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13 봄호 - 프랑스문화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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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2014 Views

44 ❚ 2013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3집 궁에서 홀로 분만하고 있는 여왕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출산하 고 있다. 분명 머리가 큰 괴물의 아기를 낳았을 것이지만 (…) 살 기 힘들고 결국 부패할 것이다. 마침내 모든 것은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그리고 여왕은 기진맥진해서 누워있는 채로 언젠가는 그것이 끝나리라는 희망도 없이 아주 조금씩 끊임없이 계속되는 헛된 출혈로 쇠약해져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여왕의 출산이 고독하게 진행되지만, 머리만 큰 태아는 죽어 부패하고 여왕 자신도 심한 출혈로 죽게 된다. 왕궁과 여왕, 대두의 태아는 비유의 의미를 띤다. 왕궁은 스페인 좌파 인민전선 정부를 의미한다면, 조산으로 죽은 대두의 태아는 실패로 끝난 스페인 혁명을 가리킨다. 이러한 비유 는 혁명이 성공하기를 기대했던 시몽의 꿈이 헛된 희망으로 끝나버렸음 을 의미한다. 실패한 혁명을 다루는 호텔은 1장에서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와 내 용을 암시하고, 이를 다시 5장에서 반복하고 있다. 중심이 되는 3장은 혁 명가의 장례식을 묘사하고 있다. 2장과 4장에서는 혁명의 상황을 누군가 에 의해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끊임없이 외부를 주시하고 있 는 “이태리인 l'Italien”, 즉 “총을 든 사나이 un Homme-Fusil”의 상황으 로 대비되어 묘사되고 있다. 마지막 5장은 총을 든 사나이의 자살을 통 해 혁명의 실패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에는 한 밤중에 벌어진 두 죽음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이태리인이 수년전에 동족을 살해한 사건과 이태리인의 자살이다. 시간은 이태리인이 카페에서 살인을 이야기 하는 시점과 4명의 등장인물인 미국인 l'Américain, 이태리인, 교사 le maître d'école, 대학생이 살해될지 모른다는 공포로 인해 밀폐된 공간에서 망을 보며 외부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 시점은 1936년의 바르셀 로나에서 혁명을 목격한 시점과 17년 후에 다시 방문했던 시점과 중첩이 된다. 공간은 카페, 호텔방, 바르셀로나가 반복된다. 살해는 자살로 이어 지고, 결국 끊임없이 반복되는 살해의 이야기는 자살을 예고하고 있다고

클로드 시몽의 호텔 Le Palace과 ‘글쓰기의 현재’ ❚ 45 볼 수 있다. 살해의 공포는 총으로 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하여 혁명가의 장례식은 태아의 죽음과 동일시된다. 호텔은 동일한 스페인 내란을 주제로 다루는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 희망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1937년의 희망과 그로부터 25년 뒤에 출간된 시몽의 호텔은 각각 서로 다른 서술구조를 드러낸다. 현대문학 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룬 희망과 호텔은 서술기법이나 혁명에 대한 관점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말로는 국제 의용군으 로 스페인 내란에 참여하여 공화군의 공군을 직접 지휘하였다. 1936년 스페인 전쟁에 참여했던 말로는 이듬해 1937년 2월 주력 항공기가 격추 당함으로써 전투가 불가능해지자, 스페인 지원 모금을 마련하고자 미국 과 캐나다에 갔다가 귀국하여 르포르타주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희망을 12월에 출간하였다. 희망은 말로의 소설 가운데 가장 긴 소설로서, 스 페인 내란의 전쟁 상황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희망은 총 3편으로 구분되는데, 제1편은 「서정적 환상 L'Illusion lyrique」, 제2편은 「만사나레스 강 Le Manzanares」, 제3편은 「희망 L'Espoir」이다. 1편은 다시 2부로 나뉘는데, 제1부는 「서정적 환상 L'Illusion lyrique」, 제2부는 「묵시록의 실행 Exercice de l'Apocalypse」이다. 2편도 2부로 세분되는데 제1부는 「존재와 행위 Etre et Faire」, 제2부는 「좌파의 피 Sang de Gauche」이다. 제3편은 제목 없는 6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소설의 구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희망은 전쟁의 현장을 있는 그대 로 기록하기보다 묵시록의 허구적 의미구조를 빌려 기독교의 구원의 의 미 구조로 구성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적어도 희망의 구조는 묵시록처 럼 인간의 ‘희망’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닮았다. 물론 희망은 작가 자신의 체험과 전쟁장면, 상황들을 기록했던 그 현재의 순간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주요 등장인물들인 총동맹 의 지휘자이자 인간적인 공산주의자 마누엘 Manuel, 교회의 인습과 허 위, 타락을 증오하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히메네스 Ximenes 대령, 작 가의 모습이 투영된 국제공군의 지휘관 마니엥 Magnin 등을 통해 개인

클로드 시몽의 호텔 Le Palace과 ‘글쓰기의 현재’ ❚ 45<br />

볼 수 있다. 살해의 공포는 총으로 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하여<br />

혁명가의 장례식은 태아의 죽음과 동일시된다.<br />

호텔은 동일한 스페인 내란을 주제로 다루는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br />

희망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1937년의 희망과 그로부터 25년 뒤에<br />

출간된 시몽의 호텔은 각각 서로 다른 서술구조를 드러낸다. 현대문학<br />

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룬 희망과 호텔은 서술기법이나 혁명에 대한<br />

관점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말로는 국제 의용군으<br />

로 스페인 내란에 참여하여 공화군의 공군을 직접 지휘하였다. 1936년<br />

스페인 전쟁에 참여했던 말로는 이듬해 1937년 2월 주력 항공기가 격추<br />

당함으로써 전투가 불가능해지자, 스페인 지원 모금을 마련하고자 미국<br />

과 캐나다에 갔다가 귀국하여 르포르타주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희망을<br />

12월에 출간하였다. 희망은 말로의 소설 가운데 가장 긴 소설로서, 스<br />

페인 내란의 전쟁 상황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다.<br />

희망은 총 3편으로 구분되는데, 제1편은 「서정적 환상 L'Illusion lyrique」,<br />

제2편은 「만사나레스 강 Le Manzanares」, 제3편은 「희망 L'Espoir」이다.<br />

1편은 다시 2부로 나뉘는데, 제1부는 「서정적 환상 L'Illusion lyrique」,<br />

제2부는 「묵시록의 실행 Exercice de l'Apocalypse」이다. 2편도 2부로<br />

세분되는데 제1부는 「존재와 행위 Etre et Faire」, 제2부는 「좌파의 피<br />

Sang de Gauche」이다. 제3편은 제목 없는 6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br />

소설의 구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희망은 전쟁의 현장을 있는 그대<br />

로 기록하기보다 묵시록의 허구적 의미구조를 빌려 기독교의 구원의 의<br />

미 구조로 구성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적어도 희망의 구조는 묵시록처<br />

럼 인간의 ‘희망’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닮았다.<br />

물론 희망은 작가 자신의 체험과 전쟁장면, 상황들을 기록했던 그<br />

현재의 순간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주요 등장인물들인 총동맹<br />

의 지휘자이자 인간적인 공산주의자 마누엘 Manuel, 교회의 인습과 허<br />

위, 타락을 증오하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히메네스 Ximenes 대령, 작<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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