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7.2013 Views

정민영 - 한국브레히트학회

정민영 - 한국브레히트학회

정민영 - 한국브레히트학회

SHOW MORE
SHOW LESS

You also want an ePaper? Increase the reach of your titles

YUMPU automatically turns print PDFs into web optimized ePapers that Google loves.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br />

-이윤택의 와 채윤일의 <br />

1. 들어가는 말<br />

<strong>정민영</strong>(한국외대)<br />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1929-1995)가 한국 연극계에 처음 수용된 해는 1990년<br />

이다. 1989년, 지금은 폐간된 문학지 가을호에 하이너 뮐러의 문학을 심<br />

도 있게 소개하는 송동준의 논문과 함께 청부 Der Auftrag가 정은이의 번역으로<br />

실리고 난 후, 1) 한국 연극계는 뮐러의 작품을 바로 수용한다. 1990년 4월, 정은이 번<br />

역, 이윤택 연출의 는 하이너 뮐러의 작품 중 첫 번째로 한국 무대에 오른다. 2)<br />

하이너 뮐러의 문학이 소개되자마자 바로 국내 무대가 받아들인 데에는 나름의 이유<br />

가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 문학계는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주<br />

성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 문학계는 자연스럽게 제 3세계 문학<br />

으로 그 시각을 넓히게 되었다. 특히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사건은 그<br />

동안 관심밖에 있었던 동독문학에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이 가운데 당<br />

시 동독 희곡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논의의 중심에 두는 하<br />

이너 뮐러에 주목한 것은 피지배의 역사를 가지고 여전히 분단국의 특수한 정치적<br />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로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인다. 이후 2000년대 초까<br />

지 하이너 뮐러의 주요 작품이 전문극단에 의해 꾸준히 공연된다. 중요한 공연만 보<br />

자면, (윤시향 역, 채승훈 연출, 1993년 8월, 성좌소<br />

* 이 논문은 2011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내 학술연구비지원에 의하여 작성된 것임.<br />

1) 송동준: 브레히트 이후의 동독 드라마. 하이너 뮐러를 중심으로, 1989년 가을호,<br />

11-41쪽. 하이너 뮐러 작, 정은이 옮김: 청부, 같은 책, 364-389쪽.<br />

2) 1990년 4월 11일 - 5월 10일, 대학로극장.<br />

3) 동독문학의 국내 수용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strong>정민영</strong>: 동독문학 수용, 실린<br />

곳: 차봉희 편: 한국의 독일문학 수용 100년 (1), 한신대출판부, 2001, 265-300쪽.


16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극장/ 2000년 3월 9일 - 4월 19일, 씨어터 제로), (<strong>정민영</strong><br />

역, 손정우 연출, 1998년 10월 29일 - 12월 6일, 혜화동1번지), (원제: 황폐한<br />

물가 메데아자료 아르고 호 사람들이 있는 풍경 Verkommenes Ufer Mediamaterial<br />

Landschaft mit Argonauten, 이현찬 각색, 연출, 2001년 6월 2일 - 6월 8일, 문예회관<br />

대극장), 그리고 위 세 작품을 하루에 차례로 모두 공연하는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었<br />

던 (<strong>정민영</strong> 역, 함형식, 이자순, 정세혁 연출, 2002년 3월 15<br />

일 - 4월 21일, 대학로 단막극장) 등을 들 수 있다. 이 공연들은 모두 암울한 역사의<br />

뒷면을 이야기 하는 하이너 뮐러의 주제를 받아들이면서 작가의 파괴적이고 해체적<br />

인 극형식을 실험적으로 수용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때문에 무대는 뮐러의 텍스트<br />

에서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 기호가 가득했고 상대적으로 텍스트 자체<br />

는 상당 부분 사라져 뮐러의 언어를 경험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이데올로<br />

기가 담론의 중심에서 사라지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하이너 뮐러의 작품은 국내 연<br />

극계의 관심에서 멀어진다.<br />

2011년 4월부터 연희단거리패는 게릴라 극장에서 <br />

을 열었다. 4)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인 이윤택은 “브레히트가 제시한 연극과 현실의<br />

관계에 대한 탐색은 하이너 뮐러에 이르러 거대 대중사회 속의 개인에 대한 정체성<br />

에 당도” 5)하였음을 파악하고 “전시대적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천민자본<br />

주의에 대한 저항” 6)이 연극의 궁극적 사명임을 보여주는 두 작가의 연극관이 이 시<br />

대, 한국에서도 유효한지를 이 기획전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게릴라<br />

극장 예술감독 채윤일은 특히 하이너 뮐러가 “그 동안 우리 연극계에 이슈는 되어<br />

4) 이 기획전을 통해 공연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장소는 모두 게릴라 극장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r />

Bertolt Brecht의 (이원양 역, Alexis Bug 연출,<br />

2011. 4. 1 - 4. 24), 하이너 뮐러의 (<strong>정민영</strong> 역, 이윤택 연출, 2011. 4. 29 - 5. 8), 하이<br />

너 뮐러의 (<strong>정민영</strong> 역, 채윤일 연출, 2011. 5. 12 - 6. 5), 영산대 연기뮤지컬학과<br />

의 대학극으로 하이너 뮐러의 (정은이, <strong>정민영</strong> 역, 2011. 6.<br />

9 - 6. 11), 그리고 1972년생인 젊은 작가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 Marius von Mayenburg의<br />

(이원양, 한은주 역, 윤광진 연출, 2011. 6. 15 - 7. 10), 총 다섯 작품<br />

이다.<br />

5) 이윤택: 내 연극은 전선의 이쪽과 저쪽 그 사이, 아니면 그 위에 존재합니다, 실린 곳: 아르투로<br />

우이의 출세. 공연프로그램, 2011, 4쪽.<br />

6) 같은 글, 4쪽.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69<br />

왔지만 각각의 고유성을 제대로 무대 위에 드러내거나 관객을 이해시키는 데는 미진<br />

했었다” 7)라 판단하고 “동시대적으로 공감을 주는 무대” 8)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시<br />

대의 우리 연극이 관객의 입맛을 일방적으로 판단하여 갈수록 가벼워지고, 그에 더하<br />

여 상업적 의도가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역사의 잘못된<br />

흐름에 저항하는 하이너 뮐러의 작품을 공연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상당한 의미를<br />

갖는다. 또한 채윤일의 생각이 그러하듯, 지난 하이너 뮐러 공연이 난해한 이미지 위<br />

주의 수용을 보여줌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면 그의 작품이 갖는 본질 전체를 전달해<br />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시도도 의미가 크다. 작품 구성에서도 보듯이 이<br />

기획전의 중심은 하이너 뮐러이다. 특히 하이너 뮐러의 지난 공연들이 상대적으로 경<br />

험이 적고 혈기를 앞세운 젊은 연출가들의 실험적 시도였다는 점과 비교하여 이번<br />

햄릿기계와 사중주 공연이 한국 연극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중진 연출가에<br />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한국의 하이너 뮐러 수용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이룰 수<br />

있다. 이 같은 판단에서 두 공연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기록은 한국의 독일 희곡 수<br />

용사를 위한 자료를 남긴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br />

2. 절망은 희망이다 - 이윤택의 <br />

하이너 뮐러의 작품에서 “무대 시간성과 공간성의 해체, 은유와 알레고리의 파산,<br />

작가의 인식을 그대로 배우의 육성과 느낌으로 쏟아 붓는 에너지” 9)를 발견하고 청<br />

부를 무대화 했던 이윤택은 그 후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하이너 뮐러와 만<br />

난다. “연극의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강력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 10)이라<br />

믿는 이윤택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민중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천박한 자본주<br />

의가 팽배한 현실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적합한 텍스트로 햄릿기계를 택한다. 햄<br />

7) 채윤일: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하이너 뮐러 기획전을 열며, 실린 곳: 위의 책, 5쪽.<br />

8) 같은 글, 5쪽.<br />

9) 이윤택: 연출 노트, 실린 곳: 청부. 어느 혁명에의 회상, 공연프로그램, 1990, 5쪽.<br />

10) 이윤택: 진지한 놀이 - 하이너 뮐러와 햄릿기계에 대한 메모, 실린 곳: 햄릿기계, 공연프로그램,<br />

2011, 17쪽.


17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릿기계를 뛰어난 이미지의 무대로 만들었으나 “역사현실에 대한 긴장이 없는 미국<br />

인” 11)인 로버트 윌슨 Robert Wilson과 달리 이윤택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br />

인으로서 하이너 뮐러의 텍스트에 드러나는 정치적 허무주의와 현실에 대한 비관적<br />

인식에 동의한다. 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무력감이 엄습하는 이 시<br />

대” 12)에 연극이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햄릿기계의 햄릿에<br />

게서 볼 수 있는 지식인의 무력감을 그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햄릿이<br />

지식인으로서 역사의 현실을 성찰하고 절망의 목소리를 통해 잘못된 역사의 진행에<br />

저항하듯 그 또한 연극인으로서 연극으로 저항하고자 한다. 연극을 하는 사람은 연극<br />

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연극으로, 놀이로 진지하게 우리의 삶을 계속 이야기하<br />

는 것, 그것이 “바로 비본질적이고 세속적인 세계에 맞서는 연극적 저항” 13)이라 그<br />

는 말한다.<br />

이윤택은 이 저항의 정신을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체험하기’를 바랐다. 사실<br />

이 공연은 그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에서 전문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딘 젊은 연기자<br />

들의 훈련 결과물이다. 그가 햄릿기계를 “논리적 이해가 아닌, 극적 체험을 요<br />

구” 14)하는 텍스트로 이해했다는 것은 훈련 과정에서 배우들로 하여금 현실을, 그리<br />

고 하이너 뮐러가 내놓은 수많은 상징적 기호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우선 체험하<br />

도록 이끌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는 연기자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요구되<br />

는 사항으로 이윤택이 하이너 뮐러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하<br />

이너 뮐러는 1989년 3월, 오스트리아의 한 라디오 방송국과 행한 인터뷰에서 다음과<br />

같이 말한 바 있다.<br />

세계의 어느 관객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극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해<br />

하기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경험하는 것, 또는 체험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br />

차차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br />

Kein Publikum der Welt versteht ein Stück von Shakespeare im Theater. Um Verstehen<br />

gehts ja gar nicht. Es geht ja darum, daß man was erfährt, oder was erlebt. Und hinterher<br />

11) 이윤택: 다시 하이너 뮐러를 막 올리며, 같은 책, 13쪽.<br />

12) 이윤택: 진지한 놀이 - 하이너 뮐러와 햄릿기계에 대한 메모, 15쪽.<br />

13) 같은 글, 15쪽.<br />

14) 이윤택: 다시 하이너 뮐러를 막 올리며, 13쪽.


versteht man vielleicht was. 15)<br />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71<br />

이윤택은 이번 공연에서 햄릿기계 텍스트를 각색 없이, 물론 대본화 과정에서<br />

약간의 윤문이 있기는 하지만 원작의 의미를 변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부 사용<br />

한다. 이는 하이너 뮐러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연기자와 관객들이 온전히 체험하도록<br />

하기 위함이다. 우선 김경수가 디자인한 무대는 텍스트에 충실하면서도 상징적 이미<br />

지의 핵심만을 올려놓아 불필요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햄릿의 공간으로서 무대 왼쪽<br />

에 서재, 오필리어의 공간으로서 오른쪽에 피아노, 그리고 텍스트의 4장 무대지문에<br />

따른 대형 냉장고가 오필리어의 공간과 맞닿아 세워져 있고 무대 천정에 텔레비전 3<br />

대가 설치되어 있다. 무대 뒤편은 단이 설치되어 있어 3장의 “죽은 여자들의 전시장<br />

(발레) Galerie(Ballett) der toten Frauen” 16)으로 사용되고, 4장의 햄릿연기자<br />

Hamletdarsteller의 대사 “배우들은 자기들의 얼굴을 분장실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br />

Die Schauspieler haben ihre Gesichter an den Nagel in der Garderobe gehängt” 17)에<br />

따른 분장실 공간으로 이용된다. 햄릿의 공간인 서재는 햄릿이 지식인임을 잘 드러내<br />

고 있고 대형 철제 냉장고는 쇠가 갖는 차가움과 기계의 이미지를 내포하면서 연기<br />

자들의 등퇴장 통로로 이용되어 활용도가 크다. 여기에 12명의 연기자가 등장한다.<br />

연출 면에서 특히 눈에 뜨이는 점은 연기자들이 “책 읽는 배우” 이외에 단순하게<br />

“배우 1”부터 “배우 11”까지 명명되어 있고 지정된 배역명이 없다는 점이다. 18) 공연<br />

은 “책 읽는 배우(조정우 분)”가 햄릿기계 텍스트를 읽으면 그 텍스트의 내용을 다<br />

른 배우들이 형상화하는 형식을 갖는다. “책 읽는 배우”는 서술자의 역할을 하면서<br />

때에 따라 등장인물 햄릿이 되어 연극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햄릿이었다 Ich war<br />

Hamlet” 19)로 시작되는 텍스트를 그가 읽기 시작하면서 무대는 자연스럽게 회상의 연<br />

극이 되며 햄릿은 자신의 회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하이너 뮐러의 연극은<br />

1970년대 말부터 회상의 기법을 통해 지나간 것을 말함으로써 현재를 재조명하는 집<br />

단적 성찰의 연극으로 발전한다. 20) 지나간 역사에 묻혀 있던 암울한 부분들을 다시<br />

15) Heiner Müller: Gesammelte Irrtümer 2. Interviews und Gespräche, Frankfurt am Main 1990, S. 170.<br />

16) Heiner Müller: Die Hamletmaschine, in: ders.: Werke 4, Frankfurt am Main 2001, S. 548.<br />

17) Ebd., S. 551.<br />

18) 햄릿기계, 공연 프로그램, 2011, 18-19쪽 참조.<br />

19) Heiner Müller: Die Hamletmaschine, a.a.O., S. 545.


17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들추어내는 일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더 나은 인간적인<br />

세계를 추구하는 적극적이고 진지한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 일은 생산적이다.<br />

그러나 이 일은 이미 고착되고 굳어진 것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야 하<br />

는 일이기에 거칠고 극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하이너 뮐러의 회상은 난폭함 자체로<br />

채워진다. 그 야만성이 지나간 역사의 모습이고 비판적 성찰을 통해 중단 시켜야 할<br />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식시키기 위한 하이너 뮐러의 전략적 드라마투르기는 크<br />

게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 하나는 비인간적인 야만의 역사가 지속되는 상황과 그에<br />

대한 저항의 힘을 충돌시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는 기능이며,<br />

다른 하나는 폭력의 잔인함과 난폭함, 불쾌함과 공포 같은 불안 요소를 극대화하여<br />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밑바닥부터 흔들어 무엇인가 다른 것을 생각하도록 만<br />

드는 작용 미학적 기능이다. 21) 이윤택은 이러한 뮐러의 전략을 받아들인다.<br />

첫 장면은 “폐허가 된 세계를 뒤로 하고” 22) 이루어지는 햄릿의 가족사에 대한 암<br />

울한 회상이다. 햄릿의 아버지, 선왕의 국장에 햄릿은 선왕을 “모두로부터 모든 것을<br />

앗아간 독재자” 23)라 칭하고 관을 열어 선왕의 시체를 잘라 둘러선 사람들에게 나누<br />

어준다. 시체는 고깃덩어리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텍스트를 사실적으로 실현한다. 냉<br />

장고에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배미향 분)가 등장한다. 비정상으로 큰 가슴과 어<br />

쩌면 인형처럼 보일 수도 있는 과장된 얼굴 분장으로 기이하게 보이는 거트루드와<br />

현재의 왕이자 햄릿의 삼촌인 클로디어스는 선왕의 빈 관 속에서 정사를 벌인다. 하<br />

이너 뮐러의 텍스트에서 냉장고가 빙하기와 같은 죽은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br />

상기한다면 냉장고에서 나오는 기괴한 모습의 거트루드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br />

기형화한 역사의 상징이다. 선왕을 죽인 살인자 클로디어스와 기괴한 거트루드의 정<br />

20) 특히 과거를 현재화하여 역사를 새롭게 인식시키려는 시도는 하이너 뮐러의 독특한 드라마투르<br />

기이다. 이를 위해 뮐러는 작품 속에 죽은 자들, 유령을 자주 불러낸다.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br />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오동식: 하이너 뮐러의 아버지 유령, 실린 곳: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제19<br />

집, 2008, 135-152쪽.<br />

21) Vgl. Andreas Keller: Drama und Dramaturgie Heiner Müllers zwischen 1956 und 1988, Frankfurt<br />

am Main 1992, S. 98f.<br />

22) 공연대본 햄릿기계, 실린 곳: 햄릿기계 공연프로그램, 2011, 44쪽. 원작의 텍스트는 “유럽의 폐허<br />

를 뒤로 하고 im Rücken die Ruinen von Europa”이다.<br />

23) 공연대본 햄릿기계, 같은 책, 44쪽. 원작의 텍스트는 “그는 모두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간 한 남자<br />

였다 Er war ein Mann nahm alles nur von allen”이다.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73<br />

사는 살인의 현재와 죽음의 과거가 만나는 것이며 그 폭력의 순환은 여전히 지속 가<br />

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 “살인자와 과부의 음탕한 짝짓기로서의 역사<br />

unkeusche Paarung von Mörder und Witwe” 24)로 표현되며 “창녀의 원칙 Prinzip der<br />

Huren” 25)에 따른 역사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햄릿의 저항은 어머니<br />

를 겁탈하는 끔찍한 패륜 행위를 불러온다.<br />

“제가 당신을 다시 처녀로 만들어 드리죠, 어머니, 당신의 새로운 왕이 피의 결혼식을 올릴<br />

수 있도록. 엄마의 자궁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니까. [...] 이제, 어머니, 당신의 비명은 제 입<br />

술로 막아드리지. 어머니, 당신이 자궁으로 낳은 나를 알아 보시겠나요. 그래요, 이제 결혼<br />

식에 가세요, 이 창녀.” 26)<br />

이 같은 대사와 함께 어머니를 겁탈하는 햄릿은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의 익명성<br />

은 햄릿의 어머니 겁탈이 단순히 햄릿 개인의 가족사 일부가 아니라 창녀와 다름없<br />

는 역사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생성한다. 창녀와 같은 어머니는 “음탕한 짝짓기”<br />

와 같은 역사를 낳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원작이 가진 상징성이 무대<br />

에서 적합한 의미로 실현되고 있음에도 번역을 대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잘못 대사<br />

화됨으로써 원작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부분이 드러난다. 앞서 언급했듯<br />

원작에서 햄릿이 창녀라 부르는 어머니는 썩은 역사를 낳고 있는 근원으로서 중요한<br />

상징성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햄릿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 eine Welt ohne Mütter” 27)<br />

을 원하며 극단적으로 어머니를 비난한다.<br />

“당신에게 구멍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아요. 당신이 육욕에 빠져 있었을 때 난 우리 어<br />

머니에게 구멍이 하나 더 적었으면 했지요. 그러면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여자<br />

들이란 그걸 꿰매 막아버려야 해.”<br />

ich weiß, dass du ein Loch zuviel hast. Ich wollte, meine Mutter hätte eines zu wenig<br />

gehabt, als du im Fleisch warst; ich wäre mir erspart geblieben. Man sollte die Weiber<br />

24) Genia Schulz: Heiner Müller, Stuttgart 1980, S. 150.<br />

25) Richard Weber, Theo Girshausen: Notate zur Hamletmaschine, in: Hamletmaschine. Heiner Müllers<br />

Endspiel, hrsg. v. Theo Girshausen, Köln 1978, S. 12.<br />

26) 공연대본 햄릿기계, 같은 책, 45쪽.<br />

27) Heiner Müller: Die Hamletmaschine, a.a.O., S. 546.


17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zunähn 28)<br />

햄릿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어머니의 자궁은 일방통행로가 아닙니다 DER<br />

MUTTERSCHOSS IST KEINE EINBAHNSTRASSE” 29)라고 외친다. 어머니의 자궁<br />

은 잘못된 역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해 나오는 통행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br />

그러나 이 외침은 공연 대본에서 “엄마의 자궁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니까”로 바뀌어<br />

원작 텍스트의 본래 의미를 상실한다. 여기에 더하여 공연 대본에는 “어머니가 없는<br />

세상”이 삭제되어 잘못 진행되어 온 역사의 근원으로서 “어머니”가 갖는 중요한 상<br />

징이 사라졌다. 상징과 이미지로 채워져 있는 햄릿기계는 사소한 표현이라도 그것<br />

이 오독되거나 변형될 경우 원작 본래의 상징성이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심한 경우<br />

완전히 다른 의미로 전달될 위험성이 있다. 원작의 전체적인 의미 실현에 크게 어긋<br />

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아주 사소한 부분일 수 있으나 원작의 문장 축소로 원작의<br />

이미지 실현과 관객을 위한 메시지 전달이 축소된 예는 오필리어의 대사에서도 발견<br />

된다. 햄릿의 언어가 역사에 대한 성찰의 언어에 그치고 있는 반면 오필리어의 언어<br />

는 햄릿의 성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행동의 언어이다. 햄릿기계의 두 번째 장면<br />

에서 오필리어는 구체적인 억압의 경험을 이야기<br />

하며 그 억압의 구조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시도를 실행한다. 그 실천의 행위<br />

는 파괴의 행위로서 강한 시적 이미지와 함께 억압의 역사를 파괴하는 새로운 힘의<br />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br />

“나는 내 구속의 도구들을 파괴한다. 의자를, 책상을, 침대를. 나는 내 고향이었던 도살의<br />

무대를 부순다. 나는 문들을 부수어 연다. 바람이, 그리고 세상의 비명이 들어올 수 있도록.<br />

나는 창문을 산산이 부순다.”<br />

Ich zertrümmre die Werkzeuge meiner Gefangenschaft den Stuhl den Tisch das Bett. Ich<br />

zerstöre das Schlachtfeld das mein Heim war. Ich reiße die Türen auf, damit der Wind<br />

herein kann und der Schrei der Welt. Ich zerschlage das Fenster. 30)<br />

28) Ebd., S. 545f.<br />

29) Ebd., S. 547.<br />

30) Ebd.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75<br />

그러나 공연에서는 “나는 내 고향이었던 도살의 무대를 부순다”가 “나는 무대를<br />

부순다”로 축소되고 오필리어가 발로 피아노를 밟아대는 행위로 표현되어 원작에서<br />

오필리어의 대사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줄어든다. 31)<br />

이 같은 사소한 대사 변경에서 오는 의미 축소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하이너 뮐러<br />

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공연은 보다 중요한 원작의 상징과 이미지를 효<br />

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장면 는 앞의 두 장<br />

면 과 에서 보여준 문제, 즉 역사의 주체이면서 성찰에 그<br />

치는 나약한 지식인 햄릿과 그에 대비되어 새로운 실천의 주체로 등장하는 여성 오<br />

필리어를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다시 담아내는 일종의 막간극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br />

햄릿기계의 전체 주제를 압축하고 있는 장면으로 가장 강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br />

하이너 뮐러가 말하고자 하는 역사의 상황은 혼돈의 극치이다. “죽은 자들의 대학교<br />

Universität der Toten”, 32) “죽은 철학자들 die toten Philosophen” 33) 그리고 “죽은 여<br />

자들의 전시장 Galerie der toten Frauen” 34)이 죽음의 역사를 보여주고 “수직으로 세<br />

워진 관에서 Aus einem aufrechtstehenden Sarg” 35) 이제 햄릿의 아버지가 된 클로디<br />

어스와 창녀로 분장한 오필리어가 함께 나왔다가 함께 들어간다. 햄릿의 친구, 또 하<br />

나의 지식인 호레이쇼는 목이 거꾸로 돌아간 천사가 되어 나타나 햄릿과 격렬한 춤<br />

을 추고 두 사람은 우산 아래에서 포옹한 채 굳어 버린다. 그네를 타고 있는 성모 마<br />

리아는 유방암에 걸려 있고 “유방암이 태양처럼 빛난다 Der Brustkrebs strahlt wie<br />

eine Sonne.” 36) 모든 것이 죽음과 혼돈의 그로테스크한 극단적 이미지이다. 이윤택의<br />

연출적 상상력은 이를 기발한 그림으로 표출한다. 첫 장면에 등장했던 관이 무대 한<br />

가운데를 그대로 지키며 죽음의 이미지를 전하는 가운데 바지를 무릎 아래로 내린 5<br />

명의 배우가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들어온다. 철저하게 웃음거리로 만들어진 죽<br />

은 철학자들의 모습, 그리고 로봇이 되어 버린 두 여자는 기계의 움직임으로 전시물<br />

31) 이는 물론 싸움터란 의미를 갖는 Schlachtfeld를 “도살의 무대”로 번역한 번역본에 기인하는 결과<br />

이다. 이 같은 부분에서 번역극의 경우 전문적인 드라마투르그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br />

32) Heiner Müller: Die Hamletmaschine, a.a.O., S. 548.<br />

33) Ebd.<br />

34) Ebd.<br />

35) Ebd.<br />

36) Ebd., S. 549.


17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이 되어 있다. 기괴한 거트루드의 모습을 여전히 보이고 있는 여배우가 유방암에 걸<br />

린 성모 마리아로 등장해 무대 한 가운데서 보란 듯이 썩어가는 거대한 유방을 내보<br />

인다. 광대가 되어 무대 바닥을 뒹구는 죽은 철학자들은 역사 발전에 쓸모없는 지식<br />

인이며 기계가 되어 버린 여자들은 주체의 생명력을 상실한 피억압자로 존재한다. 의<br />

도적으로 과장된, 종양의 부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대한 유방의 성모 마리아는 창녀<br />

와 다름없는 거트루드의 이미지와 합쳐지며 죽은 역사의 암울함을 무대에 채운다. 오<br />

필리어는 바닥의 죽은 철학자들을 밟고 퇴장함으로써 그녀가 가진 저항의 힘을 보여<br />

준다. 이 그림만으로도 무대는 하이너 뮐러의 텍스트가 제공하는 상징적 암호들을 풀<br />

어내고 이를 넘어 그 이미지들을 구체화한 탁월한 연출적 상상력을 증명한다.<br />

철저한 텍스트 분석에 따른 이윤택의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연출력이 더욱 드러나<br />

는 곳은 이후의 장면이다. 햄릿기계의 네 번째 장면 은 원래 1956년, 실패한 헝가리 봉<br />

기사건과 스탈린의 죽음(1953년 3월), 그리고 그에 따른 3년간의 탈스탈린화 과정을<br />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주의 발전에 대한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br />

란 인식은 햄릿의 행동 능력을 앗아가며 그는 모든 희망을 포기한다. 이는 그가 연기<br />

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는 모습으로 설명된다.<br />

(가면과 의상을 벗어 내려놓는다. )<br />

햄릿연기자 나는 햄릿이 아니다. 난 이제 어떤 역도 맡지 않겠다. [...] 나의 연극은 더 이상<br />

공연되지 않는다. [...] 나는 더 이상 함께 연기하지 않겠다. [...] 무대 장치는 하나의 기<br />

념상. [...] 희망의 석화(石化) [...] 희망은 성취되지 않았다. [...] 나의 연극은, 공연이 이<br />

루어진다면, 봉기의 시대에 이루어질 것이다. [...] 나의 자리는, 그래도 내 연극이 공연<br />

된다면, 전선의 양편, 전선의 사이 아니면 그 위가 될 것이다.<br />

Legt Maske und Kostüm ab<br />

Hamletdarsteller Ich bin nicht Hamlet. Ich spiele keine Rolle mehr. [...] Mein Drama findet<br />

nicht mehr statt. [...] Ich spiele nicht mehr mit. [...] Die Dekoration ist ein Denkmal. [...]<br />

Die Versteinerung einer Hoffnung. [...] Die Hoffnung hat sich nicht erfüllt. [...] Mein<br />

Drama, wenn es noch stattfinden würde, fände in der Zeit des Aufstands statt. [...] Mein<br />

Platz, wenn mein Drama noch stattfinden würde, wäre auf beiden Seiten der Front,<br />

zwischen den Fronten, darüber. 37)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77<br />

이윤택은 원작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 시대에 이입시킨다. 원작 텍스<br />

트의 지문과 달리 미리부터 무대 위에 설치되었던 세 대의 TV에서는 레닌 동상이<br />

헬기에 매달려 철거되는 동영상과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중들의 민주화 요<br />

구 시위 영상이 방영된다. 여기에 무대 뒤편 어두운 벽에는 아홉 개의 가면과 의상이<br />

못에 걸려 있고 여섯 명의 배우들이 봉기자 역할을 맡는다. 이는 원작 텍스트의 햄릿<br />

연기자 대사 “대본은 분실되었다. 배우들은 자기들의 얼굴을 분장실 못에 걸어두었<br />

다 Das Textbuch ist verlorengegangen. Die Schauspieler haben ihre Gesichter an den<br />

Nagel in der Garderobe gehängt” 38)를 연상시키며 마치 교수형 당한 인물들인 듯 걸<br />

려있는 가면과 의상들은 죽음의 형상으로서 억압의 역사에 항거하다 희생당한 이름<br />

모를 개인들을 기억하게 만든다.<br />

무대는 죽음과 살아있는 저항의 생명력을 대비 시키며, 그 가운데 과거의 역사와<br />

현재의 역사가 충돌한다. 과거의 소재에 현재성을 부여하는 극형식으로서 서로 다른<br />

시대들을 충돌시키는 하이너 뮐러의 극작기법을 상기한다면 이윤택의 무대는 뮐러의<br />

극형식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각기 독립되어 있는 시대의 단면들을 충돌시<br />

킴으로써 역사를 소재로 하는 연극은 현대성과 더불어 현장성을 갖추게 되고 관객은<br />

역사에서 잊혀지는 시간과 공간을 재인식하게 됨으로써 무대는 창조적인 탈시대성을<br />

갖게 되는 것이다. 39) 이윤택이 하이너 뮐러의 텍스트를 가장 분명하게 한국의 현시<br />

대에 접목하고 있는 부분은 원작의 구역질 모티브를 더욱 강하게 구현하는 장면이다.<br />

원작에서 구역질은 시청자의 사유 능력을 앗아가는 텔레비전과 자본주의의 비인간화<br />

에 대한 강한 저항과 거부를 의미한다. 화이트보드가 스크린 대용으로 무대 중앙에<br />

세워지고 여기에 현재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오락방송이 비춰진다. 무의미하<br />

게 웃고 떠드는 개그맨들의 모습이 선명한 가운데 배우들은 하이너 뮐러의 텍스트를<br />

약간 변형한 즐거운 랩으로 들려준다.<br />

텔레비전 매일 매일의 구역질<br />

준비된 수다에 강요된 즐거움에 대해 구역질<br />

37) Ebd., S. 549f.<br />

38) Ebd., S. 551.<br />

39) <strong>정민영</strong>: 하이너 뮐러 극작론, 사랑의학교, 1998, 177쪽 참조.


17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아늑함이라는 글자는 어떻게 쓰는가<br />

텔레비전은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살인을 주시오<br />

텔레비전 속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br />

거짓말쟁이들이나 믿는 바로 그 거짓말의 구역질<br />

사람들이 믿고 있는 거짓말에 구역질<br />

지위를 이용한, 선거를 위한, 은행 비밀구좌를 둘러싼 싸움판에 구역질<br />

모르쇠로 일관하는 스캔들 주역들의 상판때기에 대해 구역질 40)<br />

가사의 비판적 내용과 저항의 형식을 갖는 신나는 랩은 관객에게 익숙한 것으로<br />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남녀 배우 10명의 군무와 노래, 그리고 실<br />

제로 입에 담았던 미숫가루를 구역질 소리와 함께 무대에, 오락방송 화면으로 가득<br />

찬 화이트보드에 뱉어내는 행위는 공연 내내 억눌린 감정으로 답답했을 관객들에게<br />

비판적 성찰은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 일종의 속 시원한 기분전환을 제공해 줄 수<br />

있는 연극적 장치이다. 현시대의 천박함과 비가시적 폭력구조에 대한 반응으로서 구<br />

역질을 할 수밖에 없는 햄릿연기자는 절망하고 좌절할 뿐이다. 때문에 그는 지식인으<br />

로서 변혁을 위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포기하고 자신의 내부로 후퇴해 들어간다.<br />

나는 내 핏줄 속에서 살고 싶다, 내 뼈의 골수 속에서, 내 골의 미로 속에서, 나는 내 창자<br />

속으로 후퇴한다. 나는 내 똥 속에 내 핏속에 자리를 잡는다. [...] 나의 생각은 내 뇌 속의<br />

상처. 나의 뇌는 하나의 흉터.<br />

Ich will in meinen Adern wohnen, im Mark meiner Knochen, im Labyrinth meines Schädels.<br />

Ich ziehe mich zurück in meine Eingeweide. Ich nehme Platz in meiner Scheiße, meinem<br />

Blut. [...] Meine Gedanken sind Wunden in meinem Gehirn. Mein Gehirn ist eine Narbe. 41)<br />

이러한 바람은 역사의 잘못된 흐름을 바꾸어 놓아야 할 짐을 지고 있는 지식인의<br />

깊은 절망을 표현한다. 그 절망의 끝에서 그는 자기 존재조차 폐지하고자 한다. “나<br />

는 기계이고 싶다. 뻗을 팔과 걸을 다리는 있으나 고통도 없고 생각도 없는. Ich will<br />

eine Maschine sein. Arme zu greifen Beine zu gehen kein Schmerz kein Gedanke.” 42)<br />

40) 공연대본 햄릿기계, 같은 책, 48쪽.<br />

41) Heiner Müller: Die Hamletmaschine, a.a.O., S. 552f.<br />

42) Ebd., S. 553.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79<br />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무거운 짐에 억눌려 고통스러운 지식인 햄<br />

릿의 이 같은 자기 역할 포기는 “희망 상실의 커다란 상징 ein großes Symbol für den<br />

Hoffnungsverlust” 43)이다. 이 절망을 이윤택은 나체로 무대 바닥을 기어 냉장고로 들<br />

어가는 햄릿으로 표현한다. 햄릿이 기어가는 거리와 시간은 실제로 얼마 되지 않지만<br />

그 거리와 시간은 무대의 물리적 거리와 시간을 넘어 무한대로 확장된다. 그 고통의<br />

긴 시간은 얼어붙은 빙하기와 같은 역사를 암시하는 냉장고의 상징성과 결합하여 발<br />

전의 생명력이 사라진 역사의 실체를 더욱 각인시킨다. 오필리어가 다시 등장한다.<br />

비닐로 덮인 채 휠체어에 앉은 오필리어는 복수의 상징 엘렉트라가 되어 “희생자의<br />

이름으로 Im Namen der Opfer” 44) 자신이 낳은 잘못된 세상을 회수하겠다고 절규한<br />

다. 무대 위 3대의 텔레비전은 최근에 일본을 덮친 쓰나미 영상을 보여준다. 이는 잘<br />

못된 세상을 한 번에 쓸어버리고 없애 버린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오필리어의 대사<br />

“나는 내가 낳은 세상을 내 허벅지 사이에서 질식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내 질 속에<br />

묻는다 Ich ersticke die Welt, die ich geboren habe, zwischen meinen Schenkeln. Ich<br />

begrabe sie in meiner Scham” 45)와 연결되어 오필리어가 가진 강렬한 변혁의 새로운<br />

힘을 강화한다. 이윤택은 오필리어의 상징적 힘을 더욱 극대화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br />

인다. 원작에서 붕대에 감겨 마치 미이라처럼 포장된 채 움직이지 못하는 오필리어와<br />

달리 이윤택의 오필리어는 비닐을 뚫고 나와 도끼를 잡고 객석으로 다가서는 위협적<br />

인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이로써 이윤택의 무대는 역사에 대한 햄릿의 절망적 성찰<br />

과 그 성찰을 바탕으로 관객이 인식할 수 있는 현재, 그리고 변혁을 향한 오필리어의<br />

새로운 힘과 역사발전을 위한 희망을 모두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햄릿의 깊은 절망<br />

은 오필리어를 통해 인식되는 희망으로 바뀌어 관객의 가슴에 남는다.<br />

3. 유희로 푼 야만의 역사 - 채윤일의 <br />

하이너 뮐러의 사중주는 프랑스 작가 쇼데를로 드 라클로 Choderlos de Laclos<br />

43) Heiner Müller: Gesammelte Irrtümer 2, a.a.O., S. 103.<br />

44) Heiner Müller: Die Hamletmaschine, a.a.O., S. 554.<br />

45) Ebd.


18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의 편지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1782)를 토대로 1981년에 완성<br />

된 작품이다. 위험한 관계는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교계에서 벌어지는 유혹과 성<br />

적 유희를 통해 합리성을 잃은 절대적 이성이 갖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이성의 냉철<br />

한 논리로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으며 유혹과 정복으로 자신<br />

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유사상가 두 사람, 메르테유 Merteuil와 발몽 Valmont이 벌이<br />

는 사랑 논리싸움과 성 대결의 구도,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대결 과정에서 희생물이<br />

되는 두 여성, 투르벨 Tourvel과 세실 볼랑주 Cécile Volanges로 구성되는 4각 구도를<br />

하이너 뮐러는 그대로 빌려와 사중주를 만들어낸다. 주목할 것은 형식이다. 하이너<br />

뮐러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 그리고 그 구도에서 파생되는 정복과 지배, 우위와<br />

하위, 공격과 희생의 관계를 메르테유와 발몽의 2인극으로 압축하고 여기에 이들이<br />

역할을 바꾸거나 대리 역할을 하는 역할 교환으로 놀이의 형식을 도입한다. 뮐러가<br />

제시한 시공간은 “프랑스 혁명 전의 살롱 / 제 3차 세계대전 후의 벙커 Salon vor der<br />

Französischen Revolution / Bunker nach dem dritten Weltkrieg” 46)로 비인간적인 과거<br />

의 역사와 종말을 맞은 인류의 미래를 연상시킨다. 이와 함께 독살 당하는 발몽과 암<br />

으로 죽어가는 메르테유의 모습이 강하게 각인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해 본<br />

다면 하이너 뮐러의 사중주는 죽음의 사중주이다. 전체적으로 강하게 드러나는 것<br />

은 가해자의 논리이다. 메르테유와 발몽은 자신의 파트너를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br />

이 같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사중주를 “테러리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반응 ein<br />

Reflex auf das Problem des Terrorismus” 47)이라 한 작가 스스로의 설명에 이해가 간<br />

다.<br />

이 같은 사중주를 연출자 채윤일은 “성만 난무하고 사랑이 부재한 전후 세계를<br />

야유한 작품” 48)으로 읽는다. 이와 함께 그는 하이너 뮐러가 그 절망적인 세계를 드러<br />

46) Heiner Müller: Quartett, in: ders.: Werke 5, Frankfurt am Main 2002, S. 45.<br />

47) Heiner Müller: Krieg ohne Schlacht. Leben in zwei Diktaturen, Köln 1992, S. 316. 그러나 뮐러의<br />

이 언급은 단순히 가해자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희생자와 가해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 받<br />

는 자의 단순한 이분법 내지 그 차이와 구분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폭력이 순환하고 난무하는 역<br />

사 자체에 대한 은유적 언급이라 할 수 있다. Vgl. Heiner Müller Handbuch. Leben-Werk-Wirkung,<br />

hrsg. v. Hans-Thies Lehmann, Patrick Primavesi, Stuttgart 2003, S. 72 u. 271.<br />

48) 채윤일: 연출의 글. 냉소적인 웃음 속에 드러나는 절망적인 세계관, 실린 곳: 사중주, 공연프로그<br />

램, 2011, 4쪽.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81<br />

냄으로써 역사의 발전과 진보가 인간의 평등관계에서 올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주장<br />

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49) 이 공연의 드라마투르기를 맡은 이윤택의 작품 분석도 채<br />

윤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윤택은 사중주가 사랑 부재의 세계를 야유와<br />

냉소의 언어로 드러내고, 성의 파국적 현상을 통해 삶과 세계의 황폐화를 현대 역사<br />

의 모습으로 되비춘 작품으로 해석한다. 50) 그는 이 같은 판단을 토대로 하이너 뮐러<br />

가 그린 역사의 모습을 “남성의 일방적 폭력과 여성성의 타락이 자초한 허무의 세<br />

계” 51)로 읽는다. 사실 사중주는 하이너 뮐러의 중심 주제인 역사에 대한 사전 지<br />

식이 없다면, 작품의 표면에 강하게 드러나는 남성과 여성의 성 싸움을 폭력의 역사<br />

라는 틀 안에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메르테유와 발몽의 수사적이고 현학적<br />

인 언어 대결과 논리 싸움은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어 역사의<br />

측면보다도 남녀 간의 억압적 질서라는 축소된 범주에서 작품을 보게 만든다. 채윤일<br />

은 이러한 점을 오히려 철저하게 구현하여 관객이 차츰 작품 이해의 폭을 역사로까<br />

지 확장하도록 유도하는 연출 방식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은 자의적 해석을<br />

배제하고 하이너 뮐러의 텍스트 자체를 더욱 철저하게 무대에서 보여줌으로써 공연<br />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상징 덩어리로 만든다.<br />

권태웅이 디자인한 무대는 사실성과 상징성이 혼합된 간결한 무대이다. 중앙에 유<br />

럽풍의 화려한 긴 소파가 위치하고 왼쪽에 화장대, 오른쪽에 양주진열장이 있으며 그<br />

뒤로 상류층 여성 의상이 가득 걸린 이동식 옷걸이가 배치되어 있다. 무대 뒤쪽으로<br />

는 두 개의 기하학적 구조물이 배경 역할을 한다. 고급 가구의 사실적인 실내 모습과<br />

전혀 어울리지 않는 뒤편의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부조화는 “프랑스 혁명 전”과 “3차<br />

세계대전 후”라는 지문의 부자연스러운 시대 혼합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인물의 의<br />

상과 분장은 18세기 유럽식으로 원작의 시대적 이미지를 그대로 따른다. 첫 장면, 갑<br />

자기 꿈에서 깨어난 메르테유(배보람 분)는 긴 소파에 길게 기댄 자세로 발몽(윤정섭<br />

분)과의 관계를 회상하고 그와의 적나라한 섹스를 상상한다. 메르테유의 고독한 상상<br />

의 언어는 감상에 가득 차 있지만 자기 존재를 분명히 하는 언어이며 극의 전체 구<br />

49) 같은 글, 같은 쪽 참조.<br />

50) 이윤택: 통속소설을 황폐한 역사를 되비추는 거울로 고쳐 쓰다, 실린 곳: 사중주 공연프로그램,<br />

2011, 5쪽 참조.<br />

51) 같은 글, 같은 쪽.


18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성과 관련하여 죽음에 가까이 가 있는 자신의 앞날을 암시하는 기능도 갖는다.<br />

내 육체의 쾌락이 나와 무슨 상관이죠. 난 천한 여자가 아녜요. 내 머리는 정상이에요. 난<br />

아주 냉정해요, 발몽. 나의 삶 나의 죽음 나의 애인.<br />

Was geht mich die Lust meines Körpers an. Ich bin keine Stallmagd. Mein Gehirn arbeitet<br />

normal. Ich bin ganz kalt, Valmont. Mein Leben Mein Tod Mein Geliebter. 52)<br />

발몽의 등장으로 메르테유의 회상과 상상은 중단되며 여성과 남성의 수사학적 말<br />

싸움이 시작된다. 채윤일은 발몽이 등장하여 관객을 향해 완전히 벗은 엉덩이를 그대<br />

로 노출한 채 얼굴을 메르테유의 치마 속에 묻고 눕도록 하여 앞 장면의 성적 이미<br />

지를 유지하는 동시에 발몽과 메르테유의 연인관계를 구체화한다. 이들의 신체적 접<br />

촉은 두 사람의 논쟁이 자연스럽게 놀이로 흘러들도록 돕는다. 두 사람의 논쟁은 겉<br />

으로 질투와 유혹의 내용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본질은 정복과<br />

권력을 향한 욕망이다. 정숙한 대통령 부인인 투르벨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br />

발몽의 말에 메르테유는 모욕을 느끼고 투르벨 대신 자신의 처녀 조카딸 세실을 유<br />

혹하라고 강요한다. 이는 결국 메르테유가 가진 지배욕의 표현이며 상대방을 마음대<br />

로 조정하고자 하는 권력 추구의 욕망을 나타낸다. 이에 대항하는 발몽은 유혹자로서<br />

정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폭력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공연대본은 이<br />

를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장황한 수사적 표현을 삭제하고 직접적이고 명료<br />

한 표현의 문장으로 다듬어져 있다.<br />

발몽: [...] 난 내 사냥감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낫겠습니다. [...] 내가 그 교회 헌금함 같다<br />

는 여인에게 꽃을 피우리란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 난 아무런 경험도 없는 당신의<br />

그 처녀 조카딸 보다는 교회 헌금함에 더 멋진 사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그런 숫<br />

처녀에게서는 사냥의 전율을 느낄 수 없어요. 추격의 욕정도 느낄 수 없는 사냥감이란<br />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공포로 흘릴 땀도 없고, 질식할 것 같은 숨막힘도 없<br />

고, 허옇게 뒤집힌 눈빛도 없다면 남아 있는 건 소화시키는 일뿐이겠죠. 53)<br />

52) Heiner Müller: Quartett, a.a.O., S. 46.<br />

53) 공연대본 사중주, 실린 곳: 사중주 공연프로그램, 2011, 17-18쪽. 사중주에서는 메르테유가 발몽<br />

에게 세실을 유혹하라고 강요하는 구체적 이유가 생략되어 있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에서 메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83<br />

이 논쟁은 앞으로 이어질 두 사람 사이의 놀이를 위한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메르<br />

테유와 발몽은 첫 번째 역할 교환 놀이에 들어간다. 메르테유는 발몽의 역을 맡아 투<br />

르벨 부인을 유혹하는 남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며, 발몽은 여성이 되어 함락 당<br />

하는 유부녀 투르벨 부인의 세밀한 심리 변화를 정확하게 연기한다. 이어지는 두 번<br />

째 역할 놀이에서 메르테유는 발몽에게 정복당하고 죽임까지 당하는 자신의 처녀 조<br />

카딸 세실이 무너지는 모습을 연기한다. 하이너 뮐러가 이 두 번의 역할 놀이를 통해<br />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남성의 상위성과 여성의 하위성으로, 그리고 먹고 먹히는 남녀<br />

관계로 상징되는 야만적 역사이다. 채윤일은 이 심각한 주제를 웃음으로 풀어낸다.<br />

사실 사중주는 희극적 요소가 많은 텍스트이다. 하이너 뮐러 자신도 이 작품이 희<br />

극임을 분명히 한다.<br />

사중주는 사실 희극이다. 하지만 텍스트를 보고 점잖 빼는 태도가 있다. 그런 태도가 웃<br />

기는 걸 발견하는데 방해가 된다.<br />

QUARTETT ist doch auch wirklich eine Komödie. Aber es gibt eine so feierliche Haltung<br />

dem Text gegenüber, die die Leute daran hindert, die Klamotte zu entdecken. 54)<br />

우선 남녀 간의 성과 유혹이라는 소재 자체는 그 숨은 의미를 떠나 가장 자주 사<br />

용되는 희극적 요소 중 하나이며 기존의 질서, 가치 체계를 뒤집는 파괴적 논리 또한<br />

비판적 웃음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형식적으로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역할<br />

을 바꾸는 트라베스티 Travestie의 구성 형식이 사중주를 희극으로 연출할 수 있는<br />

토대를 제공한다. 채윤일은 이 트라베스티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강화하여 공연에 희<br />

극성을 배가한다. 원작에서는 지시되지 않은 것으로, 공연에서는 역할 교환 시 가발<br />

과 의상으로 남장 여자, 여장 남자의 트라베스티 형식을 분명하고도 의도적으로 드러<br />

내 놀이 형식의 성 싸움을 관객에게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발몽으로 변신한 메르<br />

르테유는 자신을 버린 제르쿠르가 세실과 결혼하려 하자 복수의 한 방편으로 발몽에게 세실을 범<br />

하라 부탁한다. 발몽은 4번째 편지에서 메르테유 후작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거절한다. “저한테<br />

어떤 일을 제안하셨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가씨, 저항도 없이 이내 몸을 내맡길 그런<br />

아가씨를 유혹하라는 것이었나요? 사랑보다 먼저 호기심에 끌려 넘어 올 그런 아가씨를 말인가<br />

요?” 이 내용을 이용한 발몽의 대사는 정복과 정복당하는 대상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쇼<br />

데를로 드 라클로, 윤진 옮김: 위험한 관계, 문학과 지성사, 2007, 17쪽 참조.<br />

54) Heier Müller: Gesammelte Irrtümer. Interviews und Gespräche, Frankfurt am Main 1986, S. 139.


18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테유, 배보람의 능청스런 남자 연기와 투르벨로 변신한 발몽, 윤정섭의 과장된 여성<br />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 가운데 폭력적 인간관계를 인식하도록 만든다. 투르벨<br />

이 등장하기 전, 배보람이 연기하는 발몽은 관객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유혹의 열변을<br />

토한다. 관객은 투르벨이 되어 메르테유가 연기하는 남성 발몽의 유혹과 마주하면서<br />

그의 궤변적 주장에 집중하게 되고 극의 놀이 형식이 강화된다. 투르벨을 유혹하기<br />

위한 발몽의 몸에 대한 주장은 일방적인 궤변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br />

현실의 질서를 평가절하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논리를 완벽하게 증명함으로<br />

써 웃음을 만들어내는 희극 요소 55)를 가지고 있다. 관객은 발몽의 주장이 궤변에 불<br />

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는 논리에 웃음을 터뜨린다.<br />

메르테유: [...]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종족번식이라는 유일한 목적, 오로지 그 하나만을 위<br />

해 쓰인다면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 입을 그저 숨을 들이쉬고 내 뱉는 일에, 그리고<br />

양분섭취라는 단순한 일에만 쓴다는 것, 황금빛의 멋진 엉덩이 한 가운데를 그저 똥이나<br />

싸는 그런 슬픈 일에만 쓴다면, 그건 신성모독이 아닌가요? 이 혀는 그저 몇 마디 말이<br />

나 하고 의미 없는 대화나 할 수 있을 뿐인가요? 이 무슨 낭비입니까? 이 무슨 인색함이<br />

란 말입니까? 이거야 말로 이중의 악덕입니다. [...] 지옥은 섹스를 게을리한 게으름과 태<br />

만에 벌을 내리고, 영원한 형벌이 뒤따를 겁니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지는 건 바<br />

로 정조를 지켰기 때문이죠. 56)<br />

이는 정숙한 투르벨 부인에게 자신과의 동침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발몽의 논리이<br />

지만 실제로는 여성인 메르테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관객에게는 예상 밖의 표<br />

현으로 충격을 주게 되고 웃음과 함께 상대를 도구화 내지 사물화 하는 논리의 폭력<br />

성이 재인식된다. 다시 말해 폭력적인 남성 언어가 여성의 입을 통해 나옴으로써 이<br />

중화된 인물연기의 희극성이 드러나고 폭력성을 함축한 양성간의 대립이 상징화되는<br />

것이다. 57) 이에 더하여 투르벨 부인 역할을 하는 남성 발몽, 윤정섭의 과장된 반응<br />

55) Vgl. James K. Feibleman: Der Sinn des Komischen, in: Wesen und Formen des Komischen im<br />

Drama, hrsg. v. Reinhold Grimm und Klaus L. Berghahn, Darmstadt 1975, S. 78.<br />

56) 공연대본 사중주, 실린 곳: 사중주 공연프로그램, 2011, 19-20쪽.<br />

57) Jan Berg: Heiner Müllers Quartett, in: Deutsches Drama der 80er Jahre, hrsg. v. Richard Weber,<br />

Frankfurt am Main 1992, S. 214.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85<br />

연기와 소극장에서 보기 힘든 과장된 분장 또한 공연에 희극성을 더하는 요소이다.<br />

발몽은 발몽 역할을 하는 메르테유의 유혹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br />

스스로 무너지는 투르벨 역할을 진지함과 희극성의 교묘한 혼합으로 보여준다. 벗은<br />

몸의 아름다움을 기억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발몽의 제안에 투르벨은 옷을 벗으며 다<br />

음과 같이 말한다. 이 유혹의 대사는 신앙심으로 교회 밖에 모르는 정숙한 부인이라<br />

는 투르벨의 이미지를 일순간에 뒤엎는 반전과 같은 것으로 정숙이라는 가면 뒤에<br />

숨은 여성의 창녀성을 드러낸다.<br />

발몽: 당신이 흔들리고 있는 게 보여요, 당신이 그 어려운 시험을 견뎌낼까요? 당신이 내<br />

젖가슴에 저항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이게 바로 그 시험이에요, 난 여자예요, 발몽... 당<br />

신이 여자를 이렇게 바라보면서도 남자가 아닐 수 있나요? 58)<br />

이 대사와 함께 객석을 향해 돌아서는 투르벨의 젖가슴은 분장으로 만들어진 과장<br />

된 젖가슴으로 드러난다. 실제 남성의 몸에 붙인 젖가슴은 조야한 것이긴 하나 예상<br />

치 못한 놀라움을 발생시킨다. 이 놀라움이 희극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 희극의 순<br />

간은 유혹과 정복의 과정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구체화하고, 이 관계는 이어지는<br />

발몽의 세실 정복 과정에서 지배의 폭력으로 더욱 극단화된다. 발몽은 트루벨 부인을<br />

유혹할 때와 마찬가지로 육체의 본능을 미화하며 세실을 유혹해 정복하고 살해한다.<br />

살해의 이유는 세실이 늙어가는 것을 볼 수 없어, 지금 그 젊음의 상태로 그녀가 영<br />

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여성을<br />

육체적으로 정복하려는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육체를 도구화하는 남성의 힘이다. 여<br />

성은 남성에게 복종하고 여성의 몸은 남성의 욕구 앞에 무기력한 쾌락의 대상으로<br />

축소된다. 이어서 메르테유와 발몽이 벌이는 마지막 역할 놀이는 희생자 놀이이자 실<br />

제적인 죽음의 놀이이다. 메르테유가 제안한다.<br />

메르테유: 우리 이제 그 대통령 부인을 죽게 하죠, 헛된 자기 과실로 말예요, 발몽. 여성 희<br />

생자죠.<br />

Merteuil: Und jetzt wollen wir die Präsidentin sterben lassen, Valmont, an ihrem<br />

58) 공연대본 사중주, 실린 곳: 사중주 공연프로그램, 2011, 22쪽.


18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vergeblichen Fehltritt. Das Damenopfer. 59)<br />

발몽은 이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정복당한 투르벨 부인 역할을 시작한<br />

다. 발몽은 남성으로서 정복당한 여성, 희생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해 낸다. 특히<br />

자살을 암시하는 투르벨 부인의 역할을 하는 발몽의 대사는 발몽의 역할을 하는 메<br />

르테유가 아닌 관객을 직접 향함으로써 텍스트가 담고 있는 저항의 의미가 관객에게<br />

명확하게 직접 전달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메르테유가 유혹자 발몽의 역할을 바로<br />

관객을 대상으로 직접 행한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가해자의 시각과 희생자의 시각을<br />

관객에게 바로 전달하여 관객의 빠른 판단을 이끌어내는 채윤일의 전략적 연출로 평<br />

가할 수 있다. 메르테유로부터 받은 독이 든 포도주 잔을 단숨에 비운 발몽 역의 윤<br />

정섭은 실제 죽어가는 발몽과 발몽의 유혹에 넘어가 정복당하고 버림받은 희생자 투<br />

르벨 부인의 마지막 저항을 담담함과 절규의 혼합으로 연기한다. 투르벨로서 그가 관<br />

객을 향해 절제된 어조로 던지는 자살하는 여자에 대한 묘사는 역사 속에서 희생당<br />

한 모든 존재를 상기시킨다.<br />

발몽: [...] 당신을 사랑했어요, 발몽. 하지만 자살하기 전에, 난 당신이 심어놓은 허무가 내<br />

안에서 자라지 못하도록 내 자궁 속에다 바늘을 꽂아 놓을 거예요, 발몽. 당신은 괴물이<br />

에요, 나도 괴물이 되고 싶군요. 독으로 푸르게 부어오른 채, 난 당신의 꿈속을 지나갈<br />

거예요. 밧줄에 목을 맨 채 흔들거리면서 당신을 위해 춤을 출 거예요. 내 얼굴은 푸른<br />

가면이 될 거예요. 혀는 길게 빼물고. 난 가스 오븐 안에 머리를 넣으면 어떻게 될지 알<br />

게 되겠죠. [...] 여자라는 것이 좋아요, 발몽. 승리자가 아니라는 것도. 60)<br />

그러나 다음 순간 발몽은 감정의 절제를 포기하고 격한 절규를 내뱉는다. “난 당<br />

신의 그 좆대가리가 부럽지 않아요.” 이는 원작의 대사 “난 당신 안에서 자라고 있는<br />

당신의 그 하수구가 부럽지 않아요, 발몽 Ich beneide Sie nicht um die Kloake, die in<br />

Ihnen wächst, Valmont” 61)을 원색적으로 변형한 것으로 희생자의 분노를 보다 강하<br />

게 표현하기 위한 연출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이라는 투르벨의 위치와<br />

59) Heiner Müller: Quartett, a.a.O., S. 63.<br />

60) 공연대본 사중주, 실린 곳: 사중주 공연프로그램, 2011, 25쪽.<br />

61) Heiner Müller: Quartett, a.a.O., S. 65.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87<br />

작품 전체가 대부분 수사적이고 현학적인 텍스트 위주라는 점을 생각할 때 갑작스런<br />

외침과 비속어 표현은 그 본래의 연출 의도와 달리 과도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br />

관객에겐 부담스러운 연기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 조절<br />

에 뛰어난 윤정섭의 연기는 다시 포도주에 탄 독으로 죽어가는 발몽에 집중하게 만<br />

든다. 메르테유는 소파에 도도한 자세로 기대 앉아 죽어가는 발몽을 바라본다. 성 싸<br />

움의 놀이는 죽음과 몰락의 놀이로 끝난다. 메르테유의 마지막 대사는 채윤일의 연출<br />

방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메르테유는 무표정하게, 모노톤으로, 던지 듯 마지막 말<br />

을 뱉는다. “어느 창녀의 죽음. 너와 나, 내 사랑, 암덩어리 같은.” 원작의 마지막 대<br />

사 “어느 창녀의 죽음. 이제 우리 둘 뿐이로구나, 암, 내 사랑 Tod einer Hure. Jetzt<br />

sind wir allein Krebs mein Geliebter” 62)을 변형한 이 대사는 채윤일이 메르테유와 발<br />

몽의 성 싸움을 역사적 관계 보다는 사랑 자체에 더욱 무게를 두고 파악했음을 증명<br />

한다. 63) 앞서 언급했듯 채윤일은 사중주를 사랑 부재의 세계에 대한 야유로 읽었<br />

기에 이 같은 대사 변형이 가능하다. 그러나 채윤일은 앞서 언급한 연출의 글에서도<br />

밝혔듯이 사중주가 단순한 사랑 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절망적 세계를 드러내 역<br />

사의 발전을 상기시키는 역설임을 잊지 않고 있다. 공연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전체적<br />

인 그림은 메르테유와 발몽이 벌이는 성의 유희이자 사랑싸움이다. 그러나 이 유희와<br />

싸움이 욕망을 중심으로 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읽힐 때 공연 전체는 하나의<br />

커다란 상징적 기호로 자리한다. 채윤일은 사중주 공연으로 작게는 남녀 간의 치<br />

명적 사랑놀이부터 크게는 지배와 억압, 우위와 하위의 역사적 대립구조까지 그 사유<br />

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br />

4. 맺는 말<br />

하이너 뮐러는 무엇보다도 폭력이 사라진 인간적인 사회를 꿈꾸었던 작가이다. 현<br />

62) Ebd.<br />

63) 이러한 해석의 방향이 객석에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음은 동아일보 리뷰(2011. 5. 31)의 제목에서<br />

도 확인된다. 권재현: 2명이 연기하는 네 사람의 악마적 사랑, http://news.donga.com/3/all/<br />

3/20110531/37659408/1# 참조.


18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대 사회가 어떠한 형태로든 비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한다면 하이너 뮐러의 작품은 어<br />

디에서든 시의성을 갖는다. 지금의 시대가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대가<br />

아니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맞서서 진정한 삶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br />

예술의 사명임을 인식한다면 이윤택과 채윤일이 하이너 뮐러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br />

와 의미도 바로 그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연출가는 똑같이 진지한 놀이로<br />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세상에 저항한다. 이번 두 연출가의 하이너 뮐러<br />

공연이 예전의 공연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보다도 원작에 충실하고 뮐러의<br />

텍스트를 최대한 존중하여 그 언어적 특성을 객석에 전달해 주었다는 데 있다. 하이<br />

너 뮐러의 텍스트는 기호와 상징, 이미지가 가득한 것으로 예전의 공연들은 그 이미<br />

지들과 상징적 기호들을 형상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력을 요<br />

구하였다. 그러나 그 공연들이 기호와 이미지의 조합으로 관객의 새로운 인식 가능성<br />

을 만들어내고 사고의 적극성을 일깨우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같은 형식으로 인<br />

해 작품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작가의 언어 자체가 사라졌던 것이 사실이다. 기호와<br />

상징도 텍스트에서 나온다.<br />

햄릿기계와 사중주, 두 공연의 공통점은 철저한 텍스트 분석에 기반을 둔 자<br />

유로운 연출이라는 점이다. 이윤택은 햄릿기계 텍스트를 들려주면서 그 청각에서<br />

오는 이미지와 상징들을 무대 위 집단적 연기를 통해 시각적으로 다시 보여주는 형<br />

식을 택해 하이너 뮐러 특유의 시적 언어를 극장 공간에 채워 넣는다. 이는 또한 관<br />

객들이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느끼게 하려는 연출적 배려이기도 하다. 또한<br />

텍스트의 소리와 내용이 청각과 시각을 통해 동시에 관객들에게 전달됨으로써 관객<br />

은 난해한 이미지의 의미들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물론 이 같은<br />

공연 형식이 수많은 이미지와 기호들을 통해 관객의 사고 능력을 의도적으로 끌어올<br />

리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 자칫 불필요하게 설명적으로 보일 수도 있음을 인정<br />

해야 할 것이다. 채윤일의 경우는 작가의 텍스트에 더욱 철저한 연출을 보여 준다.<br />

물론 사중주 텍스트 자체가 두 등장인물 간의 수사적 논리 싸움이므로 텍스트의<br />

중요성이 어느 작품보다 크다고 하겠으나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기호의 성<br />

격은 햄릿기계 못지않다. 그러나 채윤일은 철저하게 텍스트에 집중했고 섣부른 주<br />

관적 해석을 피했다.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텍스트가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br />

있었던 것은 오히려 텍스트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두 연기자 배보람,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89<br />

윤정섭이 보여준 세밀한 연기의 힘도 컸다. 물론 작품 자체가 2인극 구성이기에 공연<br />

은 배우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채윤일의 연출이 확인시켜 준 것은 강한<br />

은유와 높은 수사적 표현의 텍스트라 하더라도 그 의미의 철저한 분석에 바탕을 둔<br />

공연은 텍스트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br />

어느 면에서 채윤일의 연출은 텍스트를 사랑의 부재라고 하는 관점에서 상당부분 축<br />

소시켜 무대화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축소된 것이 인간의 야만적 욕망, 그리고<br />

그 욕망으로 비유되는 역사의 야만적 구조로 재확대되는 상징성을 갖추어 하이너 뮐<br />

러의 무대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윤택의 햄릿기계와 채<br />

윤일의 사중주는 이처럼 텍스트에 집중하는 철저함을 통해 작가의 언어 특성을 효<br />

과적으로 드러내고 텍스트가 함유하고 있는 상상의 공간을 동시에 표출한, 정직한 연<br />

출의 결과물이다.<br />

참고문헌<br />

1차 문헌<br />

공연대본 햄릿기계(<strong>정민영</strong> 역, 이윤택 윤문), 실린 곳: 햄릿기계 공연프로그램, 2011,<br />

44-49쪽.<br />

공연대본 사중주(<strong>정민영</strong> 역, 이윤택 윤문), 실린 곳: 사중주 공연프로그램, 2011,<br />

16-25쪽.<br />

쇼데를로 드 라클로, 윤진 옮김: 위험한 관계, 문학과지성사, 2007.<br />

Müller, Heiner: Die Hamletmaschine, in: ders.: Werke 4, Frankfurt am Main 2001, S.<br />

543-554.<br />

Müller, Heiner: Quartett, in: ders.: Werke 5, Frankfurt am Main 2002, S. 43-65.<br />

2차 문헌<br />

권재현 : 2명이 연기하는 네 사람의 악마적 사랑, , 2011년 5월 31일,<br />

http://news.donga.com/3/all/ 3/20110531/37659408/1#<br />

송동준: 브레히트 이후의 동독 드라마. 하이너 뮐러를 중심으로, 1989년


19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가을호, 11-41쪽.<br />

오동식: 하이너 뮐러의 아버지 유령, 실린 곳: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제19집, 2008,<br />

135-152쪽.<br />

이윤택: 내 연극은 전선의 이쪽과 저쪽 그 사이, 아니면 그 위에 존재합니다, 실린<br />

곳: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 공연프로그램, 2011, 4쪽.<br />

이윤택: 연출의 말. 다시 하이너 뮐러를 막 올리며, 실린 곳: 햄릿기계, 공연프로그<br />

램, 2011, 13쪽.<br />

이윤택: 진지한 놀이 - 하이너 뮐러와 햄릿기계에 대한 메모, 실린 곳: 햄릿기계,<br />

공연프로그램, 2011, 14-17쪽.<br />

이윤택: 통속소설을 황폐한 역사를 되비추는 거울로 고쳐 쓰다, 실린 곳: 사중주 공<br />

연프로그램, 2011, 5쪽.<br />

이윤택: 연출 노트, 실린 곳: 청부. 어느 혁명에의 회상, 공연프로그램, 1990, 4-5쪽.<br />

<strong>정민영</strong>: 하이너 뮐러 극작론, 사랑의학교, 1998.<br />

<strong>정민영</strong>: 동독문학 수용, 실린 곳: 차봉희 편: 한국의 독일문학 수용 100년 (1), 한신<br />

대출판부, 2001, 265-300쪽.<br />

채윤일: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하이너 뮐러 기획전을 열며, 실린 곳: 아르투로 우이<br />

의 출세. 공연프로그램, 2011, 5쪽.<br />

채윤일: 연출의 글. 냉소적인 웃음 속에 드러나는 절망적인 세계관, 실린 곳: 사중<br />

주, 공연프로그램, 2011, 4쪽.<br />

Berg, Jan: Heiner Müllers Quartett, in: Deutsches Drama der 80er Jahre, hrsg. v. Richard<br />

Weber, Frankfurt am Main 1992, S. 210-221.<br />

Feibleman, James K.: Der Sinn des Komischen, in: Wesen und Formen des Komischen<br />

im Drama, hrsg. v. Reinhold Grimm und Klaus L. Berghahn, Darmstadt 1975,<br />

S. 77-92.<br />

Keller, Andreas: Drama und Dramaturgie Heiner Müllers zwischen 1956 und 1988,<br />

Frankfurt am Main 1992.<br />

Lehmann, Hans-Thies / Primavesi, Patrick (Hrsg): Heiner Müller Handbuch.<br />

Leben-Werk-Wirkung, Stuttgart 2003.<br />

Müller, Heiner: Gesammelte Irrtümer, Interviews und Gespräche, Frankfurt am Mein


1986.<br />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91<br />

Müller, Heiner: Gesammelte Irrtümer 2. Interviews und Gespräche, Frankfurt am Main<br />

1990.<br />

Müller, Heiner: Krieg ohne Schlacht. Leben in zwei Diktaturen, Köln 1992.<br />

Schulz, Genia: Heiner Müller, Stuttgart 1980.<br />

Weber, Richard / Girshausen, Theo: Notate zur Hamletmaschine, in: Hamletmaschine.<br />

Heiner Müllers Endspiel, hrsg. v. Theo Girshausen, Köln 1978, S. 10-22.<br />

Zusammenfassung<br />

Zur neuesten Heiner Müller-Rezeption in Korea<br />

-Yun-Taek Lees Hamletmaschine und Yun-Il Chaes Quartett<br />

Chung, Minyoung (HUFS)<br />

Ende der 80er Jahre und in den 90er Jahren, und bis 2002 erlangte Heiner Müller<br />

die nachdrückliche Aufmerksamkeit der jüngeren koreanischen Theaterleute. Vor allem<br />

Die Hamletmaschine, Verkommenes Ufer Medeamaterial Landschaft mit Argonauten<br />

und Bildbeschreibung wurden von den koreanischen jüngeren Regisseuren für wichtig<br />

gehalten und sehr experimental inszeniert. Diese Inszenierungen konzentrierten sich<br />

meistens auf die kritische Geschichtsauffassung Heiner Müllers, also auf den Kreislauf<br />

der Gewalt in der Geschichte, verbunden mit einem katastrophalen Geschichtsbild.<br />

Dieses Thema wurde sehr metaphorisch und symbolisch ausgedrückt und dadurch<br />

konnten vielfältige Möglichkeiten des Experiments auf der koreanischen Bühne eröffnet<br />

werden. Trotzdem war es zu schade, dass die koreanischen Zuschauer die eigentliche


19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Sprache von Heiner Müller nicht erfahren konnten. Durch die verschiedenen<br />

experimentellen Versuche mit vielen Zeichen, Images und Symbolen waren Heiner<br />

Müllers Texte selbst fast verschwunden. Nachdem die Ideologie verschwunden war,<br />

und in der komplizierten Stimmung der Globalisierung schien es, dass sich koreanische<br />

Theaterleute nicht mehr für die Stücke Heiner Müllers interessieren.<br />

Die beiden Regisseure, Yun-Taek Lee und Yun-Il Chae rezipieren wieder Heiner<br />

Müller, um eine Antwort darauf zu finden, wie das Theater an die Realität Fragen<br />

stellen und ihr Widerstand leisten soll. Yun-Taek Lee inszenierte Die Hamletmaschine<br />

(29. April 2011 bis 8. Mai 2011, im Guerilla Theater Seoul, übersetzt von Minyoung<br />

Chung) und Yun-Il Chae brachte Quartett auf die Bühne (12. Mai 2011 bis 5. Juni<br />

2011, im Guerilla Theater Seoul, übersetzt von Minyoung Chung). Im Vergleich zu<br />

den früheren Aufführungen der Stücke von Heiner Müller ist es von besonderer<br />

Bedeutung, dass die beiden Inszenierungen ganze Texte von Heiner Müller ohne<br />

Bearbeitung benutzt haben und dadurch das Publikum Müllers eigene Sprache erneut<br />

erfahren konnte. Bei der Aufführung Die Hamletmaschine tritt der Hamletdarsteller als<br />

Vorleser auf. Während er die Texte der Hamletmaschine liest, wird der Inhalt der<br />

Texte von dem Kollektivspiel konkret und zugleich metaphorisch ausgedrückt. Durch<br />

diese Spielform konnten die Zuschauer sich dem Thema der Reflexion der<br />

Intellektuellen über die gegenwärtige Geschichte und der poetische Sprache von Heiner<br />

Müller auf unkomplizierte Weise annähern. Yun-Il Chae hat Quartett für ein Stück,<br />

das die Welt ohne wahre Liebe verlacht und neckt, gehalten. Formal verstärkte er die<br />

komischen Elemente im Text wie Travestie, also die komische Wirkung des<br />

Rollentauschs zwischen Merteuil und Valmont und dadurch wurde Quartett zur ernsten<br />

Komödie und zu einer großen Metapher über die Unterdrückungsstruktur der<br />

Gesellschaft und die Gewalt in der Geschichte. Die beiden Inszenierungen von<br />

Yun-Taek Lee und Yun-Il Chae gründen sich auf eine tiefe Analyse der Stücke und<br />

zeigen damit neue produktive Möglichkeiten der Heiner Müller-Rezeption auf der<br />

koreanischen Bühne.


Keyword<br />

(한글/독일어)<br />

하이너 뮐러<br />

Heiner Müller<br />

이윤택<br />

Yun-Taek Lee<br />

∙ 필자 E-Mail: dramaturgie@hufs.ac.kr (<strong>정민영</strong>)<br />

최근 한국 무대의 새로운 하이너 뮐러 수용 193<br />

햄릿기계<br />

Die Hamletmaschine<br />

채윤일<br />

Yun-Il Chae<br />

사중주<br />

Quartett<br />

수용<br />

Rezeption<br />

∙ 투고일: 2011년 6월 30일/ 심사일: 2011년 7월 15일/ 심사완료일: 2011년 7월 31일

Hooray! Your file is uploaded and ready to be published.

Saved successfully!

Ooh no, something went w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