력의 상상력의 해방, 즉<br />
윤리에서 미학을 분리하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8세기에서 19세<br />
기로의 전환기에 인간과 삶의 어두운 이면을 탐구하는 ‘검은 낭만주의’가 발언<br />
을 시작한다.<br />
현대문학은 아름답지 않은 것의 도발적 주제화를 통해 폭력 및 경악의 상상<br />
력을 종교, 도덕, 윤리와의 관련에서 확실하게 분리시키고 기호학적 충동주체의<br />
실현, 즉 아름다운 열정으로서의 “악한 것”의 실현으로 방출한다. 문화적 상징체<br />
계에 의해 억압되고 배제된 것이 검열 없이 발산되는 것이다. 36) 폭력의 상상력<br />
의 그러한 발산과 미학적 평가절상은 20세기의 아방가르드 프로그램에서 중심<br />
33) Vgl. ebd., S. 14.<br />
34) Vgl. ebd., S. 14f.<br />
35) Ebd., S. 15f.<br />
36) Ebd., S. 16.
256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적 역할을 했고 폭력의 상상력이 단지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으로서만 문학적 가<br />
치를 지녔던 전통적 상징예술에 대해 그 폭발력을 거듭 입증했다. 37)<br />
현대로 가는 길목에서 이루어지는 디오니소스의 귀환은 끔찍한 것, 잔혹한<br />
것, 파괴적인 것의 귀환이자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의 귀환이기도 하다.<br />
그리스 문학에서 이미 묘사되고 표현되었던 것,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탐구되고<br />
형상화되었던 미적 폭력의 형태가 또 다시 전면에 대두되기 시작하는 것이다.<br />
고전주의가 이상화한 고대 그리스의 이면, 즉 아폴로적인 조화, “숭고한 단순함<br />
과 고요한 위대함”의 이면에 대한 발견이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br />
는 내용뿐만 아니라 언어와 형식의 차원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예술시대’의 종<br />
말을 선언한 하이네의 경우 순화된 미적 언어가 아닌, 폭력의 현실을 체현하고<br />
있는 불협화음의 공격적 언어/문체와 형식이 눈에 띄게 관찰된다.<br />
IV. 전복적 언어의 폭력: 하이네의 경우<br />
현대의 복잡계 이론에서 운위되는 ‘자생적 조직화’의 개념은 끊임없이 파괴와<br />
생성의 과정을 거치는 예술과 예술형식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새<br />
로운 예술형식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예술형식을 파괴하는 혼돈의 상태<br />
가 전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하이네의 경우를 통해 독일 현대<br />
문학에서 미적 폭력이 갖는 이러한 창발적 기능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끔찍<br />
한 것’의 권리획득이 이루어지는 현대 미학과의 연관 속에서 관찰해볼 때 미적<br />
폭력을 통해 혁신적인 예술적 질서의 창조를 이끌어내고자 한 하이네의 전략은<br />
매우 흥미롭다. 기존의 봉건적 정치 질서뿐만 아니라 기존의 문학 경향들, 즉 전<br />
범으로 여겨지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결산을 요구하는 하이네에게 있어서<br />
37) 니라트에 따르면 전쟁과 집단학살이라는 20세기의 폭력의 경험은 문학적 폭력묘사의 지금<br />
까지의 유형들(상징적 희생자-이야기, 직접적 고통의 표현, 아름다운 악한 것의 자유로운<br />
힘)을 무력하게, 소진되었거나 더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폭력의 극단<br />
적 형태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계속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것’<br />
의 표현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Vgl. Jürgen Nieraad: Die Spur der Gewalt.<br />
S. 17)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57<br />
디오니소스로 대변되는 세계는 전통의 전복과 파괴라는 의미를 지닌다. 폭력의<br />
현현으로 인식되는 디오니소스, 이 낯설고 매혹적인 신의 전복적, 파괴적 성격<br />
에 내포된 삶의 긍정, 생동하는 힘을 불러내어 새로운 정치적, 예술적 질서를 창<br />
출하고자 한 하이네의 열망을 짚어보는 한편 강력한 논쟁가 der Polemiker인 하<br />
이네의 언어가 갖는 공격성과 폭력성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br />
언어 자체에도 분명 폭력이 내재해 있다. 그리고 때로는 문학과 예술 자체가<br />
상징적, 은유적 차원에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클라우스-페터 필리피<br />
Klaus-Peter Philippi는 “문학 속의 폭력 Gewalt in der Literatur”과 “폭력으로서의<br />
문학 Literatur als Gewalt”을 구분하고 있다. 38) 폭력은 문학의 내재적 요소, 문학<br />
의 주제(전쟁, 살인, 온갖 종류의 살해, 간통 등)로서 중요하다. 도덕적 금기의 파<br />
기, 이와 함께 비판적 질문의 형태를 취하는 이러한 금기들 자체가 문학적-미학<br />
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문학 속의 폭력”). 하지만 문학 자체는<br />
(일정한 한도 내에서) 폭력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기능에서 폭력을 행사하거<br />
나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권력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폭력으로서의 문학”). 39)<br />
‘세계’를 위한 고유의 특수한 기호 및 해석체계로서의 문학은 기호적, 은유적 폭<br />
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은유적 폭력으로 그 대상을 제압하고자 하는 것이다. 40) 하<br />
이네의 예를 통해 우리는 ‘문학 속의 폭력’과 ‘폭력으로서의 문학’의 현상을 한<br />
꺼번에 관찰할 수 있다.<br />
하이네의 작품에서 디오니소스의 개선행진이나 사티로스, 실렌 등의 형상은<br />
지배 질서를 위협하는 폭력의 세계를 환기시킴과 동시에 미적 예술의 차원에서<br />
도 악, 추함 등 억압되고 배제된 세계를 환기시킨다. 예를 들어
258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무하는 바쿠스의 축연으로 묘사한다. 41) 또한 「이월 혁명 Die Februarrevolution」<br />
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주체들과 지롱드당원들, 즉 폭력적인 혁명의 전위대를<br />
“파괴욕에 사로잡힌 무시무시한 열광”을 전염시키는 바쿠스의 여신도들에 빗대<br />
어 “머리를 풀어헤친 단두대의 광녀들”로 묘사하기도 한다(DHA XIV, 290). 그<br />
런가 하면 하이네는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59<br />
때문에 그가 감수해야 했던 폭력에 다름 아니었다. 그밖에도 하이네는 그의 동<br />
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지배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내맡겨져 있었다.<br />
정치, 사회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하이네는 일찍부터 방어<br />
태세를 갖춰야 했다. 그는 무력한 문인의 단 하나의 무기, 즉 펜을 들어 날렵하<br />
고 날카로운 솜씨로 폭력에 대항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시인이었지만 그에게는<br />
위력적인 언어가 있었다. 하이네는 칼, 창, 몽둥이, 도끼, 기요틴의 칼날 - 무시무<br />
시한 무기로서 그의 언어를 구사했다. 그의 날선 언어는 그대로 골리앗에 맞서<br />
는 작지만 매서운 돌멩이가 되었던 것이다. 42)<br />
하이네의 수사(修辭)가 갖는 공격성과 폭력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br />
있다. 예를 들어 프로이센의 폭압적 검열에 대한 자기방어, 대항폭력으로 볼 수<br />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하이네의 텍스트 곳곳에서 복병처럼 튀어나오는<br />
위트, 풍자 및 아이러니와 폭력의 연관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이네의 위트<br />
와 풍자는 “필요불가결한 방어수단”이자 “공격용 무기”(DHA X, 241)이기도 하<br />
다. 하이네는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치밀한 전략 속에서 의식적으로 자<br />
신의 무기를 사용했다. 「볼프강 멘첼의 독일 문학 Die deutsche Literatur von<br />
Wolfgang Menzel」에서 하이네는 “옆구리에 검을 차는 것이 더 이상 예법에 맞지<br />
않게 된 이후로 머릿속에 위트를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나쁜,<br />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대”에는 사람들이 “풍자 Satyre”라 칭하는 “공격용 위트<br />
Angriffswitz”(DHA X, 241)가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도 더 이상<br />
작은 지상의 지배자들의 욕망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 그들은 벌 받지 않고 너희<br />
를 조롱하며 그들이 탄 말들은 너희가 뿌린 씨앗들을 짓밟아버린다. [...] 부와 폭<br />
력의 오만으로부터 너희를 보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오로지 죽음과 풍자<br />
밖에는.”(DHA X, 241)<br />
42) 그라팽의 말대로 “아주 일찍부터 하이네는 이 상황, 즉 스스로 방어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br />
몰렸다고 여겼다. 그것도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서만. 그의 시구 속에 검을 쥔 기사의 상이<br />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그럴 것이 그는 좋은 칼날, 즉 그의 탁월한 독일 말의 기예를 지<br />
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이네는 “자의식에 찬 언어예술가”에서 “방어능력을 갖춘 시인”<br />
으로, 즉 “기사답지 않은 시대의 ‘상처 입은 기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Pierre<br />
Grappin: Heines lyrische Anfänge. In: Internationaler Heine-Kongreß Düsseldorf 1972. Hrsg.<br />
v. Manfred Windfuhr. Hamburg 1973. S. 50-78. Hier: S. 77f.)
260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같은 글에서 하이네는 멘첼의 신랄한 비난으로부터 요한 하인리히 포스<br />
Johann Heinrich Voß를 두둔하고 있다. 옛 농민전쟁 시대의 거대한 투검을 휘두<br />
르며 프로테스탄티즘을 옹호하는 그의 ‘폭력적’ 투쟁을 근본적으로 긍정적인<br />
“성상 파괴 Bilderstürmerey”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당파[기사와 성직자들<br />
의 당파]는 너무도 막강해서 연약한 장식검으로는 맞서 싸울 수 없다. 그리하여<br />
우리는 농민전쟁 시대의 전투검을 다시 파내어 그것으로 치고 덤빈 거친 니더작<br />
센의 농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DHA X, 245) 하이네가 어떤 적과의 투쟁에<br />
연대하고 있는지 여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막강하기 짝이 없는 당대의 권력,<br />
그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련된 장식검이 아니라 조야하고 원시적이지만<br />
위력적인 무기가 필요한 것이다.<br />
때로는 아이러니가 전혀 담기지 않은 진지하고 격정적인 어조로 “인류의 해<br />
방전쟁에서 싸운 용감한 병사”(DHA VII/1, 74)였음을 고백하기도 했던 하이네는<br />
“훌륭한 프로테스탄트의 전투용 도끼”(DHA VII/1, 147)를 마음껏 휘두를 줄 알<br />
았다. 그는 자신의 “잘 알려진 타격들”에서 “루터의, 레싱의, 그리고 포스의 동<br />
지”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자신은 “이 영웅들의 진지함을 가지고 옛<br />
도끼를”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럴 것이 적들의 모습이 너무 하<br />
찮고 우스꽝스런 데다 자신은 “약간 오일렌슈피겔 같은 천성”을 지니고 있어서,<br />
“익살을 가미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DHA VII/1, 74) “하지만 내가 미리<br />
웃음 짓는 꽃들로 내 도끼를 휘감아 장식했다고 해서 저 두엄 뒤집어쓴 황소들<br />
의 머리를 내려치는 강력한 힘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DHA VII/1, 147).<br />
방어와 공격을 위한 무기로서의 언어를 통해 하이네는 중요한 사안을 대변하<br />
는 집행자, 때로는 참수자의 역할을 떠맡는다. 파른하겐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br />
서 하이네는 플라텐, 그리고 뮌헨의 성직자들의 공격에 대응해야 했던 자신의<br />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뮌헨의 성직자들이 나를 처음 공격하고 내<br />
게 유태인을 처음 거론했을 때, 나는 그냥 웃었습니다 - 그것을 단순한 어리석음<br />
이라 여겼지요. 하지만 내가 체계를 냄새 맡았을 때, 이 우스꽝스런 유령이 점차<br />
위협적인 흡혈귀가 되는 것을 보았을 때, 플라텐의 풍자가 갖는 의도를 꿰뚫어<br />
보았을 때, 출판업자로부터 똑같은 독을 머금고 원고의 형태로 기어 다니는 비<br />
슷한 생산품들의 존재에 대해 들었을 때 - 그때 나는 허리띠를 질끈 매고 가능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61<br />
한 한 날카롭게, 가능한 한 빨리 후려쳤습니다. 로베르트, 간스, 미헬 베어 등은<br />
나처럼 공격당하면 항상 기독교식으로 감내했고, 현명하게 침묵했지요 - 하지만<br />
난 다른 인간이며, 이는 좋은 일입니다. 나쁜 자들이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br />
무자비하고 가차 없이 되갚아주는 사람한테 제대로 한 번 얻어걸리는 것은 좋은<br />
일이지요.” 43) 하이네는 시대의 이러한 쟁투에서 아폴로의 잔인성도 마다하지 않<br />
는다.
262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로이센의 무자비한 검열에 대해 하이네는 막강한 풍자의 형태로 대항폭력을 행<br />
사했다. 그 정점은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63<br />
이 늙고 허약해지자마자 아들들의 손에 맞아죽는 법이다.”(VIII/1, 165) 후예들에<br />
의한 선조들의 무지막지한 살해 - 이것이 문학사의 자취인 셈이다.<br />
이처럼 하이네가 폭력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가동시키고 불협화음의 엑스터시<br />
가 담긴 공격적, 폭력적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낡은 정치질서를 무너<br />
뜨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기존의 예술에 의해 미화되고 이상화된 현실의 거짓<br />
된 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차원의 예술을 출범시키기 위해서였다. 폭력으로 가득<br />
한 삶과 미적 조화로 가득한 예술의 기괴한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264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에 둘 때, 하이네의 ‘폭력적’ 글쓰기가 갖는 의미는 더욱 부각될 수 있다.<br />
폭력의 측면에서 고찰해볼 때 카프카의 글쓰기 역시 하이네의 ‘폭력적’ 글쓰<br />
기와 닮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두 작가 사이에는 시대가 만들어낸 커다란 차이<br />
점이 있다. 하이네의 시야에는 늘 권력이 행사하는 눈에 보이는 폭력이 포착되<br />
었고, 그는 이를 겨누어 자신의 언어의 칼날과 창살을 벼리었다. 하지만 카프카<br />
가 “살인적 문체” 47)를 통해 대응한 권력은 얼굴 없는 권력이고, 그 권력이 행사<br />
하는 폭력 역시 무형의 폭력이었다. 법의 폭력, 아버지로 대변되는 기존질서의<br />
폭력, 부조리한 현실의 폭력에 무력하게 내맡겨진 개인의 고통이 표출되는 것이<br />
다.<br />
V. 나오는 말<br />
폭력적 형식을 통해 폭력의 문제를 첨예화시켜 다루고 폭력의 추한 얼굴을<br />
형상화하여 일찌감치 20세기의 ‘폭력작가’의 반열에 오른 하이너 뮐러는 “글쓰<br />
기 본연의 재미는 정말이지 파국에 대한 욕구이다” 48)라고 말했다. 그의 글쓰기<br />
의 추진력은 무엇보다 “파괴”, 즉 “다른 사람들의 장난감을 망가뜨리는 것”이요,<br />
그는 “부정적 자극들의 불가피성 die Notwendigkeit von negativen Impulsen”을 믿<br />
는다는 것이다. 49)<br />
폭력은 우리를 경악시키는 동시에 매혹시킨다. 직접적인 위협에서 벗어나 있<br />
는 한 우리는 분명 폭력에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폭력과 경악을 형상화하는<br />
47) Bohrer, Karl Heinz: Stil ist frappierend. Über Gewalt als ästhetisches Verfahren. In:<br />
Grimminger, Rolf (Hrsg.): Kunst - Macht - Gewalt. Der ästhetische Ort der Aggressivität.<br />
München 2000. S. 25-42. Hier: S. 39.<br />
48) „Der eigentliche Spaß am Schreiben ist doch die Lust an der Katastrophe.“ Heiner Müller,<br />
Gesammelte Irrtümer, Band 1. S. 55. Z. n. Jürgen Wertheimer: Ästhetik der Gewalt? S. 23.<br />
49) Heiner Müller: Gesammelte Irrtümer, Band 1. S. 124. Z. n. Jürgen Wertheimer: Ästhetik der<br />
Gewalt? S. 23.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엄격한 의미에서의 비극은 자기 존재의 핵심에 자<br />
리 잡은 괴물적 결여를 두려워하는 문명이, 알 수 없고 기형적인 존재에게서 이 두려운 실<br />
재의 이미지를 발견한 뒤에 그를 자신의 문밖으로 내치려고 하는 시도들에 대한 이야기이<br />
다.” 테리 이글턴: 성스러운 테러. 서정은 옮김. 생각의 나무 2007. 239쪽.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65<br />
것, 연출하는 것, 상상하는 것, 보는 것은” 즐겁다. 50) 우리는 “시적 피의 도취”에<br />
빠지기도 하고 “다른 이들의 고통의 스펙터클에 대한 쾌감”을 갖기도 한다. 51)<br />
인간에게 권력에 대한 욕구처럼 폭력, 폭력의 상상력에 대한 욕구 또한 엄존하<br />
는 것이다. 실행되거나 상상된 폭력의 잠재력이 증폭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도<br />
문학과 예술은 가히 “폭력의 상상력의 실험실” 52)이라 할 만하다.<br />
문학과 예술은 다른 어떠한 담론보다 더 끈덕지게 폭력에 대응해왔다. 그런데<br />
문학과 예술에 허용되는 폭력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예술의<br />
자유를 제한하는 법(폭력)과 폭력의 미화 및 무해화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br />
를 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문학과 예술은 줄곧 “빨간불에 신호등을 지난<br />
다” 53). 의식적으로 신호를 위반하고 금기를 넘어서는 “예술의 이 제어되고 계산<br />
된 불복종 능력이 그것을 예측할 수 없이 정직하고 위험스럽게 참된 것으로 만<br />
든다. 규칙과 돌파, 공포와 유희가 예술의 조건이다.” 54)<br />
국내에서는 아직 폭력에 관한 미적 시각이 거의 부재하고 드문드문 표면으로<br />
떠오르는 미적 폭력의 분출 역시 거센 저항에 부딪치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오<br />
늘날 서구사회에서 폭력에 대한 미적 감수성은 식자들 사이의 ‘기본’이, 즉 필수<br />
적 소양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어떤 텍스트가 아직 지극히 극단적일지 모른<br />
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탁월하게 배웠다. 직업상 경악해야 하는<br />
사람들이 깜짝 놀라 항의하거나 아니면 예술가들이 폭력-반란자들로서 달콤하<br />
게 신화화되는 것이다.” 55)<br />
오늘날 ‘폭력’을 둘러싼 논의가 그러한 것처럼 ‘폭력에 관한 미학적 담론’을<br />
둘러싼 논의 역시 공격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br />
지는 않는 듯하다. 56) 일찍이 폭력과 미학을 조건관계로 파악하며 “경악의 미학”<br />
50) Klaus-Peter Philippi: Gewalt in der Literatur - Literatur als Gewalt? S. 34.<br />
51) Jürgen Wertheimer: Ästhetik der Gewalt? S. 13.<br />
52) Ebd., S. 19.<br />
53) Ebd., S. 10.<br />
54) Ebd., S. 10.<br />
55) „Ein Text mag noch so radikal sein: Unsere Gesellschaft hat es trefflich gelernt, damit<br />
umzugehen. Entweder betroffene Proteste berufsmäßig Betroffener oder: süßliche Mythisierung<br />
der Künstler als Gewalt-Rebellen.“ Wertheimer: Ästhetik der Gewalt? S. 19.<br />
56) 21세기에 들어와 폭력의 문제는 미학에서 바야흐로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듯
266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을 설파한 칼 하인츠 보러를 필두로 폭력에 관한 미적/미학적 감수성은 날로 세<br />
련되고 정교화 되고 있다. “폭력의 미학”이 심심치 않게 운위되고 이를 전폭적<br />
으로 지지하거나 동의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57) 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방향<br />
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목부터 논쟁적 성격<br />
을 드러내는 「폭력의 미학?」이라는 논문에서 베르트하이머는 레니 리펜슈탈의<br />
수용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폭력의 엄연히 현실적인 측면을 간과<br />
하고 오직 미적/미학적인 관점에만 집착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br />
베르트하이머가 폭력 현상을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와 관련하여 “레니-리펜슈탈-<br />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흥미롭다. 생산자는 짐짓 순진무구하고 감지할 수 있<br />
을 만큼 매혹된 태도를 보이며(“유혹된 자인 동시에 유혹자”), 수용자인 우리는<br />
공범으로서, 혹은 적어도 흥미를 갖고 생산물을 다룬다는 것이다. 58)<br />
리오타르의 숭고의 미학과 칼 하인츠 보러의 전율의 미학(1978)은 반쯤 경탄하는 섬<br />
세한 감정을 가지고 배경에 서 있었다. 그리고 슬로터다이크는 활달하면서도 넌지<br />
시 비추며 주석을 달았다. ‘새로운 신비’ 혹은 ‘예감의 테러’, ‘현현’과 ‘폭력의 동물<br />
하다.
적 강도’ 등이 운위되었다. 59)<br />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67<br />
베르트하이머는 리펜슈탈을 둘러싼 보러나 슬로터다이크 류의 태도에 대한<br />
자신의 논쟁적 어조를 시인하면서도 “이러한 유형의 지식인이 미적 고광택-테러<br />
의 머무적거리는 반관음증자로서 황홀한 동시에 양심에 꺼리며 이러한 종류의<br />
모든 퍼포먼스 주위를 살금살금 다니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양립감정병존 어<br />
쩌고 떠들어대는 것을 듣는 것이 내겐 점점 더 참을 수 없어진다” 60)고 덧붙이고<br />
있다. 그는 ‘미적인 것’의 미학의 가면 아래 집단학살이 자행된 점을 상기시키<br />
며, 현대사회에서 특히 미적 영역에서 성과 폭력이 연결될 때 저항이 무너지는<br />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드 후작은 그의 환상 때문에 감옥에 앉아있어야 했지<br />
만 이제 사람들은 토크쇼에 앉아있으며, 이제 “지식인 색조의 사디즘은 문화적<br />
기본 장비에 속한다”는 것이다. 61)<br />
브레히트 극의 테제를 계승한 하이너 뮐러가 말하듯 개인도, 큰 그룹의 사람<br />
들도 “위안”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포, 쇼크”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62). 위안<br />
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공포/경악의 도끼질을 통해서만 알몸의 진실/현실에 도달<br />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삶과 예술의 경계가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규정<br />
되기 힘들어지는 가상현실의 시대인 오늘날 환상/상상력이 낳은 괴물이 실제 삶<br />
으로 들어설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따라서 “얼굴 없는 끔찍함 속의 매개된<br />
모든 비유성 뒤에 - 순수한 실제, 알몸 그대로의 현실이 있다는 것” 63)이 간과되<br />
어서는 안 될 것이다. 64)<br />
문학/예술과 폭력에 관한 시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지극히 섬세한 미적<br />
언설로 “폭력의 미학”을 정립하려는 학자들과 여기에 의문부호를 붙이며 적어<br />
도 부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공존하는 상황인 것이다. 문학과 예술<br />
59) Ebd., S. 21.<br />
60) Ebd., S. 21.<br />
61) Ebd., S. 22.<br />
62) Vgl. Heiner Müller: Gesammelte Irrtümer, Band 2. S. 31f. Z. n. Jürgen Wertheimer:<br />
Ästhetik der Gewalt? S. 23.<br />
63) Jürgen Wertheimer: Ästhetik der Gewalt? S. 24.<br />
64) 베르트하이머는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적 폭력 현상을 관찰할 때의 자신의 반응을<br />
관찰하는 것이 호의적인 설득이나 도덕적 설교보다 가치 있다고 말한다.(Vgl. ebd., S. 25)
268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적 규준을 가지고 폭력의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 보러의<br />
접근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예술적 문체/양식 자체 안에 이미 폭력의<br />
상상력과의 친화력이 얼마나 존재할 수 있는지” 65)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상<br />
처를 입히고 뒤흔들어놓는 언사가 좋은 것”이라는 관점에서 “격렬하고 거친” 문<br />
체, “타격, 충격을 주는 문체”를 높이 평가하는 보러에 따르면 “폭력의 주제는<br />
그 형식적 표현이 위대한 예술가가 타고나는, 상처를 입히는 문체와의 친화력에<br />
부합되기 때문에 그토록 자주 예술에 등장한다.” 66) 그는 폭력의 상상력의 현상<br />
으로서의 문체에 대한 두 가지 예로서 클라이스트와 카프카의 산문을 들고 있<br />
다. 폭력의 주제가 특히 두드러지는 두 작가에게서 이 폭력을 바로 문체의 차원<br />
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문학작품의 의미가 클수록 증가하는 [...] 폭력측면의 원<br />
칙적 중요성이라는 테제” 67)는 흥미롭다. 클라이스트와 카프카의 특별한 문체적<br />
유사성은 “치명적” 문체의 구조와 유형으로 설명되는데, 두 작가에게서 “현대의<br />
중요한 작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아연실색케 하는 문체에 대한 원칙적 유사<br />
성” 68)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러는 심지어 “문체에의 의지 Stilwillen”가<br />
“폭력의 주제 자체 die Gewaltthematik selbst” 69)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 이러<br />
한 극단적인 관점은 형식 문제를 도외시하고 문학과 예술의 내용으로서의 폭력<br />
에만 집중하는 제한된 시각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아닐까.<br />
적어도 서구의 현대 문학과 예술에서 폭력은 주제와 형식의 측면 모두에서<br />
더 이상 19세기 초나 20세기 초에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던 도발적 성격을 상실하<br />
고 말았다. 현대 예술은 오히려 요란한 형식파괴를 통해 연명하는 느낌도 강하<br />
다. 우리의 처지를 둘러볼 때 폭력의 현실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세련된 포즈로<br />
매혹적인 미적 폭력을 운위하고 있기에는 도처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폭력이 너무<br />
도 극악무도하고, 거칠고, 조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이네의 전복적<br />
언어에 다시 주목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br />
65) Karl Heinz Bohrer: Stil ist frappierend. S. 26.<br />
66) Ebd., S. 27.<br />
67) Ebd., S. 32.<br />
68) Ebd., S. 39.<br />
69) Ebd., S.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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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br />
Ekstase der Dissonanz<br />
- Eine Studie über Literatur und Gewalt<br />
불협화음의 엑스터시․박은경 271<br />
Park, Eun-Kyoung (Hongik Uni)<br />
Seit eh und je ist Gewalt ein fester Bestandteil der literarischen Thematisierung<br />
und Darstellung. Schon in der antiken Literatur begegnet man Gewalt in jeder Art<br />
und Form. Die vorliegende Studie, die umfassend und erneut über Gewalt und<br />
Literatur reflektieren will, versucht die ‘andere’, nicht negative Seite der ästhetischen<br />
Gewalt zu beleuchten und dem Prozeß der ästhetischen Berechtigung der Gewalt<br />
nachzugehen.<br />
Gewalt ist mit der Macht unzertrennlich verbunden. Durch Gewalt schafft die<br />
Macht Ordnung. Jedoch lockert die Gewalt der Machtlosen die feststehende Ordnung<br />
auf, stürzt sie um und schafft eine neue Ordnung. Der chaotische Zustand, den die<br />
Gegengewalt hervorruft, ist also nicht unbedingt negativ aufzufassen. Auch in der<br />
Literatur wird das veraltete System durch Gewalt zerstört und ein neues System<br />
herbeigeführt.<br />
Obwohl in der Literatur jeder Zeit Gewalt präsent ist, wurde Gewalt bis zur<br />
Schwelle der Moderne durch den Metadiskurs des Schönen als das Häßliche, das<br />
Schreckliche, das Böse verpönt und marginalisiert. Dies ändert sich erst in der<br />
Romantik. In der modernen Kunst und Literatur, wo eher das Schöne marginal wirkt,<br />
etabliert sich die ästhetische Gewalt (das Häßliche) als ein von allen Fesseln der<br />
Religion, Moralität und der Idee des Schönen befreites selbständiges Prinzip.<br />
Bei Heine, bei dem die beiden Aspekte von „Gewalt in der Literatur“ und<br />
„Literatur als Gewalt“ zu beobachten sind, kann man auch die Gewalt der<br />
subversiven Sprache gut nachvollziehen. Heine setzt seine mächtige Sprache zum
272 뷔히너와 현대문학 34<br />
Angriff gegen die Gewalt der repressiven Macht ein. Das aggressive Schreiben<br />
Heines, das geradezu von der Ekstase der Dissonanz getränkt zu sein scheint,<br />
problematisiert die bizarre, groteske Kluft zwischen dem Leben, das voll von Gewalt<br />
ist, und der Kunst, die voll von schöner Harmonie ist.<br />
Sowohl die Diskussion um Gewalterscheinung als auch der Diskurs über Gewalt in<br />
der Literatur und Kunst liegen heute im Wandel. Auf der einen Seite ist Gewalt zum<br />
Gegenstand der interessierten ästhetischen Untersuchung avanciert. Es gibt<br />
Bemühungen, eine „Ästhetik der Gewalt“ zu etablieren. Die ästhetische Sensibilität<br />
über Gewalt wird immer ausgeprägter und feiner. Jedoch gibt es auch Stimmen, die<br />
solche kritisieren, die nur auf den ästhetischen Standpunkt behaaren und über die<br />
realitätsbezogene Seite der Gewalt hinwegschauen. Angesichts der rohen,<br />
„mörderischen Gewalt”, die überall bei uns in der Gesellschaft anzutreffen ist, mutet<br />
die hochkultiviert-verfeinerte Rede über ästhetische Gewalt tatsächlich eher weltfremd<br />
und irreal an.<br />
주제어: 폭력, 문학, 권력, 디오니소스, 하이네, 추한 것, 전복적 언어<br />
Schlüsselbegriffe: Gewalt, Literatur, Dionysos, Heine, das Häßliche, subversive Sprache<br />
필자 E-Mail: ekpark03@hanmail.net<br />
투고일: 2010.3.31 / 심사일: 2010.04.18 / 심사완료일: 2010.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