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13 봄호 - 프랑스문화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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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2014 Views

102 ❚ 2013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3집 의 핵심적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철학자는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 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이 보여준 행위에 대한 심리적, 윤 리적, 종교적 이해를 시도한다. 이미 인간을 제물로 삼지 말라고 하신 하 느님의 말씀에 절대복종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행위가 보편적 관점에서 보면 비윤리적 행위이지만, 개별적 관점에서 보면 신앙에 바탕을 둔 주체 적 행위로서 개별자는 보편에 우선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키에르케 고르 자신이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라고 명제화한 신앙의 역설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즉 개별자가 보편자 밖에서 실존한다는 것과 하 느님의 절대적 명령이 객관적으로 확인 불가능함에도 - 하느님이 이미 인간을 제물로 삼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했다면 그것 은 사탄의 말일수도 있지 않겠는가? - 그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신앙은 합 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비합리적인 열정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사 실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이 절대적 신 앙과 그 역설이 아브라함을 종교적 실존으로 이끌었으며, 이 비약이 키에 르케고르가 말하는 주체자가 되는 유일하고 진실한 길이다. 개인적 결단 을 통해 윤리적 의무를 강요하는 보편적 세계 밖으로 나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그 존재가 느끼는 감정이 다름 아닌 ‘두려움과 떨림’인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사상을 에밀의 지혜로 환언해 보자. 아이 티인들이 이주지에서 고국을 생각하며 망각과의 투쟁 속에서 귀국의 희 망을 잃지 않는 것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층위에서 이행해야만 하는 윤 리적 의무다. 그러나 에밀의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그가 이주지의 문화 를 수용하는 행위는 자신의 윤리적 의무를 체념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지라도 타문화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개별자의 행위다. 하지만 타지 에서 살고 있는 아이티인의 문화적 실존의 차원에서 개인적 결단을 통해 아이티인의 족쇄로 작용하는 윤리적 의무를 뿌리치는 행위, 이 비약의 과 정은 자기 주체성을 여는 길이다. 아이티인이 “두려움과 떨림”의 감정을 23) 쇠렌 키에르케고르, 두려움과 떨림, 임규정 옮김, 서울, 지만지 고전선집, 2009.

에밀 올리비에(Émile Ollivier)의 통행Passages ❚ 103 떨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길 위에서 일 것이다. 존재와 시간 의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손안에 든 것’을 벗어나 ‘손안에 있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인간이 ‘손안의 것’ 즉, 너무 익숙하여 존재조차 몰랐던 것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 면서 그 존재를 깨닫게 되는 형국에 키에르케고르의 이 사상이 비유될 수 있겠다. 아이티의 내외적 상황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아메데와 그 동료 농부들이 고국을 떠날 것인가를 논하는 자리에서, 에밀은 내레이터의 입 을 빌려 그들이 취해야 할 선택을 우회적으로 말한다. 섬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다. 포르타레퀴의 주민들은 해안에 살 고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은 이 지구상의 다른 나라들에 대해, 그곳의 날씨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은 저 평원 너머의 삶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 까? 그들은 소문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 그들은 경계라고는 수평선밖에 없는 포르타레퀴 밖의 삶의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 까? (…) 그들은 이 먼지투성이의 넓디넓은 공간, 이 희망 없는 하 늘, 늘 되풀이되는 바다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없었다. 대부 분의 사람들이 뽑아도 뽑아도 끝없이 다시 자라나는 이 잡초 제거 에 매인 나머지 한 번도 자리를 뜬 적이 없었다. 그들은 풍문과 전 설과 두 발에 밟히는 바다와 함께 살고 있었다.(PAS, 55) 소설의 시작인 “바다가 있고, 섬이 있다”에서 “섬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다”로의 변화는 기억의 행복한 현재가 불행한 과거로 변질되었음을 뜻한다. 에밀은 이 변질의 원인 중 중요한 하나가 변화를 상상할 수 없는 아이티 사람들의 규격화된 일상임을 이렇게 고발하며, 일상의 그늘에 가 려진 그들의 무기력, 이 삶의 오류를 새로운 지평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 으로 삼기를 바라고 있다. 논의 끝에 나온 아델리아 다튈리(Adélia Datilus) 의 단호한 의견은 아이티 사람들을 가둬둔 획일적 본능을 뚫고 새로운

에밀 올리비에(Émile Ollivier)의 통행Passages ❚ 103<br />

떨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길 위에서 일 것이다. 존재와 시간<br />

의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손안에 든 것’을 벗어나 ‘손안에<br />

있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인간이 ‘손안의<br />

것’ 즉, 너무 익숙하여 존재조차 몰랐던 것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br />

면서 그 존재를 깨닫게 되는 형국에 키에르케고르의 이 사상이 비유될<br />

수 있겠다.<br />

아이티의 내외적 상황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아메데와 그 동료<br />

농부들이 고국을 떠날 것인가를 논하는 자리에서, 에밀은 내레이터의 입<br />

을 빌려 그들이 취해야 할 선택을 우회적으로 말한다.<br />

섬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다. 포르타레퀴의 주민들은 해안에 살<br />

고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은<br />

이 지구상의 다른 나라들에 대해, 그곳의 날씨에 대해 무엇을 알고<br />

있었을까? 그들은 저 평원 너머의 삶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br />

까? 그들은 소문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 그들은 경계라고는<br />

수평선밖에 없는 포르타레퀴 밖의 삶의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br />

까? (…) 그들은 이 먼지투성이의 넓디넓은 공간, 이 희망 없는 하<br />

늘, 늘 되풀이되는 바다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없었다. 대부<br />

분의 사람들이 뽑아도 뽑아도 끝없이 다시 자라나는 이 잡초 제거<br />

에 매인 나머지 한 번도 자리를 뜬 적이 없었다. 그들은 풍문과 전<br />

설과 두 발에 밟히는 바다와 함께 살고 있었다.(PAS, 55)<br />

소설의 시작인 “바다가 있고, 섬이 있다”에서 “섬이 있었고, 바다가<br />

있었다”로의 변화는 기억의 행복한 현재가 불행한 과거로 변질되었음을<br />

뜻한다. 에밀은 이 변질의 원인 중 중요한 하나가 변화를 상상할 수 없는<br />

아이티 사람들의 규격화된 일상임을 이렇게 고발하며, 일상의 그늘에 가<br />

려진 그들의 무기력, 이 삶의 오류를 새로운 지평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br />

으로 삼기를 바라고 있다. 논의 끝에 나온 아델리아 다튈리(Adélia Datilus)<br />

의 단호한 의견은 아이티 사람들을 가둬둔 획일적 본능을 뚫고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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