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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수옥 - 한국브레히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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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br />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br />

-르네 폴레쉬의 반재현극의 미학<br />

<strong>함수옥</strong>(이화여대)<br />

한국의 국제다원예술축제를 표방하는 ‘페스티벌 봄’은 2012년 행사 개막작으로 베<br />

를린 폴크스뷔네 Volksbüne의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Ich<br />

schau dir in die Augen, gesellschaftlicher Verblendungszusammenhang!를 3월 22일과<br />

23일 이틀에 걸쳐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이 작품은 폴크스뷔네 연<br />

출가인 르네 폴레쉬 René Pollesch의 2010년 작으로 서울 공연도 독일 공연에서와 동<br />

일하게 배우 파비안 힌리히스 Fabian Hinrichs의 90여 분간의 일인 퍼포먼스로 채워<br />

졌다. 뚜렷한 줄거리 없이 힌리히스가 정치, 경제, 문학, 연극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br />

면서 그 사이사이에 노래와 악기 연주 등을 선보이는 형태였다. 이번 폴레쉬 연극의<br />

서울 공연은 기센의 연극학자 한스-티스 레만 Hans-Thies Lehmann의 정의 이후 서구<br />

의 최신 연극경향을 아우르는 표어가 된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일례를 한국 관객이<br />

접할 수 있었다는 데서도 의미가 있었지만 현재 독일 연극계에서 그 자신만의 독특<br />

한 연극미학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폴레쉬의 최신작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br />

했다.<br />

르네 폴레쉬는 1962년 헤센 주 프리드베르크 Friedberg 출생으로 기센 대학교 응<br />

용연극학과에서 안드르제이 비르트 Andrzej Wirth와 한스-티스 레만 아래서 수학했<br />

으며 초청강사였던 하이너 뮐러나 조지 타보리와 함께 연극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br />

했다. 1996년 프랑크푸르트의 투름 극장 das Frankfurter Theater am Turm으로부터<br />

위탁받은 연극작업으로 본격적 활동을 시작한 폴레쉬는 이후 스위스 루체른 극장과<br />

베를린 포데빌 극장과의 협업으로 대본과 연출을 맡았던 하이디 호 Heidi Hoh<br />

(1999)의 성공으로 관객과 평단의 큰 호평을 받았다. 2000/2001년 함부르크의 도이췌


15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샤유슈필하우스 das deutsche Schauspielhaus의 전속작가로 고용되었고 2001/2002년<br />

부터 2007년까지는 베를린 폴크스뷔네의 프라터 극장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2002<br />

년 독일 연극 잡지 테아터 호이테 Theater heute 비평가들이 수여하는 ‘최고의 극장<br />

가 상’, 2001년 월드 와이드 웹 슬럼 world wide web slums과 2006년 빨간 모자<br />

Cappuccetto Rosso로 ‘뮐하이머 극작가 상’, 2007년 자주빛 반점 Das purpurne<br />

Muttermal으로 ‘네스트로이 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폴레쉬는 현재 베를<br />

린 폴크스뷔네 이외에 함부르크, 빈, 슈투트가르트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br />

본 논문에서는 페스티벌 봄을 통해 서울에 소개된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br />

의 눈동자에 건배!를 중심으로 현재 독일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자 연출<br />

가인 폴레쉬의 작업방식과 연극미학을 살펴보겠다. 논문의 구체적 분석 대상이 한 작<br />

품으로 한정되어 있는 만큼 그의 작품 스펙트럼의 변화양상까지를 조망하는 포괄적<br />

시각의 전달은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br />

2. 폴레쉬의 작업방식<br />

2.1. 작가연출가 Autorenregie<br />

연극 텍스트 창작자로서 폴레쉬는 빠른 시간에 많은 작품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br />

다. 기센 대학교 학창시절부터 현재까지 약 200여 개에 이르는 작품들을 썼다고 추산<br />

되는 데 다작인 만큼 주제나 텍스트가 많이 겹치기도 하여 평론가 틸 브리글레프<br />

Till Briegleb는 폴레쉬의 작품들 전부가 긴 하나의 연극의 “조각들 Fetzen”이라고 평<br />

하기도 한다. 1) 하지만 폴레쉬 본인은 전통적 작가가 추구하는 독창성에 대한 욕심은<br />

없다고 천명한다.<br />

1) Till Briegleb: Die Kosmetik der Widersprüche. René Pollesch schreibt weiter: Der okkulte Charme<br />

der Bourgeoisie bei der Erzeugung von Reichtum am Schauspielhaus Hamburg und Diabolo-schade,<br />

dass er der Teufel ist im Prater der Berliner Volksbühne, in: Theater heute 60 (2005) H.4, S. 42-44,<br />

hier S. 42.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51<br />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건 괴로운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난 독창성에<br />

대한 집착 없이 단지 이전 텍스트에서 멈추었던 곳에서 연속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시작한<br />

다. 난 삶에서 내게 중요한 것, 내가 평소에 읽는 것과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무대에 올리<br />

려고 하는 것이다.<br />

Ich glaube, dass es gequälter Unsinn ist, sich dauernd neue Geschichten ausdenken zu<br />

wollen. Ich schreibe ohne Originalitätszwang und mache mit einem neuen Text einfach da<br />

weiter, wo ich beim vorigen aufgehört habe. Ich will auf die Bühne bringen, was mich in<br />

meinem Leben beschäftigt, was ich im Alltag lese, was ich wissen will. 2)<br />

연출가로서 폴레쉬가 무대에 올린 작품은 모두 자신이 쓴 작품들이다. 이런 점에<br />

서 그를 전형적인 작가연출가 Autorenregie라고 정의할 수 있다. 카린 니센-리즈바니<br />

karin Nissen-Rizvani는 그녀의 논문에서 최근 독일 연극계에서 새로운 창작 드라마가<br />

일회성으로 소모되지 않고 극장에서 꾸준히 소개될 프로그램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br />

고무적 현상의 원인으로 작가와 연출가의 긴밀한 공조작업, 그리고 크리스토프 쉴링<br />

엔지프 Christopf Schlingensief나 폴레쉬와 같은 작가연출가 연극 Autorenregietheater<br />

의 증가를 꼽았다. 그녀는 특히 작가연출가 연극을 드라마 텍스트가 현재의 포스트드<br />

라마 연극 경향에 유연하게 반응한 형태로 파악한다. 즉 작가연출가는 드라마 텍스트<br />

창작과정에서부터 실제 무대화 작업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며 드라마텍스트와 연출텍<br />

스트 간의 상호보완 과정에서 작품을 발전시켜가기 때문에 원전으로서의 드라마텍스<br />

트와 공연 연출간의 해묵은 반목관계를 생산적으로 지양한다는 것이다. 3) 그리고<br />

이런 작가연출가의 작업 결과물은 텍스트를 연극의 제반 요소들 중의 하나로만<br />

취급하는 연출가연극 Regietheater이나 “텍스트가 없는 포스트드라마 연극 ein<br />

postdramatisches Theater ohne Text”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4)<br />

그런데 바로 이점이 폴레쉬의 작품을 레만이 정의한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전형으로<br />

2) René Pollesch: Ich möchte das Unheil sein. Der Regisseur und Autor René Pollesch über politische<br />

Botschaften, nackte Schauspieler und sein Stück Der okkulte Charme der Bourgeoisie bei der<br />

Erzeugung von Reichtum, Interview mit Anke Dürr und Wolfgang Hebel, in: Der<br />

Spiegel(21.02.2005), S. 155-157, hier S. 155.<br />

3) Karin Nissen-Rizvani: Autorenregie. Theater und Texte von Sabine Harbeke, Armin Petras/Fritz<br />

Kater, Schlingensief und René Pollesch. Bielefeld 2011, S. 34-40.<br />

4) Nissen-Rizvani, Autorenregie, S. 39.


15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보기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된다. 레만은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 텍스트를 몸, 공간, 시<br />

간을 비롯한 연극의 다른 기호와 비중이 동등한 요소로 바라보지만 5) 담론극<br />

Diskurstheater혹은 테제극 Thesentheater이라 불리는 폴레쉬 작품에서 메시지를 전달<br />

하는 텍스트의 비중은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6)<br />

작가연출가로서 폴레쉬 작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가 연출에서만이 아니라<br />

대본 창작에서부터 배우들과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br />

에서 자신을 작가로도 연출가로도 정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br />

난 책상 앞에 앉아 천재적 작품들을 써내는 텍스트 창작자의 이미지를 전달할 생각이 추호<br />

도 없다. 나에게는 연극에서의 사회적 실행이 중요하다. 서로 소통하는 방식과 이것이 글쓰<br />

기에 지니는 의미 같은 것 말이다.<br />

Ich will auf keinen Fall das Bild des individuellen Textproduzenten vermitteln, der am<br />

Schreibtisch geniale Texte produziert. Für mich ist die soziale Praxis im Theater wichtig -<br />

wie wir miteinander umgehen und was das fürs Schreiben bedeutet. 7)<br />

폴레쉬는 독창성을 기반으로 작품과 혼연일체로 이해되는 근대적 의미의 작가는<br />

아니다. 그는 작품의 제목만 생기면 이를 토대로 배우들과 토론을 하면서 작품을 진<br />

행한다. 공연 연출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텍스트의 주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부터 배<br />

우들의 참여를 중요시하는 그는 토론에서 나온 배우의 생각과 의견들을 “마치 도구상<br />

자인 양 그에게 맞는 부분을 끄집어내서 사용한다. wie aus einem Werkzeugkasten, das<br />

für ihn Passende heraushaut und verwendet.” 8)<br />

공동 토론을 통한 작업방식은 기존 연극계의 구조, 즉 작가 혹은 연출가와 배우들<br />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이며 9) 또한 폴레쉬 자신만이 아니라 배우들의<br />

5) Vgl. Hans-Thies Lehmann: Postdramatisches Theater, Frankfurt am Main 1999, S. 146-149.<br />

6) Vgl. Nissen-Rizvani, S. 29f.; Kalina Kupczńska: Fantasma von René Pollesch - Theater ohne Plot?<br />

Theater mit These!, in: Pełka, Artur/Tigges, Stefan(Hg.): Das Drama nach dem Drama.<br />

Verwandlungen dramatischer Formen in Deutschland seit 1945, Bielefeld 2011, S. 275-285, hier S.<br />

277.<br />

7) René Pollesch: Ich bin Heidi Hoh. René Pollesch im Gespräch mit Jürgen Berger, in: ders.: world<br />

wide web-slums, 2. Afl., Reinbeck bei Hamburg 2009, S. 341-348, hier S. 346.<br />

8) Monika Nelissen: Die Welt zu Gast bei reichen Eltern in der Gaußstraße, in: Die Welt(13.11.2007.)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53<br />

경험을 연극에 함께 반영하면서 주제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창작자<br />

의 실제 삶의 경험이 녹아든 작품을 추구한다는 원칙은 그들의 작품을 다른 연출가<br />

나 극단이 공연하는 것을 불허하는 방침으로 이어진다. 한 인터뷰에서 왜 작품을 다<br />

른 연출가가 공연하도록 허락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폴레쉬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br />

왜냐하면 연습을 하면서 텍스트를 함께 만들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공연을 하면서 토론을<br />

떠올린다. 텍스트들을 기성품으로 이용하는 다른 앙상블에게 간단히 넘겨줄 수는 없다.<br />

Weil der Text während der Probenarbeit gemeinsam hergestellt wird. Die Schauspieler<br />

erinnern sich, während sie das Stück aufführen, an die Diskussionen. Man kann sie nicht<br />

einfach einem anderen Ensemble geben, das sie als Fertigprodukt nutzt. 10)<br />

이렇듯 현재 삶의 경험에서 부딪힌 문제들만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폴레쉬의 의도<br />

는 소위 고전 문학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재현극이 그의 삶의 문제를 대변하<br />

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br />

2.2. 반재현극<br />

폴레쉬에게 연극은 현실과 대척점에 선 허구의 세계나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바로<br />

그 자체로 현실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사실주의적 재현극을 철저히 거부하<br />

는 “반재현극 Antirepräsentationstheater”이라는 그의 연극노선을 결정짓는다. 11)<br />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의 도입부는 무대 위에 드리워<br />

진 육중한 붉은 커튼 사이로 지팡이를 든 손이 튀어나와 무대 바닥을 두드리면서 12)<br />

“연극은 진지한 삶의 그림자가 아니다 Das Spiel ist kein Schatten des übrigen ernsten<br />

9) Vgl. René Pollesch: Der Ort, an dem Wirklichkeit anders vorkommt. Pollesch über den Künstler als<br />

Vorzeigesubjekt und das Grauen im Theater, befragt von Cornelia Niedermeier, in: ders.: Liebe ist<br />

kälter als das Kapital. Stücke Texte Interviews, Reinbeck bei Hamburg 2009, S. 313-318, hier S.<br />

316.<br />

10) René Pollesch, Der Ort, an dem Wirklichkeit anders vorkommt, S. 313.<br />

11) Vgl. René Pollesch, Ich möchte das Unheil sein.<br />

12) 페스티벌 봄과 연계하여 국립극단에서 주최한 3월 22일의 배우 워크숍에서 힌리히스는 공연 무대<br />

의 육중한 붉은 커튼은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밝혔다.


15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Lebens” 13)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연극을 현실의 모방 혹은 재현으로 보지 말라는<br />

요구를 처음부터 명백히 하는 것이다. 고전 문학을 재현하는 연극에 대한 거부는 주<br />

인공이 레클람 문고판 책들을 객석을 향해 던지거나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br />

Iphigenie auf Tauris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부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피게니에<br />

가 두고 온 고향 “그리스를 온 영혼으로 그리워한다 Das Land der Griechen mit der<br />

Seele suchend”는 대목을 감상적 어조로 읊조리고 난 주인공은 갑자기 어조가 돌변하<br />

여 그녀의 이야기와 감상적 언어는 자신의 경험과 육체에는 맞지 않는다고 투덜댄다.<br />

영혼은 여기 없어요. 그녀의 어떤 이야기도 이 육체에는 맞지 않습니다. 이 육체의 경험에<br />

맞는 영혼의 말 같은 건 없습니다.<br />

Da ist keine Seele, keine ihrer Erzählungen passt auf diesen Körper. Keine Seelenwörter gibt<br />

es für die Erfahrung dieses Körpers.<br />

주인공 화자에게 그리스 공주 이피게니에의 고뇌가 현재 자신의 고뇌가 될 수 없<br />

다. 14) 고전을 거부하는 이유가 너무 단순한 것 같지만 폴레쉬는 이 점에 대해 확고한<br />

의견을 피력한다.<br />

연극을 항상 보편적으로 유효하다고 여기면서 연극에서는 언제나 삶과 죽음 그리고 남자와<br />

여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비평가들이 있다. 난 그 모든 것에 회의적이다. 각자 삶<br />

에 대한 정의가 있겠지만 그것은 내게는 너무 애매하다. 난 먼저 사랑과 삶과 같은 의미들<br />

을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살며 사랑하는 방식은 예를 들어 햄릿과는 다르다는 점을<br />

강조하고 싶다. 만약 연극이 보편적 유효성을 획득하고 고전들을 상연할 목적으로 역사를<br />

초월해서도 변함없이 유효하고 단일한 삶의 개념에 고착한다면 그 연극은 혼란스러울 것이<br />

다. 내 인생은 햄릿의 인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 햄릿으로 나의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br />

수는 없다.<br />

13)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의 텍스트는 전문이 다음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br />

재되어 있다. http://pollesch.posterous.com/archive/10/2010 이하 이 사이트에 실린 텍스트의 본문에<br />

서의 인용은 출처를 별도로 표기하지 않는다.<br />

14) 이 부분은 배우 힌리히스의 개인적 경험이 극에 반영된 예로 볼 수 있다. 힌리히스는 프랑스 태생<br />

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연출가 로랭 쉐뚜앙 Laurent Chétouane과 2006년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br />

를 공연한 바 있다.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55<br />

Es gibt Kritiker, die das Theater immer sehr allgemeingültig halten wollen, die sagen, es<br />

ginge immer um Leben und Tod oder Mann und Frau. Das würde ich alles in Frage stellen.<br />

Jeder hat irgendeinen Begriff vom Leben, aber das ist mir zu schwammig. Ich muss erst mal<br />

die Begriffe klären, wie Liebe und Leben, und ich bestehe drauf, dass ich anders lebe und<br />

liebe als Hamlet zum Beispiel. Wenn das Theater, um seine Allgemeingültigkeit zu erhalten<br />

und um seine Klassiker spielen zu können, an einem über die Geschichte hinweg gleich<br />

gültigen Begriff vom Leben festhält, bleibt es diffus. Mein Leben ist nicht das von Hamlet.<br />

[...] Mit Hamlet kann ich meinen Alltag nicht bewältigen. 15)<br />

폴레쉬에 따르면 괴테의 이피게니에든 세익스피어의 햄릿이든 21세기 독일에서<br />

사는 자신과 그의 극단 동료, 그리고 그들을 찾아온 관객들이 직면한 일상의 문제,<br />

즉 삶과 사랑, 노동, 실업과 관련한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br />

경험과의 관련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거부되는 것은 단지 이전 세기의 문학 고전들만<br />

은 아니다. 폴레쉬에게 있어서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이민자 문제 혹은 칠레 피노체<br />

트 독재정권의 역사도 그의 연극에 적합한 주제가 아니다. 그의 일상의 경험세계와<br />

직접적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푸코의 담론분석과 같은 후기구조주의 이론의 세례<br />

를 받은 폴레쉬에게 ‘정상성’이나 ‘보편성’은 어떤 특정인의 이해에 부합하기 위해<br />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16) 이에 그는 보편성과의 대척점에서 자신의 특수한<br />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서 연극의 주제를 진심으로 다루기 위한 필요<br />

조건은 바로 자신과의 관련성이다. 그래서 폴레쉬는 무대 위에서 비참한 사람들의 이<br />

야기를 재현하려는 연출가가 자신의 공연을 보는 중에 “저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의<br />

식하며 “자신을 배제 Sich-Ausklammern”시킨다면 그것은 자신조차 공감하지 못하는<br />

이야기로 관객의 공감을 얻으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라고 비판한다. 17)<br />

15) René Pollesch: Ich würde gern in der U-Bahn schreien. René Pollesch über Selbstausbeutung und<br />

Ohnmachtsgefühle im Gespräch mit Andreas Lehmann, in: ders.: Liebe ist kälter als das Kapital.<br />

Stücke Texte Interviews, Reinbeck bei Hamburg 2009, S. 319-326, hier S. 321f.<br />

16) René Pollesch, Der Ort, an dem Wirklichkeit anders vorkommt, S. 318.<br />

17) Frank-M. Raddatz: Penis und Vagina, Penis und Vagina, Penis und Vagina. René Pollesch über<br />

Geschlechterzuschreibungen, das Normale als Konstruktion und die Theoriefähigkeit des Alltags, in:<br />

ders.: Brecht frißt Brecht. Neues Episches Theater im 21. Jahrhundert, Berlin 2007, S. 195.-213, hier<br />

S. 197.


15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다른 한편 이런 진정성에 대한 요구는 배우의 연기에도 해당된다. 폴레쉬는 배우<br />

가 자신과 전혀 다른 허구적 역할을 연기할 때의 효과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고<br />

있다. 일례로 그는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을 주제로 한 연극을 관람했던 경험을 이야<br />

기 한다. 배를 집어넣으려 애쓰던 50대 남자 배우와 앞머리를 내려 얼굴 주름을 감춘<br />

여자 배우를 보았을 때 그는 작품의 주제가 피노체트의 독재정권이 아니라 “과체중<br />

과 미에 대한 집착 Übergewicht und Schönheitswahn”이 아닌가 생각했다는 것이다. 18)<br />

사실주의 재현극이 추구하는 배우와 허구적 역할간의 완전한 동일화는 궁극적으로<br />

불가능하기에 결국 관객에게 주제를 전달하는 데도 실패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br />

의 모토처럼 허구를 배제한 경험적 사실만 무대에 올린다면 모든 고전을 공연 레퍼<br />

토리에서 배제시켜야하냐는 질문에 폴레쉬의 답은 명료하다. 고전 텍스트는 읽으면<br />

되는 것이고 그것이 현대의 연극무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는 것이다. 19)<br />

위와 같이 현실과의 직접적 관련성을 추구하는 폴레쉬의 반재현극의 특징을 간추<br />

려보면 첫째, 플롯이나 허구적 인물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플롯을 대체하는 담론에<br />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여기서는 일단 인물 문제를 살펴보겠다. 폴레<br />

쉬 연극에는 감정이나 사실주의적 심리를 가진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은<br />

배우의 이름에서도 반영이 되는데 인물들은 ‘하이디 호 Heidi Hoh’처럼 인위성을 강<br />

조하는 이름이나 간단한 이니셜만으로 표기되거나, 심지어는 배우 실명의 이니셜을<br />

따서 불리기도 한다. 20) 폴레쉬는 자신의 연극에서 배우가 사적 인간으로 등장하여<br />

그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대 위 배우와 사적 인간인 배우 사<br />

이의 경계는 분명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2010년 초연부터 현혹의 사회적 맥락<br />

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연기한 배우 힌리히스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그는<br />

서울 공연과 연계하여 열린 배우 워크숍에서 자신이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인물은<br />

파비안 힌리히스라는 개인은 아니며 그렇다고 완전 허구의 인물도 아닌 제 3의 존재<br />

라고 강조했다.<br />

18) Frank-M. Raddatz, Penis und Vagina, S, 197f.<br />

19) René Pollesch, Der Ort, an dem Wirklichkeit anders vorkommt, S. 317.<br />

20) Vgl. René Pollesch/Cral Hegemann: Liebe, von der man sich selbst erzählt. Ein Gespräch über Linke<br />

Kritik, Fake und wahre Liebe, in: Hegemann, Carl(Hg.): Die Überflüssigen, Berlin 2006, S. 100-136,<br />

heir S. 122.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57<br />

폴레쉬 연극은 배우들이 텍스트의 창작 과정에서부터 참여하여 그들의 경험을 함<br />

께 반영하지만 막상 텍스트와 전달 주체의 연결은 직접적이지 않으며 이런 점에서<br />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는 리미니 프로토콜의 다큐연극 속의 인물들과는 성격<br />

이 다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분량의 텍스트를 빠른 템포로 낭송하는 전달 방<br />

식의 인위성 때문에 “말하는 자동인간 Sprechautomaten” 21)으로 불릴 정도이나 그렇<br />

다고 해서 옐리네크의 연극에서처럼 배우의 인격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공의 ‘유형<br />

담지자 Typenträger’로 보기도 어렵다. 완전히 허구적 인물도 아니지만 배우 자신이<br />

아닌 다른 존재를 표현하는 폴레쉬 연극 주인공들을 평론가 디드리히 디드리히센<br />

Diedrich Diedrichsen은 “팝 음악 공연자 Pop-Musik-Performer”에 비유한다. 무대 위<br />

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일상의 배우 자신은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를 “대표하는<br />

것 vertreten”도 아니라는 점과 관객을 겨냥한 “공연 Darstellunng”이라는 형태에서 제<br />

3의 정체성을 창출한다는 점을 근거로 한 그의 비유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22)<br />

둘째, 폴레쉬의 반재현극은 그 창작의 생산조건 및 과정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담<br />

고 있다. 배우가 대사를 완벽하게 암기하려는 부담을 갖지 않고 대사를 잊어버리면<br />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프롬프터에게 다가가 물어본다거나 프롬프터를 아예 무대 위로<br />

불러다 놓고 공연을 하기도 한다. 또한 공연 기술상의 완벽함도 추구하지 않아서 배<br />

우와 조명과 음악 사이의 타이밍의 불일치가 빈번히 발생하지만 이 또한 결과적으로<br />

연극을 현실의 완벽한 모사라고 생각하는 환상을 깨고 연극의 인위성을 주목하게 하<br />

는 데 일조한다. 23) 어느 인턴 사원의 죽음 Tod eines Praktikanten (2007)의 공연 당<br />

시에는 배우들이 그 날 저녁의 출연료를 옷의 가격표로 붙이고 등장했다. 일용 노동<br />

자라는 연극배우의 비루한 현실을 들추어냄으로써 연극이 현실 경제상황과는 무관한<br />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허상을 깨버리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24)<br />

21) René Pollesch: Wie kann man darstellen, was uns ausmacht? René Pollesch im Gespräch mit<br />

Romano Pocai, Martin Saar und Ruth Sonderegger, in: ders.: Liebe ist kälter als das Kapital. Stücke<br />

Text Interviews, Reinbeck bei Hamburg, S. 327-346, hier S. 329.<br />

22) Diedrich Diedrichsen: Maggies Agentur. Das Theater von René Pollesch, in: Tigges, Stefan(Hg.):<br />

Dramatische Transformation, Bielefeld 2008, S. 101-110, hier S. 107f. 디드리히센은 이 비교가 사적<br />

존재로서의 개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스타 팝 가수가 아니라 밴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전제한<br />

다.<br />

23) Nissen-Rizvani, Autorenregie, S. 205.<br />

24) Vgl. Norbert Otto Eke: Störsignale. René Pollesch im 〉Prater〈, in: Schößler, Franziska/Bähr,


15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3. 철학 세미나와 팝공연의 혼합<br />

3.1. 담론극<br />

폴레쉬 연극의 특성을 지칭하는 표현 중 가장 적절한 것은 아마 ‘담론극’일 것이<br />

다. 25) 이는 그의 연극이 대학교 철학 세미나에서나 들을 법한 이론가들 - 아도르노,<br />

푸코, 아감벤, 버틀러, 해러웨이 등 - 을 공공연하게 인용해서만이 아니라 그 인용된<br />

이론들이 플롯과 허구적 인물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br />

다. 철학 담론으로 그가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경제주의 일변도의 세계화와 신자유<br />

주의,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이라는 허상, 이성애적 규범성, ‘보편성’ 및 ‘정상성’이<br />

라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실체 등이다.<br />

폴레쉬에게 있어서 철학 이론은 아카데미 안에서만 통용되는 추상적 개념들이 아<br />

니라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돕는 실용적 도구이다.<br />

나의 일상에서 인지한 현상이나 모순들을 기술할 수 있는 이론을 발견하는 것이 내게는 중<br />

요하다. [...] 연극은 스스로를 정치적 심급으로 정당화시키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는데 그<br />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잘못된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정한 상황들<br />

을 이론을 가지고 분석하고 이 이론들을 내 일상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br />

Mir geht es darum, für Phänomene oder Widersprüche, die ich in meinem Alltag<br />

wahrnehme, eine Theorie zu finden, die das beschreiben kann. [...] Im Theater gibt es das<br />

Bedürfnis, sich als politische Instanz zu legitimieren. Das finde ich nicht schlecht. Meiner<br />

Meinung nach passiert das aber auf die falsche Weise. Ich versuche, bestimmte Verhältnisse mit<br />

einer Theorie zu bearbeiten und diese Theorie tatsächlich auf meinen Alltag anzuwenden. 26)<br />

Christine(Hg.): Ökonomie im Theater der Gegenwart. Ästhetik, Produktion, Institution, Bielefeld<br />

2009, S. 175-191, hier S. 176f.<br />

25) 여기에서 담론은 푸코로 대표되는 후기구조주의적 정의를 따라서 현실 재현의 수단이 아니라 일정<br />

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여 “광기 Wahnsinn”, “정상성 Normalität”, “성 Sexulalität”과 같은 사회적 대<br />

상 및 이에 상응하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물적 생산도구로 이해한다. Vgl. Ute Gerhard/Jürgen<br />

Link/Rolf Parr: Diskurstheorien und Diskurs: Nünning, Ansgar(Hg.): Metzler Lexikon. Literatur- und<br />

Kulturtheorie, Stuttgart 1998, S. 95-98.<br />

26) René Pollesch: Ich bin der Antiromantiker. René Pollesch über Theorie und Alltag, Liebe und<br />

Arbeit, schreiende Schauspieler und rassistische Regisseure im Gespräch mit Wolfgang Kralicek, in: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59<br />

어려운 철학 이론들을 인용하기 때문에 지식인들만을 위한 연극이 아니냐는 혐의<br />

를 짙게 받지만 폴레쉬는 자기가 인용하는 이론들이 자신의 현실적 문제, 즉 노동과<br />

사랑이라는 주제와 구체적으로 연결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이런 이론 인용의 텍스트<br />

가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매우 사적인 텍스트라고 주장한다. 27) 물론 이런<br />

텍스트를 정작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전달해야 할 배우들도 폴레쉬의 문제제기 및<br />

이론적용에 공감을 하는가는 중요하다. 폴레쉬는 바로 이 때문에 배우들과의 토론이<br />

그의 연극작업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말한다. 28)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런 이론<br />

을 기반으로 한 현실 분석에 자극을 받은 관객이 사회 안에서의 그들의 위치에 대해<br />

성찰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그의 담론극의 목표라고 밝힌다. 29)<br />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에도 여러 이론들이 인용된다.<br />

우선 연극 제목 자체가 2001년 프랑트푸르트 대학에서 열렸던 학술 심포지엄의 명칭<br />

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30) 아도르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즉물화와 의식의 종속<br />

성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인 “현혹연관관계 Verblendungszusammenhang” 이외<br />

에도 푸코의 권력구조에 대한 담론분석, 장 뤽 낭시 Jean-Luc Nancy의 공동체 이론,<br />

로베르트 팔러 Robert Pfaller의 미학 이론들이 암시되거나 직접 인용된다. 이 이론들<br />

을 통해 이 작품이 부각하고 있는 주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br />

폴레쉬 연극 전반을 걸쳐서 등장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자본주의와 이성애적 규범성<br />

에 대한 비판이다.<br />

연극 시작부터 힌리히스는 관객에게 당신들은 “백인 남성 이성애자”의 연극을 보<br />

고 있으며 오늘 이 무대는 오직 그가 독점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는 폴레쉬의 다른<br />

ders.: LIebe ist kälter als Kapital, Reinbeck bei Hamburg 2009, S. 357-365, hier S. 358.<br />

27) René Pollesch, Wie kann man darstellen, was uns ausmacht?, S. 339.<br />

28) René Pollesch, Wie kann man darstellen, was uns ausmacht?, S. 343.<br />

29) René Pollesch, Der Ort, an dem Wirklichkeit anders vorkommt, S. 317.<br />

30) 독일어 원제 “Ich schau dir in die Augen, gesellschaftlicher Verblendungszusammenhang”의 직역은<br />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너의 눈 속을 들여다 본다“일 것이다. ”너의 눈 속을 들여다 본다“는 헐<br />

리우드의 고전 영화 카사블랑카(1942)에 나온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의 대사인데 심포지엄은 ‘현혹<br />

연관관계’를 간파한다는 의미에서 낭만적 대사의 아이러니한 효과를 노렸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br />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영화 대사가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번역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 영<br />

화 번역을 따른 폴레쉬 연극의 한국어 제목은 원제가 의도한 아이러니한 효과를 전달하지는 못한<br />

다.


16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연극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주제로 사회 전반이 백인 남성 이성애자 중심으로 작동하<br />

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이후에는 작가 헤밍웨이의 아들이 감옥에서 트랜스젠더라는<br />

신분이 발각되었던 실제 에피소드를 언급하고는 이것이야말로 연습으로는 쓸 수 없<br />

는 진짜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과 문학적 허구에 대한 거<br />

부를 함께 연결한 대목이다.<br />

연극 중반에서부터는 브레튼우즈 협정이 폐기된 1971년이 여러 번 언급된다. 주인<br />

공은 1971년 이후를 현대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이후로는 ‘육<br />

체’를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데 이는 실체가 없이 허구적 교환 가치만을<br />

쫒아 움직이는 세계금융경제에 대한 비판이다. 31) 브레튼우즈 폐기의 함의는 후반부<br />

에 등장하는 상품에 대한 언급과 연결시키면 좀 더 명확해진다. 사람들은 존재하지도<br />

않고 소유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 어떤 상품을 샀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상<br />

품을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파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면서 여기서<br />

“이 상품의 실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Die Realität dieser Ware spielt überhaupt<br />

keine Rolle”고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설<br />

명했던 맑스를 연상시킨다. 맑스의 분석이 아직도 유효한 후기자본주의의 물신화된<br />

사회에서 인간 소외가 사라졌을 리 없으니 자아실현 Selbstverwirklichung이란 것도<br />

단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양노원에서야말로 창의적인 사람들이 마침내<br />

자아실현을 하게 된다고 야유한다.<br />

히틀러만 감옥에 있으면서 책을 쓴 건 아닙니다. 다들 그렇게 합니다. 양노원에서는 전통적<br />

으로 자아실현을 하게 되죠. 갑자기 모두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스케치를 하거나<br />

연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요.<br />

Es ist ja nicht nur Hitler, der in der Haft ein Buch schrieb. Sie machen es alle. Im<br />

Seniorenheim kommt es traditionell zur Selbstentfaltung. Wenn plötzlich alle denken, sie<br />

können malen, schreiben, zeichnen und Theaterspielen.<br />

이 연극의 또 다른 주요 주제는 연극예술에 대한 메타적 성찰이다. 32) 이를 위해서<br />

31) 1944년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정은 세계경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를 금에 대한 교환가치로<br />

결정했는데 1971년 미국의 일방적 협정 폐기로 세계금융시장은 실질가치(금)와의 관련성을 상실한<br />

채 허구적 가치인 달러만을 쫒게 된 것이다.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61<br />

는 소형 캘빈주의 Calvinismus Klein(2009) 이후 폴레쉬 연극의 소재로 등장한 상<br />

호수동성의 미학이론이 동원된다.<br />

도입부에서 연극은 삶의 그림자가 아니라고 외친 주인공은 이어서 이 연극은 상호<br />

능동성의 연극이 아니라고 말하고는 상호능동성의 연극을 신랄하게 비판한다.<br />

상호능동성의 연극은 지난 수십 년 간의 테러였습니다. 혐오스런 사교의 예술형식이지요.<br />

그러나 엉망이 된 소통상황을 그것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연극<br />

청중은 끔찍한 공동체의 형태를 띠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의미를 공유한다고 믿으면서 이<br />

사회를 의미의 공동체로 파악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의미를 끊임없이 전달하는 게 소통이라<br />

고 여깁니다.<br />

Das interaktive Theater war ein jahrzehntelanger Terror. Eine widerliche Kunstform der<br />

Geselligkeit. Aber man kann nicht ihm allein den Zustand katastrophaler Kommunikation<br />

anlasten, denn überhaupt stellt das Auditorium jedes Theaters eine schreckliche Form der<br />

Gemeinschaft dar, die glaubt einen Sinn zu teilen und die Gesellschaft als eine<br />

Sinngemeinschaften zu verstehen, und die für Kommunikation hält, sich dauernd einen<br />

abwesenden Sinn mitzuteilen.<br />

관객집단이 동질한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일 것이라는 환상을 깨라고 촉<br />

구한 주인공은 급기야 예술가의 작업에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br />

운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전동 칫솔을 들고 객석으로 향한다. 자신이 직접<br />

관객의 양치질을 돕겠다는 제스처인데 이번 두 차례의 서울 공연에서는 연극 컨셉을<br />

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어느 관객도 상호능동성의 요구에 호응하지는 않았다. 이렇<br />

게 시범적으로 상호능동적 연극의 폐해를 보여준 주인공은 상호수동성의 연극을 경<br />

험해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상호수동성의 연극이란 공연이 끝난 후 배<br />

우가 관객의 파트너를 집에 대신 데려다 주는 것, 즉 관객이 자신이 할 데이트를 배<br />

우에게 “위임 delegieren”하는 연극이라는 것이다.<br />

32) 이 작품이 연극에 대한 연극이며 자기지시성 Selbstrefenrenz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포스트드라마적<br />

연극이라는 사실은 서울 공연이후 나온 한국의 평론에서도 이미 지적되었다. 참조, 장은수: 관객이<br />

여 착각에서 깨어나라! - 르네 폴레쉬의 렉처시어터와 “포스트드라마시대 상호수동적 연극론”. 르<br />

네 폴레쉬 , 실린 곳: 한국연극 No. 430<br />

(2012.05.), 58-59쪽.


16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상호수동성’은 오스트리아 문화이론가인 로베르트 팔러가 제안한 개념이다. 배우<br />

가 관객의 데이트를 대신 한다는 우스꽝스런 이야기도 팔러의 저서 상호수동성의<br />

미학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에 소개된 실제 사례로 오스트리아 예술가 루트 카<br />

제러 Ruth Kaaserer가 1996년 빈에서 행했던 퍼포먼스이다. 33) 팔러의 상호수동성 옹<br />

호는 사실 20세기 후반부터 예술창작과 ‘열린 예술작품 offenes Kunstwerk’ (움베르<br />

토 에코) 등과 같은 미학이론에 확산된 ‘공동 생산자로서의 수용자’ 개념을 비판하는<br />

데 목적이 있다. 그의 논지는 수용자의 참여를 지향하는 예술작업이 모순적이게도 수<br />

용자를 오히려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즉 “모두가 생산자가 되었기 때문에 [...]<br />

누구도 자신이 참여함으로써 생긴 효과 외에는 무엇인가를 관조하려 하지 않는다 Da<br />

alle zu Produzierenden geworden sind, möchte fast niemand mehr irgendetwas<br />

betrachten - außer den Wirkungen des eigenen Eingriffs [...].” 34) 예술의 공동 생산자<br />

로 변한 수용자는 정작 수용자로서 해야 할 적극적 활동, 즉 관조와 인식을 회피한<br />

수동적 수용자로 전락한다. 35) 이에 반해 상호수동적 예술은 자신의 향유행위<br />

Genießen조차 제3자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데, 이럴 때 수용자는 작품에<br />

대한 비판적 거리감을 획득한다는 것이 팔러의 주장이다. 36)<br />

연극은 환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방가르드적 반재현극을 지향하는<br />

폴레쉬가 수행성 중심의 현대연극을 비판하면서 결국은 전통적 예술형식을 옹호하는<br />

팔러의 이론을 설파하는 것은 언뜻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다. 37) 하지만 소형 캘빈<br />

33) Vgl.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Hamburg 2008, S. 41.<br />

34)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S. 40. 팔러는 현대 미술에서 큐레이터가 급증하는 현상<br />

도 상호능동적 예술작품이 많아져서 생산자는 늘었지만 이를 관조하고 해석할 수용자가 부족한데<br />

원인이 있다고 설명한다.<br />

35)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S.45f.<br />

36) “Interpassivität besteht in delegiertem Genießen.”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S.<br />

293.) 이에 대한 대표적 예로 팔러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와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의 웃음소<br />

리 효과음 Dosengelächter을 들고 있다. 두 가지 다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고 표현하는 관객의 향유<br />

활동을 위임받은 예술작품 속의 장치이다.<br />

37) 복사기와 비디오레코더와 같은 일상 생활 도구에서부터 예술영역 전반으로 확장하면서 수동성의<br />

미덕을 주장하는 팔러의 이론은 그가 제시하는 개별적 예와 이에서 도출한 테제 사이의 논리적 비<br />

약이나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호능동적 예술의 범위설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 등에 있어<br />

서 분명 반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의 관심이 팔러의 상호수동성 미학의 타당성을 검증<br />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미학이론을 자신의 연극에서 중요하게 인용하고 있는 폴레쉬의 의도<br />

를 규명하는 데 있는 만큼 팔러의 이론을 더 자세히 논의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63<br />

주의 이후로 꾸준히 팔러를 인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폴레쉬가 그의 이론을 단<br />

지 희화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폴레쉬는 무슨 생각에서 팔러<br />

의 상호수동성 미학을 인용하는 것일까?<br />

우선 폴레쉬 연극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관객을 철학적 담론으로 자극하여 분석과<br />

인식의 활동으로 유도하는 데 있는 만큼 ‘성찰하고 인식하는 수용자’에 대한 팔러의<br />

옹호가 폴레쉬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폴레쉬가 공<br />

공연하게 언급하는 것은 공동체의 문제이다. 팔러는 상호능동적 예술이 예술가와 관<br />

객 사이의 위계를 해체하고 참석자 모두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친밀하고 조화로운<br />

‘공동체 Community’를 지향하는데 이는 역으로 사회Gesellschaft와 연관된 예술의 비<br />

판적 기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즉 예술을 통해 ‘사회’를 성찰해야하는 데 상호<br />

능동적 예술에서는 관객이 한시적 가상 공동체 안에 안주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38)<br />

팔러의 논지와 비슷한 맥락으로 폴레쉬도 연극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을 깨라고<br />

촉구한다. 사회현실과 마찬가지로 연극에서도 언술, 즉 권력의 주체가 존재하고 그<br />

주체는 나의 이익을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br />

이 무슨 끔찍한 공동체 형태란 말입니까! 이 얼마나 혐오스런 사교의 예술형식인가요! 의<br />

미를 서로 나눈다고 믿다니! 그냥 저냥 유지되는 공동체도 있단 말입니다! 이 앞에서 떠드<br />

는 이 백인 남성 이성애자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공유하지요? 그가 바퀴벌레들을 위해<br />

말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들을 향해 말하나요?<br />

Was für eine katastrophale Form der Gemeinschaft! Was für eine widerliche Kunstform der<br />

Geselligkeit, die glaubt, einen Sinn zu teilen! Es gibt doch eine Gemeinschaft, die geht!<br />

Was teilen wir denn mit der weißen männlichen Hete, die hier vorne spricht? Spricht die für<br />

die Kakerlaken oder wenigstens mal zu denen hin?<br />

그러나 사실 팔러가 지향하는 연극과 폴레쉬의 연극 경향이 결정적으로 충돌하는<br />

부분이 있다. 팔러는 연극에서의 “허구적 공간 Fiktionsraum” 39) 내지 “가상성 als ob” 40)<br />

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의 이런 형식조건이 생산자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br />

38)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S. 319f.<br />

39)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S. 318.<br />

40)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S. 317.


16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타자의 목소리를 듣게 하고 개인적으로 천명하거나 대변하지 못했던 사회의 진실을<br />

드러낼 가능성을 갖는다는 판단에서이다. 41) 예술의 허구성과는 결별하고 오롯이 개<br />

인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하는 폴레쉬의 반재현극은 이 점에서 팔러의 연극 이상과는<br />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 한다. 따라서 폴레쉬가 팔러의 이론을 끌어온 것이 그의 미학<br />

전체를 이해하고 동조했기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팔러 이론의 몇몇 주장<br />

들 즉, 연극의 배우와 관객이 조화로운 공동체라는 낙관적 믿음에 대한 비판이나 수<br />

용자의 분석과 인식활동의 강조 같은 측면에 대한 ‘부분적 동의’에 기반하는 듯하다.<br />

다른 한편으로 폴레쉬는 팔러의 이론을 파편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인용함으<br />

로써 코믹한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 상호수동성의 연극을 ‘배우에게 나의 데이트를<br />

위임하는 것’으로 단순화시켜 설명하고 배우가 전동 칫솔을 들고 객석을 돌아다니거<br />

나 공연에 웃음소리 효과음을 삽입하는 등은 관객에게 상호수동성 미학을 본격적으<br />

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주의를 환기시키고 즐거움을 줄 목적으로 보인다.<br />

3.2. 팝문화적 요소<br />

폴레쉬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담론극이 이론 인용을 통해 또 하나의 이론을 생<br />

산할 목적을 갖지는 않으며 이론은 자신에게 삶과 노동관계를 성찰하기 위한 어휘<br />

Vokabular를 제공할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42) 그가 이론을 연극을 위한 재료로 파악<br />

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대목이다. 43) 실제로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br />

눈동자에 건배!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제의 담론들은 이론적 정합성이나 논리적 연<br />

결성을 결여한 채 파편적이고 반복적인 형태로 나열되어 있다.<br />

나탈리 블로흐 Natalie Bloch는 최근 독일연극에 나타난 팝문화의 영향을 논의한<br />

그녀의 논문에서 폴레쉬의 연극이 팝의 요소를 텍스트의 미학적 원칙으로 변용한 예<br />

라고 분석한다. 상이한 담론들의 인용, 담론 간의 자의적 연결, 단어만이 아니라 문장<br />

41) Vgl. Robert Pfaller,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S. 319.<br />

42) René Pollesch, Wie kann man dasrtellen, was uns ausmacht?, S. 338f.<br />

43) Vgl. Norbert Otto Eke: Störsignale. René Pollesch im >Prater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65<br />

들의 반복과 재배열 등이 팝음악과 디제이 문화에 기원한 샘플링 Sampling, 루프<br />

Loop, 치환 Permutation 기법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44) 여러 인물이 등장하여 대화하<br />

는 작품 하이디 호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블로흐의 분석 결과는 제목 자체에서부<br />

터 할리우드 영화 대사와 비판철학의 개념을 혼합한 일인극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br />

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에서도 대체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폴레쉬 연극의 트레<br />

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등장인물 사이에 대사를 빠른 템포로 “받아쳐서 말하기<br />

auf-Anschluss-Sprechen” 45)는 일인극인 탓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에 이 작품에서<br />

는 팝의 요소가 텍스트 차원에서 보다는 공연 형식적 차원에서 두드러진다.<br />

폴레쉬의 연극은 초기부터 오락적 요소가 강한 “대중극 Boulevardtheater” 46) 혹은<br />

“바리에떼 Varieté” 47)를 연상시킨다고 평가받았는데 힌리히스의 일인 퍼포먼스가 중<br />

심이 된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는 흡사 팝가수의 공연 같<br />

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연극 시작부터 흥겨운 힙합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나타난 힌<br />

리히스는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콘서트에서의 가수의 등장을 연상시켰다. 48)<br />

공연 내내 중간 중간 흘러나오는 퀸이나 프린스 등의 팝송은 기존 연극에서 인물 심<br />

리나 극의 상황을 표현하는 배경음악적 기능은 전혀 갖지 않으며 텍스트 담론의 내<br />

용 전환과도 별 상관이 없다. 팝음악의 삽입과 아울러 힌리히스는 직접 피아노 앞에<br />

앉아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면서 관객이 함께 부를 것을 요구한다든가 공연 후<br />

반부에는 기타를 매고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부르기도 한다 (독일 공연에서는 퀸의<br />

음악에 맞춰 드럼을 연주했다).<br />

44) Natalie Bloch: Popästhetische Verfahren in Theatertexten von René Pollesch und Martin Heckmanns,<br />

in: Der Deuschunterricht 2/2004, S. 57-70. 음악용어로서의 샘플링은 기존 음악 혹은 음향의 재배합<br />

을, 루프는 일정 주제의 연속적 반복을 의미한다.<br />

45) Andrzej Wirth: René Pollesch. Generationsagitpoptheater für Stadtindianer, in: Dürrschmidt,<br />

Anja/Engelhardt, Barbara(Hg.): Werk-Stück. Regisseure im Porträt. Arbeitsbuch, Berlin 2003, S.<br />

126-131, hier S. 131. 일인극이어서 인물 간에 대사를 주고받는 형태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이전<br />

폴레쉬의 다른 연극보다 말의 템포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Vgl. Anne Peter: Um Kopf und Körper.<br />

Ich schau dir in die Augen...- René Pollesch stellt die alten Fragen neu, in:<br />

http://www.nachtkritik.de/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3771<br />

46) René Pollesch, Ich bin der Antiromantiker, S. 357.<br />

47) Hans-Thies Lehmann, Postdramatisches Theater, S. 342-345.<br />

48) 힌리히스는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의 건배!로 2010년 테아터 호이테 가 선정<br />

한 ‘그 해의 연기자 상’을 수상했다.


16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노래와 악기 연주 외에도 힌리히스는 대사를 낭송하는 중간 중간 몸에 스프레이를<br />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뜬금없이 긴 마이크를 들고 등장한 보조출연자와 탁<br />

구를 친다. 또 마치 가수가 관객에게 꽃이나 손수건을 선물로 던지듯 종이 목걸이를<br />

관객에게 걸어주거나 레클람 단행본들을 객석으로 던지기도 한다. 이렇듯 연극 중간<br />

에 텍스트 없이 진행되는 배우의 짧은 퍼포먼스는 ‘뮤직 비디오 클립’에서 차용한 용<br />

어로 “클립 Clip”이라고 불리는데 연극 속에 이런 형식의 휴지부를 삽입하는 구조 자<br />

체가 MTV와 같은 미디어의 영향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텍스트 담론과 연관<br />

성 없는 이런 일련의 퍼포먼스는 무엇보다 관객이 어려운 담론의 무게에서 벗어나도<br />

록 하는 휴지부로서 오락적 기능을 담당한다. 49)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와 육체, 텍스<br />

트와 이미지 혹은 행위의 연관을 단절하면서 생소화 효과를 유발하는데 50) 이는 사실<br />

주의 재현극의 지배적 경향인 ‘말, 감정, 행위의 통일성 Die Einheit von Sprechen,<br />

Fühlen und Handeln’을 해체하려는 폴레쉬의 반재현극 미학의 실천 전략으로 파악할<br />

수 있다. 51)<br />

4. 나가는 말: 폴레쉬 연극의 수용<br />

폴레쉬는 자신의 연극작업을 사실주의적 재현극을 주요 레퍼토리로 하는 독일 대<br />

극장들의 대척점으로 이해한다. 그의 연극은 실상 2000년대 이후 베를린 프라터 소<br />

극장을 찾는 젊은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얻으면서 지명도를 획득했다. 52) 폴레쉬는<br />

자신의 관객층이 영화에 익숙하며 기존의 재현극을 지루하게 여기면서 새로운 것에<br />

대한 문화적 욕구를 가진 젊은 세대라고 진단한다. 53) 이런 점을 고려하면 그가 연극<br />

49) Vgl. Nissen-Rizvani, Autorenregie, S. 198.<br />

50) Birgit Lengers: Ein PS im Medienzeitalter. Mediale Mittel, Masken und Metaphern im Theater von<br />

René Pollesch, in: Arnold, Heinz Ludwig(Hg.): Theater fürs 21. Jashrhundert. Text+Kritik. Zeitschrift<br />

für Litetartur. Sonderband XI, München 2004, S. 143-155, hier S. 150. 역시 힌리히스가 출연한 폴<br />

레쉬의 신작 킬 유어 달링! 베를라델피아의 거리 Kill your Darlings! Streets of Berladelphia는 15<br />

명의 전문 곡예사들까지 동원한 스펙타클한 무대로 클립의 볼거리적 요소를 강화했다.<br />

51) Vgl. René Pollesch, Wie kann man darstellen, was uns ausmacht?, S, 329f.<br />

52) Vgl. Andrzej Wirth, Generationsagitpoptheater für Stadtindianer.<br />

53) Birgit Lengers, Ein PS im Medienzeitalter, S. 144.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67<br />

에 팝문화적 요소를 지속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이 코드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젊<br />

은 관객층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일 것이라 추측된다.<br />

그러나 반면 그의 반재현극의 또 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이론 담론은 관객들에게<br />

어느 정도로 수용되는 것일까? 브리글레프는 폴레쉬의 연극이 “개념의 혼란에서 진<br />

정한 휴식을 느끼는 도시의 소수집단, 즉 독서가, 대중문화담론을 구사하는 먹물 냉<br />

소주의자, 미학적으로 참을성 없는 사람 내지 이론을 뒤적대는 회의주의자들을 위한<br />

지적 풍자극 Intelllektuelle Satire für urbane Minderheiten wie Bücherleser,<br />

Popdiskursive, gebildete Zyniker, ästhetische Ungeduldige oder skeptische Theoriefilzer,<br />

denen Begriffsverwirbelung eine echte Erholung ist”이라고 혹평한다. 54) 브리글레프처<br />

럼 폴레쉬 연극을 찾는 관객까지 폄하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뚜렷한 맥락 없이 빠른<br />

템포로 전달되는 담론의 이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폴레쉬의 연<br />

극 스타일을 독창적이라고 평가하는 극작가 존 폰 뒤펠 John von Düffel도 그의 반재<br />

현극이 혹시 기존연극의 거부에서만 존재의 정당성을 찾는 “기생적 형태 parasitäre<br />

Form”는 아닌지 물으면서 그 지속성에 대해서 조심스런 우려를 표명한다. 55)<br />

하지만 이론 담론의 수용 가능성 문제에 대해 정작 폴레쉬는 훨씬 여유로운 태도<br />

를 보인다. 관객이 연극에 등장하는 이론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인터뷰 질문<br />

에 폴레쉬는 “당신이 당신의 교양상의 결함 때문에 당황한다고 해서 우리를 비난할<br />

수 있는가 ob man uns vorwerfen kann, dass Ihnen Ihre Bildungslücke Panik Machen”<br />

라고 되물으며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나 모르는 것<br />

은 있게 마련이다! Wir sind es gewohnt, allles verstehen zu müssen, dabei hat jeder<br />

irgendwo Lücken!”라고 응수한다. 56) 자신의 반재현극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세<br />

계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그에게<br />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연극을 만든다는 것은 어차피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br />

른다.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든 새로운 형태의 오락을 찾아서든 그의 연극을<br />

54) Till Briegleb, Die Kosmetik der Widersprüche, S. 43.<br />

55) John von Düffel/Franziska Schößler: Gespräch über das Theater der neunziger Jahre, in: Arnold,<br />

Heinz Ludwig(Hg.): Theater fürs 21. Jahrhundert. Text+Kritik. Zeitschrift für Literatur. Sonderband<br />

XI, München 2004, S. 42.-51, hier S. 45.<br />

56) René Pollesch, Ich bin der Antiromantiker, S. 358.


16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찾는 관객이 존재하고, 공연에서 제시된 담론이 파편적인 형태로라도 그들을 자극한<br />

다면 폴레쉬가 추구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는 듯하다.<br />

참고문헌<br />

1차 문헌<br />

Pollesch, René: Ich schau dir in die Augen, gesellschaftlicher<br />

Verblendungszusammenhang! in: http://pollesch.posterous.com/archive/10/2010<br />

Pollesch, René: Ich möchte das Unheil sein. Der Regisseur und Autor René Pollesch<br />

über politische Botschaften, nackte Schauspieler und sein Stück Der okkulte<br />

Charme der Bourgeoisie bei der Erzeugung von Reichtum. Interview mit Anke<br />

Dürr und Wolfgang Hebel, in: Der Spiegel(21.02.2005), S. 155-157.<br />

Pollesch, René/Hegemann, Cral: Liebe, von der man sich selbst erzählt. Ein Gespräch<br />

über Linke Kritik, Fake und wahre Liebe, in: Hegemann, Carl(Hg.): Die<br />

Überflüssigen, Berlin 2006, S. 100-136.<br />

Pollesch, René: Der Ort, an dem Wirklichkeit anders vorkommt. Pollesch über den<br />

Künstler als Vorzeigesubjekt und das Grauen im Theater, befragt von Cornelia<br />

Niedermeier, in: ders.: Liebe ist kälter als das Kapital. Stücke Texte Interviews,<br />

Reinbeck bei Hamburg 2009, S. 313-318.<br />

Pollesch, René: Ich würde gern in der U-Bahn schreien. René Pollesch über<br />

Selbstausbeutung und Ohnmachtsgefühle im Gespräch mit Andreas Lehmann, in:<br />

ders.: Liebe ist kälter als das Kapital. Stücke Text Interviews, Reinbeck bei<br />

Hamburg 2009, S. 319-326.<br />

Pollesch, René: Wie kann man darstellen, was uns ausmacht? René Pollesch im<br />

Gespräch mit Romano Pocai, Martin Saar und Ruth Sonderegger, in: ders. ;<br />

Liebe ist kälter als das Kapital. Stücke Text Interviews, Reinbeck bei Hamburg,<br />

S. 327-346.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69<br />

Pollesch, René: Ich bin der Antiromantiker. René Pollesch über Theorie und Alltag,<br />

Liebe und Arbeit, schreiende Schauspieler und rassistische Regisseure im<br />

Gespräch mit Wolfgang Kralicek, in: ders.: Liebe ist kälter als das Kapital.<br />

Stücke Text Interviews, Reinbeck bei Hamburg 2009, S. 357-365.<br />

Pollesch, René: Ich bin Heidi Hoh. René Pollesch im Gespräch mit Jürgen Berger, in:<br />

2차 문헌<br />

ders.: world wide web-slums, 2. Afl., Reinbeck bei Hamburg 2009, S. 341-348.<br />

장은수: 관객이여 착각에서 깨어나라! - 르네 폴레쉬의 렉처시어터와 “포스트드라마<br />

시대 상호수동적 연극론”. 르네 폴레쉬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br />

눈동자에 건배!〉, 실린 곳: 한국연극 No. 430 (2012.05.), 58-59쪽.<br />

Bloch, Natalie: Popästhetische Verfahren in Theatertexten von René Pollesch und Martin<br />

Heckmanns, in: Der Deuschunterricht 2/2004, S. 57-70.<br />

Briegleb, Till: Die Kosmetik der Widersprüche. René Pollesch schreibt weiter: Der<br />

okkulte Charme der Bourgeoisie bei der Erzeugung von Reichtum am<br />

Schauspielhaus Hamburg und Diabolo-schade, dass er der Teufel ist im Prater<br />

der Berliner Volksbühne, in: Theater heute 60 (2005) H.4, S. 42-44.<br />

Diedrichsen, Diedrich: Maggies Agentur. Das Theater von René Pollesch, in: Tigges,<br />

Stefan(Hg.): Dramatische Transformationen, Bielefeld 2008, S. 101-110.<br />

von Düffel, John/Schößler, Franziska: Gespräch über das Theater der neunziger Jahre, in:<br />

Arnold, Heinz Ludwig(Hg.): Theater fürs 21. Jahrhundert. Text+Kritik.<br />

Zeitschrift für Literatur. Sonderband XI, München 2004, S. 42-51.<br />

Eke, Norbert Otto: Störsignale. René Pollesch im 〉Prater〈, in: Schößler,<br />

Franziska/Bähr, Christine(Hg.): Ökonomie im Theater der Gegenwart. Ästhetik,<br />

Produktion, Institution, Bielefeld 2009, S. 175-191.<br />

Gerhard, Ute/Link, Jürgen/Parr, Rolf: Diskurstheorien und Diskurs: Nünning, Ansgar<br />

(Hg.): Metzler Lexikon. Literatur- und Kulturtheorie, Stuttgart 1998, S. 95-98.<br />

Kupczńska, Kalina: Fantasma von René Pollesch - Theater ohne Plot? Theater mit<br />

These!, in: Pełka, Artur/Tigges, Stefan(Hg.): Das Drama nach dem Drama.


17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Verwandlungen dramatischer Formen in Deutschland seit 1945, Bielefeld 2011.<br />

Lehmann, Hans-Thies: Postdramatisches Theater, Frankfurt am Main 1999.<br />

Lengers, Birgit: Ein PS im Medienzeitalter. Mediale Mittel, Masken und Metaphern im<br />

Theater von René Pollesch, in: Arnold, Heinz Ludwig(Hg.): Theater fürs 21.<br />

Jashrhundert. Text+Kritik. Zeitschrift für Litetartur. Sonderband XI, München<br />

2004, S. 143-155.<br />

Nelissen, Monika: Die Welt zu Gast bei reichen Eltern in der Gaußstraße, in: Die<br />

Welt(13.11.2007.)<br />

Nissen-Rizvani, Karin: Autorenregie. Theater und Texte von Sabine Harbeke, Armin<br />

Petras/Fritz Kater, Schlingensief und René Pollesch, Bielefeld 2011.<br />

Peter, Anne: Um Kopf und Körper. Ich schau dir in die Augen...- René Pollesch stellt<br />

die alten Fragen neu, in:<br />

http://www.nachtkritik.de/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3771<br />

Pfaller, Robert: Ästhetik der Interpassivität, Hamburg 2008.<br />

Raddatz, Frank-M.: Penis und Vagina, Penis und Vagina, Penis und Vagina. René<br />

Pollesch über Geschlechterzuschreibungen, das Normale als Konstruktion und<br />

die Theoriefähigkeit des Alltags, in: ders.: Brecht frißt Brecht. Neues Episches<br />

Theater im 21. Jahrhundert, Berlin 2007, S. 195.-213.<br />

Wirth, Andrzej: René Pollesch. Generationsagitpoptheater für Stadtindianer, in:<br />

Dürrschmidt, Anja/Engelhardt, Barbara(Hg.): Werk-Stück. Regisseure im Porträt.<br />

Arbeitsbuch, Berlin 2003, S. 126-131.


Zusammenfassung<br />

Philosophie-Seminar im Popkonzert<br />

팝공연장의 철학 세미나 171<br />

-Versuch über die Ästhetik des Antirepräsentationstheaters von René Pollesch<br />

Ham, Suok (Ewha Frauen Uni)<br />

Die vorliegende Arbeit befasst sich mit den Besonderheiten des Theaters von René<br />

Pollesch. Pollesch zählt zu den bedeutendsten Theatermachern der deutschen<br />

Gegenwart. Es handelt sich dabei um eine Art Antirepräsentationstheater, das sich als<br />

postdramatisches Theater (Hans-Thies Lehmann) verstehen lässt. Pollesch geht davon<br />

aus, dass das traditionelle Theater, das mit literarischen Klassikern operiert, mit der<br />

heutigen Wirklichkeit kaum noch zu tun hat und darum unfähig ist, bei der<br />

Bewältigung unserer alltäglichen Probleme zu helfen. Infolgedessen setzt er anstelle<br />

der dramatischen Handlung (Plot) philosophische Diskurse. Mit Hilfe von theoretischen<br />

Diskursen versucht er seine eigenen Probleme in den Lebens- und Arbeitsverhältnissen<br />

zu erkennen bzw. zu analysieren und schließlich das Publikum zum Nachdenken<br />

anzuregen.<br />

In seinem Stück Ich schau dir in die Augen, gesellschaftlicher<br />

Verblendungszusammenhang! (2010) denunziert er das Ideal der Selbstverwirklichung<br />

im Rahmen der globalen Ökonomisierung als Illusion. Dazu lehnt er sich an die<br />

kritische Theorie Adornos sowie die Diskursanalyse Foucaults an. Darüber hinaus<br />

bedient er sich der Interpassivitätstheorie des österreichischen Kulturwissenschaftlers<br />

Robert Pfaller, die er der seit Jahrzehnten in der Kunstproduktion vorherrschenden<br />

Interaktivität gegenüberstellt. Das Fazit der Pfallerschen Interpassivitätstheorie ist, dass<br />

die interaktive Kunstproduktionsmethode dem Rezipienten paradoxerweise die<br />

Reflexionsmöglichkeit nimmt.


17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Das andere markante Merkmal des Theaters von Pollesch ist die popkonzertante<br />

Gestaltung, bei der die unterhaltsame Performance eine große Rolle spielt. Dies<br />

beabsichtigt einerseits, die Schwere der genannten philosophischen Theorie zu<br />

reduzieren. Andererseits soll dadurch das ursprüngliche Wesen des Theaters, nämlich<br />

das Spielerische bzw. Unterhaltsame, wieder hervorgehoben werden.<br />

Keyword<br />

(한글/독일어)<br />

르네 폴레쉬<br />

René Pollesch<br />

반재현극<br />

Antirepräsentationstheater<br />

∙ 필자 E-Mail: sujade@hotmail.com (<strong>함수옥</strong>)<br />

작가연출가 연극<br />

Autorenregietheater<br />

담론극<br />

Diskurstheater<br />

∙ 투고일: 2012년 6월 30일/ 심사일: 2012년 7월 15일/ 심사완료일: 2012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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