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순 - 한국브레히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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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2013 Views

35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가치가 바로 이성적 사고에 근 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인간, 동물, 기계 사이의 명확한 차이를 밝히고 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동물과 똑같은 기계가 있다고 한다면, 동물 과 기계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똑같 은 기계가 있다고 한다면, 인간과 기계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해 주는 두 가지 수단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언어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능력이다. 즉 인간은 기계와 달 리 자신의 생각을 언어를 통해 전달할 수 있으며, 또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통해 모 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논리는 여기서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작용, 즉 영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정의 및 인간다움의 특징을 규명하고 있다. 둘째, 데카르트는 인간 에게만 고유한 영혼을 통해 인간과 기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으며, 이는 더 나아가 인간은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체계를 정립하고 있다. 베드밍턴은 그의 서문에서 데카르트가 위에서 제시한 인간에 대한 정의 및 인간중 심주의적 사고는 이후 서구전통에서 휴머니즘의 근간을 이루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 쳤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휴머니즘은 이러한 휴머니즘적 인간정체성이 더 이상 유효한 담론이 될 수 없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6) 이러한 맥락 에서 오늘날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에서 고수해온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해체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재정립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 이와 연관해서 캐서린 헤일즈 N. Katherine Hayles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좋건 싫건 인공적 생명․지능적 기계와 더불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 이버네틱스․인공생명 이론․정보 이론이 축적되면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데 카르트 이후 서구의 전통적 인문주의에서 기정사실로 해온 주체성․자율성․합리성․의식 등을 재검토할 것과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개념의 정립을 요합니다. 이런 인간성의 새로운 버전을 저는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고 부릅니다. 7) 헤일즈는 여기서 데카르트 이후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전통적 휴머니즘을 비판적 6) Vgl. Badmington, Neil: Introduction: Approaching Posthumanism. S. 4-10. 7) 캐서린 헤일즈: 김성도와의 대담: 지금은 ‘전자언어’ 시대 - 인문학도 디지털혁명 수용을. 디지털 조선일보 2001년 5월 22일.

포스트휴머니즘 시대 인간과 기계의 공존 가능성 359 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인간상, 즉 ‘포스트휴먼 posthuman’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 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휴먼 개념은 오늘날 복수의 개념으로 복잡하게 사용되고 있다. 8) 여기서 헤일즈가 의미하는 포스트휴먼 개념은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으로 전통적인 인간관이 해체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주체 개념”을 의미한다. 헤일즈는 또한 그녀의 저서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How we became posthuman(1999)에서 포스트휴먼 담론의 의미를 크게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 다. 9) 첫째, 포스트휴먼 담론은 물질보다 정보패턴을 특권화 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구현체인 육신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요소가 아니라 역사의 우 연한 산물로서 간주된다. 둘째, 포스트휴먼 담론은 데카르트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 로 규정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의식을 하나의 부수적인 현상으로 간주한다. 즉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의 의식에 절대적인 존재가치를 부여하기보다 이를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부수적인 현상으로 여긴다. 셋째,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의 신체를 언제든지 다른 도구와 결합이 가능한 “오리지널 보철 the original prosthesis”로서 간주한다. 이로써 신체를 다른 도구들을 이용하여 확장하거나 대체하 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시작된 연속적 과정으로서 이해된다. 넷째, 포스 트휴먼 담론은 인간을 지능적 기계와 매끄럽게 결합될 수 있도록 인간을 재배치한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통해 포스트휴먼 담론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차이 를 인정하지 않는다. 헤일즈의 포스트휴먼 담론은 여기서 데카르트가 인간의 의식을 강조한 계몽주의 적 인간정체성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며,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세계관과는 달리 인 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헤일즈가 의미하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 허물기란 그러나 이 둘의 완전한 합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서 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생산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평화 로운 공진화 coevolution”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헤일즈는 예를 들어 컴퓨터를 모 델로 하여 인간의 지능을 재모델화 하려는 행위는 위험천만한 것이며, 또 컴퓨터 소 8) 캐서린 헤일즈: 과학의 진화와 인간 몸. 실린 곳: 김성도: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인문학. 김성도, 세 계 지성과의 대화. 생각의 나무 2003. 108-132, 여기서는 124쪽 참조. 9) Vgl. Hayles, N. Katherine: How we became posthuman: virtual bodies in cybernetics, literature, and informatics. Chicago;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S. 2f.

포스트휴머니즘 시대 인간과 기계의 공존 가능성 359<br />

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인간상, 즉 ‘포스트휴먼 posthuman’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br />

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휴먼 개념은 오늘날 복수의 개념으로 복잡하게 사용되고<br />

있다. 8) 여기서 헤일즈가 의미하는 포스트휴먼 개념은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으로<br />

전통적인 인간관이 해체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주체 개념”을 의미한다. 헤일즈는<br />

또한 그녀의 저서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How we became<br />

posthuman(1999)에서 포스트휴먼 담론의 의미를 크게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br />

다. 9) 첫째, 포스트휴먼 담론은 물질보다 정보패턴을 특권화 한다. 따라서 생물학적<br />

구현체인 육신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요소가 아니라 역사의 우<br />

연한 산물로서 간주된다. 둘째, 포스트휴먼 담론은 데카르트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br />

로 규정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의식을 하나의 부수적인 현상으로 간주한다. 즉<br />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의 의식에 절대적인 존재가치를 부여하기보다 이를 인간의<br />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부수적인 현상으로 여긴다. 셋째, 포스트휴먼 담론은<br />

인간의 신체를 언제든지 다른 도구와 결합이 가능한 “오리지널 보철 the original<br />

prosthesis”로서 간주한다. 이로써 신체를 다른 도구들을 이용하여 확장하거나 대체하<br />

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시작된 연속적 과정으로서 이해된다. 넷째, 포스<br />

트휴먼 담론은 인간을 지능적 기계와 매끄럽게 결합될 수 있도록 인간을 재배치한다.<br />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통해 포스트휴먼 담론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차이<br />

를 인정하지 않는다.<br />

헤일즈의 포스트휴먼 담론은 여기서 데카르트가 인간의 의식을 강조한 계몽주의<br />

적 인간정체성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며,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세계관과는 달리 인<br />

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헤일즈가 의미하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br />

허물기란 그러나 이 둘의 완전한 합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서<br />

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생산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평화<br />

로운 공진화 coevolution”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헤일즈는 예를 들어 컴퓨터를 모<br />

델로 하여 인간의 지능을 재모델화 하려는 행위는 위험천만한 것이며, 또 컴퓨터 소<br />

8) 캐서린 헤일즈: 과학의 진화와 인간 몸. 실린 곳: 김성도: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인문학. 김성도, 세<br />

계 지성과의 대화. 생각의 나무 2003. 108-132, 여기서는 124쪽 참조.<br />

9) Vgl. Hayles, N. Katherine: How we became posthuman: virtual bodies in cybernetics, literature, and<br />

informatics. Chicago;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S. 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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