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13 봄호 - 프랑스문화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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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 2013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3집 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대화가 끝난다. 결국 루뭄바의 몰락은 클레망 음봉이 지적하듯이 표면적으로는 “보통 감탄할만하고 존중할만한 이상들” 17) 을 제시하지만 실제 갈등 현장에서 실현이 되지 않는 목적을 제 시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갖는 국제기구의 활동에 기인한다. 따라서 생-존 페르스의 시를 인용한 세제르의 의도는 제3세계에서 활동하는 유엔에 대 한 부정적 풍자이면서 동시에 시 바람에 나오듯이 정복자의 입장에서 아메리카의 역사를 보는 백인 생-존 페르스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이다. 세제르는 자신의 사상과 반대점에 위치한 생-존 페르스의 시를 자신의 작품에 삽입하는 용기를 보인다. 이 사실은 그의 창작 작업에 있어 혼합 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비록 세제르가 귀향수 첩에서 흑인의 순수성을 중시하고 혼혈인을 부정적으로 보며 태풍에 서 혼혈인을 백인의 협력자로 간주하지만, 에두아르 모닉Édouard Maunick과의 인터뷰에서 말하듯이 18) , 그가 카리브해 흑인 문화는 아프 리카, 유럽, 그리고 인도 문화의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에서 혼종성이 문화 생성의 핵심 요인이라는 그의 생각이 드러난다. 이 와 관련하여 세제르가 쿠바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위프레도 람Wifredo Lam(1902-1982)에게 바친 시에서 생-존 페르스의 시 바람에 나오는 “toutes choses bisaiguës” 19) 가 관심을 끈다. 람은 중국 출신 아버지와 흑 백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세제르를 만난 후 이 둘은 개인적이며 예술적 우정뿐 아니라 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항해 피식민자들 의 정체성 회복과 해방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 람은 아프리카, 유럽, 카리브해의 문화적 요소를 예술적 자산으로 삼아 람 특유의 회화 세계를 개척한다. 생-존 페르스는 바람 II,6에서 초월적 비전으로 영감을 해석 하여 현실세계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인을 특징화하는데, 세제르 17) Clément MBom, op. cit., p. 79. 18) Aimé Césaire, “Interview de Césaire”, in Maryse Condé, Cahier d'un retour au pays natal: Césaire, Paris, Hatier, 1978, pp. 74-75. 19) Aimé Césaire, La poésie, Moi, laminaire, Wifredo Lam, Paris, Les Éditions du Seuil, 1982 (1994), p. 462.
생-존 페르스와 에메 세제르 ❚ 121 는 생-존 페르스가 말하는 이 “양면성을 갖는 모든 것들”로 람의 예술 세 계가 갖는 혼종성을 표현한다. 한편 세제르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 다는 관점에서 볼 때 20) , 그가 생-존 페르스의 시를 차용한 점은 꼴라주 collage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이 기법이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를 경험 한 생-존 페르스에게도 나타난다는 점 21) 에서 이 둘은 공통점을 지닌다. 2. 프로스페로와 칼리반 세제르는 에드위 플레넬과의 면담에서 생-존 페르스를 “프랑스령 앤틸 리스 제도 태생의 백인 시인” 22) 이라고 규정하고, “그에게는 카스트 정신, 고귀한 인종이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는 프로스페로이고 저는 칼리반 입니다” 23) 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흑인 세제르는 생-존 페르스를 단지 시 인으로 보지 않고 “프랑스령 앤틸리스 태생 백인”을 의미하는 단어 “béké”를 사용하여 자신과 그 사이에 인종적 차이가 있음을 명시한다. 분명히 이 인종적 차이는 경제적, 사회적 차이를 동반한다. 현재에도 앤 틸리스 지역에서 백인은 주민의 1%에 불과하지만 “소수 지배 집단” 24) 을 20) 세제르와 초현실주의와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일화로는 2차세계대전 시기 인 1941년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던 배가 마르티니크에 기항하였을 때 이 배 에 탔던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과 이 섬에 거주하던 세제르가 만난 일이다. 브 르통은 1943년에 뉴욕에서 세제르에 대해 “Un grand poète noir”란 글을 쓴다. 세제 르는 부분적으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지만, 장-클로드 블랑셰르Jean-Claude Blanchère가 말하듯이, 이 운동에 대해 거리를 둔다. Cf., Jean-Claude Blanchère, “Breton et Césaire”, Europe, 76 e année -N° 832-833/Août-Septembre 1998, p. 146. 21) 생-존 페르스의 꼴라주 기법에 대해서는 Joëlle Gardes-Tamine, “De la multiplicité des apparences à l'unité de l'Être: le collage”, in Saint-John Perse ou la stratégie de la seiche, Publications de l'Université de Provence, 1996, pp. 93-104을 보시 오. 22) Edwy Plenel, op. cit., p. 297. 23) Edwy Plenel, op. cit. 24) Edith Kováts Beaudoux, Les Blancs créoles de la Martinique, Paris, L'Harmattan, 2002, 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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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대화가 끝난다. 결국 루뭄바의 몰락은<br />
클레망 음봉이 지적하듯이 표면적으로는 “보통 감탄할만하고 존중할만한<br />
이상들” 17) 을 제시하지만 실제 갈등 현장에서 실현이 되지 않는 목적을 제<br />
시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갖는 국제기구의 활동에 기인한다. 따라서 생-존<br />
페르스의 시를 인용한 세제르의 의도는 제3세계에서 활동하는 유엔에 대<br />
한 부정적 풍자이면서 동시에 시 바람에 나오듯이 정복자의 입장에서<br />
아메리카의 역사를 보는 백인 생-존 페르스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이다.<br />
세제르는 자신의 사상과 반대점에 위치한 생-존 페르스의 시를 자신의<br />
작품에 삽입하는 용기를 보인다. 이 사실은 그의 창작 작업에 있어 혼합<br />
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비록 세제르가 귀향수<br />
첩에서 흑인의 순수성을 중시하고 혼혈인을 부정적으로 보며 태풍에<br />
서 혼혈인을 백인의 협력자로 간주하지만, 에두아르 모닉Édouard<br />
Maunick과의 인터뷰에서 말하듯이 18) , 그가 카리브해 흑인 문화는 아프<br />
리카, 유럽, 그리고 인도 문화의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br />
에서 혼종성이 문화 생성의 핵심 요인이라는 그의 생각이 드러난다. 이<br />
와 관련하여 세제르가 쿠바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위프레도 람Wifredo<br />
Lam(1902-1982)에게 바친 시에서 생-존 페르스의 시 바람에 나오는<br />
“toutes choses bisaiguës” 19) 가 관심을 끈다. 람은 중국 출신 아버지와 흑<br />
백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세제르를 만난 후 이 둘은<br />
개인적이며 예술적 우정뿐 아니라 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항해 피식민자들<br />
의 정체성 회복과 해방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 람은 아프리카, 유럽,<br />
카리브해의 문화적 요소를 예술적 자산으로 삼아 람 특유의 회화 세계를<br />
개척한다. 생-존 페르스는 바람 II,6에서 초월적 비전으로 영감을 해석<br />
하여 현실세계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인을 특징화하는데, 세제르<br />
17) Clément MBom, op. cit., p. 79.<br />
18) Aimé Césaire, “Interview de Césaire”, in Maryse Condé, Cahier d'un retour au<br />
pays natal: Césaire, Paris, Hatier, 1978, pp. 74-75.<br />
19) Aimé Césaire, La poésie, Moi, laminaire, Wifredo Lam, Paris, Les Éditions du<br />
Seuil, 1982 (1994), p. 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