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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몰라르의 프랑스문화시스템도표를 통해 본 프랑스문화정책의 변천과 문화국토개발 ❚ 261<br />
무의미해져 창조자 그룹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대하였고 문화예술을 소비<br />
하는 대중 또한 교양 있는 대중이 아니라 소비산업의 소비자처럼 폭발적<br />
으로 늘어났다. 앞서 문화시스템에서 살펴본 대중의 수적 증가의 원리는<br />
말로 시스템의 가장 큰 변화를 유도했다. 말로의 시스템은 수적 팽창의<br />
원리에 따라 예술시스템에서 문화시스템으로의 이행이 발생했고 수의 법<br />
칙에 순응하는 문화 민주화 démocratisation culturelle가 시스템의 핵심<br />
정책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결정권자-중개자’가 구축하는 문화정책의<br />
축은 문화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말로는 이른<br />
바 문화라는 현대적 종교의 대주교가 되었던 것이다. 중개자 그룹도 문<br />
화 민주화를 기초하는 수의 법칙에 호응한다. 중개자는 제 3공화국과 달<br />
리 저널리즘의 기자와, 전통적인 대학이나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크게 두<br />
부류로 나뉜다. 기자들은 비평이 아니라 문화 대주교 말로의 대변인 또<br />
는 확성기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스스로의 영향력을 새롭게 드높였다. 왜<br />
냐하면 중개자 그룹 역시 다수의 창조자와 다수의 대중을 매개하면서 문<br />
화 대주교의 위업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켜 스스로 미디어의 정치적 영향<br />
력을 넓혔던 것이다. 반대로 대학과 아카데미의 역할은 전달매체와 내용<br />
의 비대중적 특성으로 인해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였다.<br />
그러나 앙드레 말로의 꿈은 68혁명과 더불어 실패하기에 이른다. 문화<br />
에 국가 차원의 행정 개념을 부과하여 문화를 민중의 손에 쥐어주고자<br />
했던 대주교의 꿈은 바로 그 민중들에 의해 실패했던 것이다.<br />
말로의 문화부는 제 3공화국의 문화정책과 달리 교육부의 미비점을 보<br />
완하면서 탄생되었다. 말로는 문화예술교육과 문화 민주화의 근본적 상<br />
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교육을 역사적이고 추상적인 이성의 활동이<br />
라고 보았다. 말로가 문화부를 교육부에서 독립시킨 것은 문화활동을 이<br />
성보다 감수성의 영역에, 그리고 교육보다 감정적 교류에 속한다고 보았<br />
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