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13 봄호 - 프랑스문화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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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2014 Views

256 ❚ 2013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3집 프랑스문화정책은 근본적으로 보존의 의미가 중요하다. 문화정책에 관 여하는 결정권자의 영향력도 창조의 불확실을 두려워하는 재정의 보수적 원칙이 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문화부 예산 의 가장 큰 비중이 창작의 영역(30%)에 있다는 목수정의 지적은 프랑스 문화정책의 보존의 비중을 간과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1) . 5. 제 3공화국의 강베타 시스템 : 공적 예술과 보자르 현대 프랑스문화시스템은 제 2제정의 군주제가 몰락하고 시민주권에 기초한 제 3공화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탄생한 이후부터 시대적 추이에 11) 목수정, 「문화민주화, 문화다양성, 지역분권 : 프랑스 문화정책의 세 가지 미션」, p. 101.

클로드 몰라르의 프랑스문화시스템도표를 통해 본 프랑스문화정책의 변천과 문화국토개발 ❚ 257 따라 세 가지 시스템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 가지 문화시스템을 구분하 는 주요 원리는 국가가 문화를 관장하는 문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 서 세 가지 시스템은 문화를 행정적 차원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문화정책 의 주도자들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1870년부터 1940년까지의 제 3공화국은 공화주의 이념에 따라 문화사 업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국가 내의 행정부를 조직하려고 시도했다는 점 에서 중요하다. 1870년 1월의 예술과학문화부가 올리비에 내각에서 조직 되었으며 1881년 11월의 레옹 강베타 Léon Gambetta(1832-1882)가 구 성한 내각에 앙토냉 프루스트 Antonin Proust에게 맡긴 예술부 ministère des Arts는 최초의 장관급 문화행정부의 출현이라 할 수 있지만, 불행히 도 최초의 문화부는 1882년 1월 30일 강베타의 실각으로 실패했다. 하지 만 공화주의 국가 건설에 사회적으로 봉사하려는 제 3공화국의 문화예술 정책은 예술의 공적 개념에 근거하여 정부 내에 문화부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문화는 민주주의의 공화주의 체제로 오면서 국왕과 귀족의 지배에 봉사하는 특권적 문화가 아니라 시민에 봉사하는 문화로 개념이 바뀌었다. 특히 미의 추구는 소수의 취향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능력으로 간주되면서 전통적 예술인 보자르 Beaux-Arts는 시민 교육과 교양의 모델이 되었다. 국왕이나 귀족의 사적 소유와 영광에 종 사하는 군주제의 문화는 특권적 창조자와 특권적 대중이 직접 관계하면 서 문화시스템으로 크게 분화되지 못했지만 공화국이 수립되자 대중의 등장과 더불어 수많은 분화와 변화가 생겨났다. 클로드 몰라르의 문화시스템 이론에 따르면 문화정책 역시 대중의 등 장으로 촉발된 증대하는 분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선 결정권자는 국왕이 아니라 국가,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 메세나 등으로 분화하였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100년 뒤의 분권화법을 통해 본격화되지만 이미 제 3공 화국 초기부터 중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지방자치단체는 자 립적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단순히 공화주의 국가를 대변할 뿐이었다. 지방자치는 중앙정부가 내세운 문화예술의 취향의 규격화와 언어의 국가

클로드 몰라르의 프랑스문화시스템도표를 통해 본 프랑스문화정책의 변천과 문화국토개발 ❚ 257<br />

따라 세 가지 시스템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 가지 문화시스템을 구분하<br />

는 주요 원리는 국가가 문화를 관장하는 문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br />

서 세 가지 시스템은 문화를 행정적 차원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문화정책<br />

의 주도자들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br />

1870년부터 1940년까지의 제 3공화국은 공화주의 이념에 따라 문화사<br />

업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국가 내의 행정부를 조직하려고 시도했다는 점<br />

에서 중요하다. 1870년 1월의 예술과학문화부가 올리비에 내각에서 조직<br />

되었으며 1881년 11월의 레옹 강베타 Léon Gambetta(1832-1882)가 구<br />

성한 내각에 앙토냉 프루스트 Antonin Proust에게 맡긴 예술부 ministère<br />

des Arts는 최초의 장관급 문화행정부의 출현이라 할 수 있지만, 불행히<br />

도 최초의 문화부는 1882년 1월 30일 강베타의 실각으로 실패했다. 하지<br />

만 공화주의 국가 건설에 사회적으로 봉사하려는 제 3공화국의 문화예술<br />

정책은 예술의 공적 개념에 근거하여 정부 내에 문화부를 마련했다는 데<br />

의의가 있다. 문화는 민주주의의 공화주의 체제로 오면서 국왕과 귀족의<br />

지배에 봉사하는 특권적 문화가 아니라 시민에 봉사하는 문화로 개념이<br />

바뀌었다. 특히 미의 추구는 소수의 취향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기본적<br />

권리이자 능력으로 간주되면서 전통적 예술인 보자르 Beaux-Arts는 시민<br />

교육과 교양의 모델이 되었다. 국왕이나 귀족의 사적 소유와 영광에 종<br />

사하는 군주제의 문화는 특권적 창조자와 특권적 대중이 직접 관계하면<br />

서 문화시스템으로 크게 분화되지 못했지만 공화국이 수립되자 대중의<br />

등장과 더불어 수많은 분화와 변화가 생겨났다.<br />

클로드 몰라르의 문화시스템 이론에 따르면 문화정책 역시 대중의 등<br />

장으로 촉발된 증대하는 분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선 결정권자는 국왕이<br />

아니라 국가,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 메세나 등으로 분화하였다. 특히<br />

지방자치단체는 100년 뒤의 분권화법을 통해 본격화되지만 이미 제 3공<br />

화국 초기부터 중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지방자치단체는 자<br />

립적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단순히 공화주의 국가를 대변할 뿐이었다.<br />

지방자치는 중앙정부가 내세운 문화예술의 취향의 규격화와 언어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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