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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3 봄호 - 프랑스문화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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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올리비에(Émile Ollivier)의 통행Passages ❚ 95<br />

정착의 장소인 집은 그 자체로 정체성의 절대적 형식이지만 동시에 변<br />

화의 장소, 머무르다 가는 “통행의 장소”이다. 집을 떠나는 행위는 선택<br />

일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집의 생리학이기에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그<br />

러나 집은 항상 거기에 있다. 그래서 이 떠남은 영원한 떠남이 아니다.<br />

“장소의 심신의학, 지정학적 요인들의 무의식적 발현” 16) 도 주체에게 무심<br />

코, 자주, 어느 순간, 작용하여 그 뿌리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br />

집-고국이 품지 못하여 유랑의 길을 떠나야만 했던, 아메데/브리지트<br />

부부와 그 동료들 그리고 노르망/레이다 부부와 노르망의 정부였던 앙파<br />

로는 강박관념처럼 조국에 대한 기억과 향수로 힘겨운 삶을 보내게 된<br />

다. 그들의 삶이 힘든 것은 망각과의 싸움을 접을 수밖에 없는 절망의 순<br />

간을 보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 새로운 정<br />

체가 그들을 지배한다 해도 그들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br />

은 어떤 문화이건 하나의 문화가 계산에 넣지 못한 부분을 감당하는 삶<br />

일 뿐이다. 이 타지는 그들에게 분명히 정착이 아닌 “통행의 장소”이지<br />

만, 이 문화의 영역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야닉 라엥의 생각처럼 “망명이<br />

라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여기와 저기에 있는 동시에 안과 바깥에 있는<br />

것이다” 17) . 그들은 자의 건 타의 건 자기 문화와 타문화 사이를 넘나들<br />

것이다. 넘나들었다는 것은 서로 경계 진 두 곳을 지날 수 있도록 통로를<br />

냈다는 의미다. 닫혔던 것이 열렸다는 의미에서 가치론적으로 자기 정체<br />

성과 도덕성을 지닌다. 서로를 나누고 막았던 경계를 허물었다는 의미에<br />

서 열림은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뜻을 갖는다. 에밀이 통행에서 인용한<br />

제사( 題 詞 ), 몽테뉴의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고, 통행을 그린다”가 겨냥<br />

하는 것이 바로 경계의 결과인 막힘의 악순환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가능<br />

16) Simon Harel, op.cit., p. 204. “장소의 심신의학”은 비교적 낯선 표현인데 “une<br />

psychosomatique de l'espace‘의 역어이다. 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br />

신의학이란 표현의 뜻을 알면 될 것 같다. 심신의학이란 환자의 마음가짐, 태도, 감<br />

정상태가 치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즉 몸과 마음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의학<br />

의 치료형태다. '플라시보(Placebo, 가짜 약) 효과'를 그 예로 들 수 있다.<br />

17) Yannick Lahens, L'Exil: entre l'ancrage et la fuite l'écrivain haïtien, Port-au-Prince,<br />

Deschamps, 1990,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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