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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의지, 욕망, 쾌락 : - 철학사상연구소 -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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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앎의</strong> <strong>의지</strong>, <strong>욕망</strong>, <strong>쾌락</strong> 15<br />

창세기 2장 15절을 인용하는 팡글로스의 관점에서는 인간은 아직<br />

에덴동산을 벗어나지 않았다. 텍스트에서 그의 마지막 발언에서 확인<br />

할 수 있듯이, 우리는 여전히 “가능한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 le<br />

meilleur des mondes possibles”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br />

정원을 가꿔야 한다”는 캉디드의 결론은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br />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창세기, 4-17)는 성경 구절과 더 가깝다.<br />

팡글로스의 관점이 낙원에서의 추방을 부정하는 악마의 관점인데 반<br />

해, 캉디드의 관점은 인간은 낙원에서 영원히 쫓겨났으며 다시 돌아<br />

갈 수 없다는 인식의 표현, 즉 인간의 관점을 대변한다.<br />

여기서 libido sciendi 개념이 캉디드 의 철학적 목적 중 하나로<br />

널리 간주되는 라이프니츠 철학 비판, 보다 넓게는 당시 속류 라이프<br />

니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갖는 관련을 볼 수 있다. 정통 기독교<br />

사상에서 ‘호기심’을 전적으로 죄악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br />

간이 “신을 잃어버린 증거이기도 하지만, 신에 대한 향수 nostalgie를<br />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따라서 신에 대한 인식으로 이끄는 순기능<br />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1) 팡글로스는 라이프니츠의 저작의 제목이기<br />

도 한 ‘신의론 théodicée’의 ‘나쁜’ 전형이다. 신의 섭리를 이해하려는<br />

노력은 정당할 수 있지만, 그 진리를 얻었다는 자만은 나쁜 libido<br />

sciendi의 전형적인 예가 되는 것이다.<br />

볼테르뿐만 아니라, 18세기 “철학 소설”의 대표인 이 작품에서<br />

libido sciendi 개념은 속류 라이프니츠주의의 비판이라는 작품의 철<br />

학적 차원에서, 그리고 주인공의 사상적 여정을 촉발한다는 서사적<br />

차원에서 이처럼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br />

10) Ibid., ch. XXX, p. 126-127.<br />

11) Nicole Jacques-Chaquin, ≪La curiosité, ou les espaces du savoir≫<br />

in Curiosité et Libido sciendi de la Renaissance aux Lumières, ENS<br />

Edition, 1998, t. I,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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