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13 봄호 - 프랑스문화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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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 2013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3집 화를 병행하여 추진하였다. 예술 분야도 위에서 아래로 시달되는 수직적 문화정책이 되어 지방자치단체의 문화는 ‘국가의 저장고’ 역할만 담당하 였다. 하지만 제 3공화국의 문화정책은 그 자체로 모순을 안고 있다. 제 3공 화국의 주도자들은 어떤 유파나 예술가를 국가가 직접 통제하거나 개입하 지 않는 민주적 자유방임주의 노선을 추구하였고 문화예술은 전통적인 전 문가들에게 맡겼다 12) . 제 3공화국은 교육부 산하에 보자르국 Direction des Beux-Arts을 두고 보자르 출신을 관료로 기용하여 문화사업을 관장하 였으며, 나아가 보자르 출신의 예술가, 비평가, 기업과 메세나 그리고 교 양인들로 구성된 보자르최고이사회 Conseil supérieur des Beaux-Arts를 행정 기구로 삼아 공화국의 문화정책 사업을 보자르최고이사회의 의사 결정에 맡겼다. 내각 정치체제의 제 3공화국은 문화정책 영역 또한 보자 르최고이사회라는 국회 성격의 조직에 내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모순이 발생한다. 우선 민주공화주의 체제인 제 3공화국은 전통적 군주 제나 귀족의 엘리트주의 예술 개념에 속하는 보자르를 내세움으로써 엘 리트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지난 시대의 확고부동한 고전이나 걸작의 미 학을 고수하는 보수적이고 관습적인 보자르 경향의 예술가에게 지원과 재원이 집중됨으로써 제 3공화국의 문화정책은 공인예술의 위험을 안게 되었다. 제 3공화국은 보자르 출신의 지배에 놓이면서 심각하게 공인예 술과 저주받은 예술로 이분화 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반 고흐 같 은 화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3공화국 이전에 보자르의 경향에 대항 한 최초의 저주받은 예술의 출현은 제 2 제정기인 1863년 살롱 전에 낙 선작인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과 당선작인 알렉산드르 카바넬 Alexandre Cabanel의 「비너스의 탄생 Naissance de Vénus」의 예를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보자르 행정기구의 결정권자와 더불어 문화정책을 결정하는 중개자 역시 대학과 아카데미회원으로 나뉘 12) Philippe Poirrier, L'Etat et la Culture en France au XXe siècle, p. 20.
클로드 몰라르의 프랑스문화시스템도표를 통해 본 프랑스문화정책의 변천과 문화국토개발 ❚ 259 는데 이들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왜냐하면 아카데미회원 주도로 예술의 규범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강베타 시스템에서 대중 또한 보자르와 매우 밀접하다. 대중은 소수이며 분화되지 못했지만 주로 그리스, 라틴의 고전 교육을 받은 자들이거나 개인적으로 예술가와 친분을 가진 사람들 로 구성된다. 6. 말로 시스템 : 최초의 문화부와 문화 민주화 제 3공화국의 강베타 문화시스템의 정책은 문화예술을 사적 개념에서 공적 개념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했지만 두 가지 차원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문화예술을 공화주의 국가와 관련하여 교육과 계몽의 수단 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보자르의 영향력 확대로 인해 공인예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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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병행하여 추진하였다. 예술 분야도 위에서 아래로 시달되는 수직적<br />
문화정책이 되어 지방자치단체의 문화는 ‘국가의 저장고’ 역할만 담당하<br />
였다.<br />
하지만 제 3공화국의 문화정책은 그 자체로 모순을 안고 있다. 제 3공<br />
화국의 주도자들은 어떤 유파나 예술가를 국가가 직접 통제하거나 개입하<br />
지 않는 민주적 자유방임주의 노선을 추구하였고 문화예술은 전통적인 전<br />
문가들에게 맡겼다 12) . 제 3공화국은 교육부 산하에 보자르국 Direction<br />
des Beux-Arts을 두고 보자르 출신을 관료로 기용하여 문화사업을 관장하<br />
였으며, 나아가 보자르 출신의 예술가, 비평가, 기업과 메세나 그리고 교<br />
양인들로 구성된 보자르최고이사회 Conseil supérieur des Beaux-Arts를<br />
행정 기구로 삼아 공화국의 문화정책 사업을 보자르최고이사회의 의사<br />
결정에 맡겼다. 내각 정치체제의 제 3공화국은 문화정책 영역 또한 보자<br />
르최고이사회라는 국회 성격의 조직에 내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br />
모순이 발생한다. 우선 민주공화주의 체제인 제 3공화국은 전통적 군주<br />
제나 귀족의 엘리트주의 예술 개념에 속하는 보자르를 내세움으로써 엘<br />
리트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지난 시대의 확고부동한 고전이나 걸작의 미<br />
학을 고수하는 보수적이고 관습적인 보자르 경향의 예술가에게 지원과<br />
재원이 집중됨으로써 제 3공화국의 문화정책은 공인예술의 위험을 안게<br />
되었다. 제 3공화국은 보자르 출신의 지배에 놓이면서 심각하게 공인예<br />
술과 저주받은 예술로 이분화 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반 고흐 같<br />
은 화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3공화국 이전에 보자르의 경향에 대항<br />
한 최초의 저주받은 예술의 출현은 제 2 제정기인 1863년 살롱 전에 낙<br />
선작인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과 당선작인<br />
알렉산드르 카바넬 Alexandre Cabanel의 「비너스의 탄생 Naissance de<br />
Vénus」의 예를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보자르 행정기구의 결정권자와<br />
더불어 문화정책을 결정하는 중개자 역시 대학과 아카데미회원으로 나뉘<br />
12) Philippe Poirrier, L'Etat et la Culture en France au XXe siècle, p.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