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근 - 한국브레히트학회

9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경화되며,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무대 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어 나타나는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퍼포먼스 텍스트의 형식적 특징들을 미시적 시각
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학적 텍스트 중심의 연극에서 벗어나 “언어에 종속되
지 않고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표현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20세기 초 연극의 실천
가들에 의해 실험적으로 시도되었으며, 기술미디어의 효과가 드러나면서 퍼포먼스
텍스트와 같은 연극의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크래머는 기호의 “두
세계 존재론 (Zwei-Welten-Ontologie)”에 관한 테제에서 기호가 표출하는 ‘의미의 세
계’와 기호가 현재화하는 ‘수행성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설명한다. 26) 의미의 세계는
기호로부터 현현하여 나타나지만, 수행성의 세계는 기호의 실행을 통하여 현재화되
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후 1960년대의 네오아방가르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기
술적 장치들의 영감으로부터 추동력을 얻게 된다. 전화,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그리
고 컴퓨터와 같은 기술매체는 개인적 삶에 “알레고리”와 같은 방식으로 개입하고 간
섭한다. 두 번에 걸친 세계적 규모의 전쟁에 대한 체험은 질서가 아닌 무질서를 체화
하고,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일상화한다. 매체에 대한 이니스 (Harold
Innis)와 맥루언 (Marshall MacLuhan)의 역사적 사유는 1980년대를 지나며 철학적이
며 미학적인 차원으로 정교화되며, 연극 무대 위에서 활용되는 차원을 넘어서 기술적
아프리오리(Apriori)로 일상적 사유를 지배하게 되는 매체철학적 입장이 설득력을 얻
게 된다. 레만이 설명하는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형식적 특징들은 연극학적인 요소들
에 대한 문화적인 분석, 특히 매체문화로부터 도출되는 미학적 범주들과 긴밀하게 관
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양식적 특징들 (Stil oder
vielmehr die Palette der Stilzüge des postdramatischen Theaters)” 27) 가운데 레만은 우
선 연극적 요소들 사이에서 위계질서가 교란되는 현상을 강조한다. 이는 전통적인 드
라마에서 관객의 혼란을 막고 조화와 이해를 강조하기 위해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연극적 요소들의 결합시켰던 관습을 거스르는 양식을 말한다. 레만은 이를 병렬구조
(Parataxis)적 결합으로 설명한다.
26) Sybille Krämer: Sprache-Stimme-Schrift: Sieben Thesen über Performativität als Medialität.a.a.O.,
33-57. 여기서는 33.
27) Lehmann,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