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근 - 한국브레히트학회

9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있다. 여기에서 관객과 배우는 동등하게 생산자의 지위에 이르게 된다. 퍼포먼스는
재현이 아니라 시간, 공간 그리고 신체로서 사실적인 것의 의도된 경험을 직접 체험
하게 하는 도구 또는 수단이 된다. 예술가와 관객이 직접적이며 동시적으로 함께 경
험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 예술의 우월적 효능을 찾을 수 있다. 연기자는 지난날과는
다른 위치를 점하게 되는데, 요컨대 배우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퍼포머로 등장하여 그의 현존을 의식적으로 관객에게 공연하게 되는 것이다.
레만은 여기서 커비 (Michael Kirby, 1931~1997)의 “액팅 (acting)”과 “낫-액팅
(Not-acting)”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한다. 19) “낫-액팅”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호의 새로운 조건 하에서, 예컨대 행위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동작의
의미로 사용된다. 공연이 이루어지면서 사건성이 전면으로 등장하며 시간이 지나면
서 사라지는 일회적 허무감이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낫-액팅”은 소통의 행
위와 소통의 순간이 되며, 일회적 사건으로서의 일과성을 연극 상황에 끌어들이는 교
역의 지점이 된다. 그리하여 연극에서의 퍼포머는 스스로 변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
나의 상황이며 동시에 관객이 되는 셈이다. 레만에 따르면 퍼포먼스 예술의 이상은
사실적이고, 감성적으로 강요하면서, ‘여기 그리고 지금’ 생겨나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폭력의 경험과 고통의 경험은 몇몇 퍼포먼스 예술가의 포커스 속으로 옮겨간
다. 또 다른 중요한 핵심적 요소는 퍼포먼스 속에서의 ‘현전’이다. 이것은 관객과 배
우가 교차적으로 도전하는 가운데 공동의 현존으로 나타나며, 연극 과정에서 적극적
참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배우의 현전은 객관화할 수 있는 대상, 앞에 마주한 대상,
현재가 아니라, 피할 수 없이 연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함께 현존하는 것이다. 레만
의 관점에서 퍼포먼스 예술은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근본이자 출발점이 되며, 무엇보
다도 현상학적으로 지각 가능한 연극의 과정을 드러내는 요소로 기능한다. 즉 상연의
행위, 사건적 성격과 공연의 과정, 그리고 관객의 새로운 수용 태도 등이 포스트드라마
적 연극 형식들을 규정하고 지원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19) “Der Schauspieler des postdramtischen Theaters ist häufig kein Darsteller einer Rolle mehr (Actor),
sondern Performer, der seine Präsenz auf der Bühne der Kontemplation darbietet. Mickael Kirby hat
dafür die Begriffe "acting" and "not-acting" samt einer interessanten Ausdifferenziering der
Übergänge von einem "full matrixted acting" bis zum "non-matrixed acting" geprägt.” Leh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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