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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3 봄호 - 프랑스문화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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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 2013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strong>43</strong>집<br />

보슈, , 패널의 바깥 그림 중<br />

오른쪽 날개 그림, 부분<br />

피터 브뤼겔, ,<br />

1568, 패널에 유채, 18 x 21 cm,<br />

루브르 박물관, 파리<br />

4. 그뤼네발트의 이센하임 제단화<br />

맥각중독 환자들의 불구가 된 몸은 피의 순환이 나빠져서 생긴 허혈성<br />

괴저에 따른 의학적 조치인 절단의 결과였다. 1215년 라트랑(Latran)에서<br />

열린 네 번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피를 보는 의료 처치에는 성직자들이<br />

개입해서는 안 되며 평신도만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의 경우,<br />

이 절단을 담당한 사람들은 12세기 이래로 외상전문의사(Wundärzte) 협회<br />

의 회원들이었다. 그 회원이었던 게르스도르프(Hans von Gersdorf)는 ‘무<br />

모한 샤를르’와 스트라스부르 군 사이의 전쟁에 참여해서 얻은 경험을 토<br />

대로 1517년 스트라스부르의 쇼트(Schott) 출판사에서 전쟁 부상자를 위<br />

한 군사 교범인 Feldtbuch der Wundartzney를 출간했다. 19) 이 책에는 약 23<br />

점의 목판화 삽화가 있는데, 그 중에는 그가 스트라스부르 소재 성 앙투<br />

안 병원에서 200회 내외의 시술을 행했던 맥각중독 환자의 다리 절단 장<br />

면을 연상시키는 그림(그림 9)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있는 환자의 다리에<br />

19) 게르스도르프는 1450년경 바스 알자스(Basse-Alsace)의 비상부르(Wissembourg)에서<br />

태어나 1522년에 죽었다. 그의 사후 이 책은 네 번이나 재판되었으며, 라틴어와 네<br />

덜란드어로 번역되어 유럽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Jaques Battin, op. cit., p.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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