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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만 - 한국브레히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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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 예술 및 문화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br />

-아도르노와 미국을 중심으로<br />

Ⅰ. 근대 독일에서 아메리카의 이미지<br />

<strong>최성만</strong>(이화여대)<br />

미국이여, 그대는 낫구나 / 우리 옛 대륙보다, / (……)<br />

평생 사는 동안 / 그대의 내면을 어지럽힐 /<br />

쓸 데 없는 기억도 / 헛된 다툼도 없으니.<br />

괴테, 미국에게 1)<br />

아메리카는 18세기 말 이래 독일인들에게 ‘새로운 고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작<br />

용했다. 그러나 아메리카를 ‘자유의 나라’라고 했지만 이때의 ‘자유’는 사회제도적인<br />

차원의 자유라기보다는 풍요로운 물질을 약속하는 ‘자연 속에서의 자유’를 의미했<br />

다. 2)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구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황금의 나라’ 혹은<br />

‘약속의 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그 이주의 물결은 19세기가<br />

지나는 동안 계속되었다. 물론 이러한 ‘파라다이스’로서의 아메리카 내지는 ‘새로운<br />

고향’으로서의 아메리카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 역시 없지 않았다. 그러나<br />

대체로 독일 이주자들에게 아메리카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는 가능성<br />

* 이 논문은 2007년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KRF-2007-2-A00834).<br />

1) J. W. Goethe, Den Vereinigten Staaten, in: ders., Werke. Hamburger Ausgabe in 14 Bänden, Bd. 1:<br />

Gedichte und Epen, textkritisch durchgesehen und mit Anmerkungen versehen von Erich Trunz, 6.<br />

Aufl., Hamburg 1962, p.333. 1827년 첼터 Carl Friedrich Zelter에게 보낸 교차운으로 지은 시들<br />

가운데 하나이다(원문: “Amerika, du hast es besser / Als unser Kontinent, das alte, /(…)/ Dich<br />

stört nicht im Innern,/ zu lebendiger Zeit,/ Unnützes Erinnern/ Und vergeblicher Streit.”).<br />

2) Peter J. Brenner, Vom 4. Juli zum 11. September. Die deutschen Intellektuellen und ihr Amerika,<br />

in: Christoph Parry (Hrsg.), Erfahrung der Fremde. Vaasa 2005, pp.135-153, 여기서는 p.139.


19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이 풍부한 ‘꿈의 나라 Traumland’라는 이미지가 주도적 이미지였다. 아울러 19세기<br />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에게 이러한 산업화가 모범<br />

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업화는 전<br />

통의 파괴와 황금만능주의 풍조를 낳았기에 반드시 긍정적 의미만을 갖지 않았다. 그<br />

에 따라 1860년 이래 ‘아메리카화(化)’(=미국화)라는 개념은 독일의 사회와 산업이<br />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관찰되는 잘못된 발전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br />

메리카화란 황금숭배, 물질주의(유물론), 기계화, 대중사회를 뜻했고” 3) 아메리카화<br />

과정을 통해 독일의 영혼이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19세기 후반에 독일의 보수<br />

적 작가들의 공통된 생각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4)<br />

20세기 독일의 ‘근대 die Moderne’에 대한 담론에서 아메리카에 관한 논의는 단순<br />

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아메리카’라고 하면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근대화 과<br />

정의 한 선례였고 ‘근대성 Modernität’ 내지는 ‘자본주의’의 암호이기도 했다. 심지어<br />

아메리카가 유럽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모범으로 통한다는 의미에서 ‘아메리카니즘<br />

Amerikanismus’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유행어로 회자되기도 했다. 아메리카에 대한<br />

공감과 반감이 교차하면서 냉철한 미국적 ‘문명’에 대한 비판, 정신과 문화와 동떨어<br />

진 그 문명에 대한 비판은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성기에 지식인들에게도 매<br />

력을 주었다. 또한 자본주의의 모범생인 아메리카는 독일 작가들의 사회주의 판타지<br />

가 투사되는 평면으로 작용하기 한다. 브레히트의 경우 굳어버린 부르주아 독일 사회<br />

의 반대 이미지로서 ‘아메리카’에 대한 비전을 이미 초기에 엿볼 수 있다.<br />

이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를 얼마나 지루하게 만드는가! 독일은 착하고 평범한 나라이며, 그<br />

안의 창백한 빛깔과 표면들은 아름답다. 그러나 거주하는 자들은 어떠한가! 영락한 농부들<br />

인데, 그들의 조야함은 동화 같은 괴물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야수, 살찐 중산층, 김<br />

빠진 지식인을 낳을 뿐이다! 남은 것은 미국뿐. 5)<br />

3) Fritz Stern, Kulturpessimismus als politische Gefahr. Ein Analyse nationale Ideologie in<br />

Deutschland, München, 1986, p.163.<br />

4) Peter Brenner, 앞의 글, p.9f. 참조.<br />

5) Bertolt Brecht, Tagebücher 1920-1922. Autobiographische Aufzeichnungen 1920-1954, Hrsg. von<br />

Herta Ramthun, Frankfurt a. M. 1975, p.11(1920년 6월 18일자 일기).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199<br />

그러나 브레히트가 여기서 독일의 부르주아 전통에서 느끼는 갑갑함 때문에 미국<br />

을 택하기는 하지만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며, 그의 아메리카 이미지는 반<br />

(反)자본주의적 아메리카 비판으로 발전한다. 당시 독일의 정치적 지형도는 발전에<br />

대해 낙관적이고 진보적인 좌파와 문명 적대적이고 보수적인 우파로 나뉘어 있던 터<br />

라, 우파 진영에서 ‘안티아메리카니즘 Antiamerikanismus’의 파고도 만만치 않았다.<br />

특히 사람들은 예로부터 전승되어온, 유럽과 독일의 문화가 아메리카의 문명보다 우<br />

월하다는 뿌리 깊은 자신감을 버리지 못했다. 이러한 우월감은 곧 문명화 과정에 대<br />

한 저항감으로 이어졌고, 보수적인 문명비판의 코드로 작용하기도 했다.<br />

그러나 문화/문명의 이원론적 입장은 곧바로 보수/진보의 구도를 의미하지는 않는<br />

다. 문화적으로 융성한 시기였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세계대전과 인플레이션을 겪으<br />

면서 정치․경제적으로 좌우의 대립이 격화되고 사회는 불안한 시기였다. 당시 격렬<br />

하게 대립했던 좌우의 정치적 이념은 사람들이 근대화, 민주화, 자본주의적 산업화,<br />

기술, 대중문화 등에 대해 취하는 입장과 태도와 결합되면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br />

된다. 이 때 아메리카의 이미지는 심지어 한 사상가 내에서도 양가적으로 작용하기도<br />

한다. 요컨대 ‘황금만능주의’, ‘물질주의’, ‘기계화’ 및 ‘대중사회’를 의미하던 ‘아메리<br />

카화’ 현상에 대한 독일 지식인들의 반응은 정치적 이념과 맞물리면서 다양하게 전<br />

개된다. 그러나 문화보수주의적 의미에서의 ‘안티아메리카니즘’은 시대가 흐르면서<br />

점차 그 터전을 잃게 된다.<br />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서독에서는 아메리카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br />

가 지배했는데도 안티아메리카니즘의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예를 들어 알프레드 안<br />

데르쉬 Alfred Andersch와 같은 작가를 통해 좌파 지식인들의 안티아메리카적인 입<br />

장이 표출된다. 이는 68 혁명 때까지 이어져 안티아메리카니즘이 이데올로기적으로<br />

파악할 수 있는 복합적인 이념으로까지 발전한다. 이무렵 마르쿠제 Herbert Marcuse와<br />

같은 철학자가 새로운 안티아메리카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주게 된다.<br />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오늘날 그 세계화의 물결<br />

을 주도하는 강대국 아메리카의 이미지는 또다시 이중적으로 읽힌다. 즉 아메리카적<br />

라이프스타일은 한편으로 진보, 합리화, 민주화, 전 지구적 소통 등의 긍정적 함의를<br />

가지면서 기능주의, 사회양극화, 부의 편중, 문화제국주의, 획일화 등의 코드로도 읽<br />

힌다.


20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이런 배경에서 본 연구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독일의 지식인들이 아메리카에 대<br />

해 표상했던 이미지가 어떤 정치적․문화적 코드로 작용했는지 살펴보고 그러한 코<br />

드가 특히 아도르노와 비판이론의 예에서 반영된 모습을 추적하고자 한다. 즉 본 연<br />

구는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하나는 20세기에 들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미국)에 대<br />

해 갖는 태도와 이미지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아메리카니즘’과 ‘안티아메리카니즘’이<br />

대두하는데, 이것이 신즉물주의 시대 당시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서 어떤 정치적․문<br />

화적 코드로 작동했는지 검토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배경을 깔고서 비판이<br />

론의 대표적 사상가인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1903-1969)의 사상을<br />

아메리카에 대해 그가 보이는 양가적인 태도를 중심으로 조명하는 일이다.<br />

Ⅱ.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서 아메리카의 이미지<br />

Ⅱ.1. 근대와 근대의 ‘타자’<br />

오늘날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미국 주<br />

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파죽지세로 진행되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이 세계화<br />

과정이 문화 간 장벽을 허물고 전통의 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인 요소를 제거해주며 개<br />

인의 자유를 신장시켜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br />

편 실제로 그 자유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경쟁의 자유, 자본과 금융 이동의 자유를 의<br />

미할 뿐, 그 개방과 경쟁의 논리 아래에서 일부 강대국에 의해 소수자와 소수 문화의<br />

권리와 다양성이 침탈되고 억압되고 있으며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반론도 만<br />

만치 않다. 정치적 차원에서 고찰할 때 현금의 세계적 동향은 일찍이 아도르노가 미<br />

니마 모랄리아 Minima Moralia에서 진단했듯이 대중사회 속 개인들이 다양화되고<br />

개별화하는 동시에 사회의 총체화가 완성되어가면서 ‘개체화의 원리’가 아이러니하<br />

게 실현되는 경향을 확인시켜 준다. 6) 아메리카니즘을 두고 보자면, 19세기 산업혁명<br />

6) Theodor W. Adorno, Gesammelte Schriften, Bd.4: Minima Moralia, Frankfurt a. M. 2003, p.169(97<br />

번째 단편). 이하 이 책에서의 인용들은 약어 MM과 쪽수로 본문에 직접 표기함. 또한 계몽의<br />

변증법의 다음 구절도 참조: “대중문화는 보편과 특수 사이의 그처럼 모호한 조화를 뽐내는 잘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01<br />

이래 근대화 과정이 선진 산업국들의 주도로 진행되어 온 이래 자본주의적 산업화,<br />

미국화, 사회의 발전과 진보, 민주화가 서로 연관된다는 것은 아메리카니즘에 찬성하<br />

는 편에서나 반대하는 편에서나 모두 인정해온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 벽두에 이<br />

근대화 과정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과연 이 경향들이 모두 합치하는 방향으로, 즉 일<br />

직선적으로 진행되어 왔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br />

최근 독일에서는 역사학뿐만 아니라 문예학에서도 근대성과 근대화 과정의 한계<br />

를 성찰하는 연구와 논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전에 근대성 개념이 윤리적으로 긍정<br />

적인 의미를 띠었고 근대화를 정치적 계몽, 인류의 진보, 사회의 민주화와 동일시하<br />

는 규범적 견해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점차 근대가 역사화하기 시작하면서 20세기<br />

의 역사에서 여러 균열과 차이들 및 역설들을 밝혀내는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br />

그로 인해 근대-반(反)근대, 또는 근대-전(前)근대와 같은 이원론적 도식이 정치적 격<br />

동기였던 20세기와 관련하여 더 이상 학문적으로 통용될 수 없게 된다. 근대성과 그<br />

것의 ‘타자 das Andere’ 사이의 대립은 근대의 생활세계를 역설적인 구조로 지각하게<br />

만들었다. 7)<br />

못을 저지르고 있다. 개체화의 원리(Das Prinzip der Individualität)는 처음부터 모순적인 것이었다.<br />

일단 개체화(Individuation)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자기보존이 계급적 형태로 이루어짐으로<br />

써 모든 사람을 단순한 유적 존재의 단계에 묶이게 되었다. 시민적 성격은 모두, 개인적 편차에도<br />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편차 속에서 똑같이 경쟁사회의 가혹함을 표현했다. 사회를 지탱시켜주<br />

고 있는 개인은 그 사회의 결함(오점)을 지니고 다녔다. 겉보기에 자유로운 듯 보였으나 개인은<br />

그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장치의 산물이었다. (…) 그와 같은 개별화의 모든 진보는 개별성의 이<br />

름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실은 개별성을 희생한 대가로 이루어졌다.”(Theodor W. Adorno,<br />

Gesammelte Schriften, Bd.3: Max Horkheimer/ Th. W. Adorno, Dialektik der Aufklärung, Frankfurt<br />

a. M. 2003, p.154. 이하 이 책에서의 인용들은 약어 DA와 쪽수로 본문에 직접 표기함.) ‘개체화<br />

의 원리’는 서양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제기되어 중세 스콜라철학에서 논쟁의 중심이 된<br />

문제로서, 일반자와 특수자,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일반자가 존재자 속에 들어<br />

있는 본래적인 존재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모든 철학들은 개체화의 원리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br />

다. 말하자면 이러한 학설은 왜 종(種, Art)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많건 적건 반드시 다수<br />

의 개체들 속에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을 인간에 적용하자면 인간은 유적<br />

존재로서 일반자 ― 그것을 인격이라 부르든 인간성이라 부르든 아니면 인간의 존엄이라 부르든<br />

― 를 지니지만 각각의 개인은 특수한 개성을 갖고 다양하게 존재한다. 유적 존재로서의 인격을<br />

공유하면서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화되고 진보한 사회일 것<br />

이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오늘날 후기 산업사회에서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개성을 희생한 대<br />

가로 실현됐다면서 ‘개체화의 원리’가 왜곡된 형태로 이루어진 점, 역사의 부정변증법적 발전을<br />

고발한다.


20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일찍이 알렉시스 드 토크빌 Alexis de Tocqeville이 미국에 대한 인상을 기술할<br />

때 8) 민주주의와 독재가 위험하게 접근하는 측면을 언급했던 것처럼, 분화(分化), 합<br />

리화, 개인화, 교화(문명화, 계몽)라는 근대화를 특징짓는 발전 경향들은 모두 역설적<br />

구조를 갖는다. 즉 그 발전 경향들은 한편으로 개인이 가족, 환경, 전통, 종교, 인종,<br />

‘자연’과 같은 집단적 정체성들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개인의 사회적 자율성을 증대시<br />

키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이 추상적인 새 네트워크들에 종속되는<br />

경향, 그러니까 집단적이지 않더라도 관료, 국가, 법, 정보매체, 교통매체, 테크놀로<br />

지, 노동조직과 같은 개인의 활동공간을 관리하는 심급들에 종속되는 경향을 심화시<br />

켰다. 근대성을 보수주의, 전통, 과거로부터 일직선적으로 일탈하는 과정으로만 볼<br />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반동적 근대주의 reactionary modernism’라는 개념은 바<br />

로 그러한 이원론적 이미지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근대성과 그것의 반대상이 혼합된<br />

형태가 실제로 존재해 왔으며, 여기서 ‘반동적 근대주의’는 근대에 이루어진 기술적<br />

성취들을 이용하면서 반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치와 규범적 문화개념의 우위를<br />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지칭한다. 9)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사람들은 예컨대 에른스트<br />

융거 Ernst Jünger의 초기저작에서 ‘퇴행적 근대화’의 징후를 읽어내기도 했다. 10) 즉<br />

7) 근대성과 그것의 ‘타자’에 대한 이후의 논의에 관해서 필자는 빅토르 오토의 다음의 책을 많이<br />

참조했음을 밝힌다. Viktor Otto, Deutsche Amerika-Bilder. Zu den Intellektuellen-Diskursen um die<br />

Moderne 1900-1950, München 2006, 특히 25f.<br />

8)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전2권, 임효선, 박지동 공역, 한길사 1997 참조. 뒤에 언급<br />

되겠지만,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토크빌이 1831년 5월부터 9개월 반 동안 미국을 여행<br />

하고 돌아와 그 인상을 서술한 이 책은 발표(1835-40)된 이후 사람들이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br />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폭정”의 부정적 현상을 보임에도 불<br />

구하고 전반적으로 미국이 긍정적 의미에서 유럽을 앞서 있다고 진단한다.<br />

9) Jeffrey Herf, Reactionary Modernism. Technology, Culture, and Politics in Weimar and the Third<br />

Reich, Cambridge, N.Y. und Melbourne 1984 참조. 제프리 허프는 “반동적 근대주의는 사회가 산<br />

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결과들에 직면하면서 생겨난 보편적 딜레마에 대한 독일 특유의 반응이<br />

었다”고 본다. 그는 반동적 근대주의가 독일의 민족주의와 결합되어온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것<br />

이 전체주의 권력에 의해 결국 반자본주의 및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된 역사적 과정<br />

을 추적한다. 허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기술이 ‘영혼 없는 아메리카주의’와 분리되면서 경제가<br />

아닌 권위주의적 국가에 복속되고 반계몽적 정신과 결합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술이 자본주의의<br />

발전에 봉사하는 단계를 극복하여 그것을 역사와 사회를 위해 전유하고자 노력한 소련에서의 시<br />

각과 대조적이다(앞의 책, p.217f. 특히 223과 225 참조).<br />

10) Harro Segeberg, Regressive Modernisierung. Kriegserlebnis und Moderne-Kritik in Ernst Jüngers<br />

Frühwerk, in: Wirkendes Wort 39(1989), H.1, März/April 1989, pp.95-111 참조.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03<br />

융거는 ‘급진적인 근대성의 수단을 동원하여 퇴행적 운동을 강화시키는’ 작업을 시도<br />

했다는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근대성과 근대성의 극복, 전근대적 주도상들이<br />

함께 투사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 근대성은 전통<br />

과 공동체적 가치의 해체, 예술의 해체, 소외, 물질주의, 부정적 의미의 자유화와 민<br />

주화, 고삐 풀린 자본주의, 요컨대 문화는 실종된 채 문명만 있으며 기술을 이윤추구<br />

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미국이 첨단에서 이끌고 있는 현상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br />

리고 이러한 현상을 근대화의 부정적 측면으로 보고 민족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대중<br />

의 열망에 불을 지핀 것이 파시즘이다. 이런 점에서 파시즘은 근대화를 총체적으로<br />

부정한 것이 아니고 대안적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전근대적 가치들과 근대<br />

주의를 결합하여 폭발한 셈이다.<br />

그리하여 이 ‘반동적 근대주의’와 유사한 또 다른 개념들로 학계에서는 ‘파시즘적<br />

근대주의’를 비롯해 ‘보수적 혁명’, ‘새로운 민족주의’, ‘파라 근대 Paramoderne’, ‘자<br />

생적 근대성’ 등이 제안되었다. 이들은 모두 ‘또 다른 근대’라고 할 수 있으며 실패한<br />

대안적 근대화의 모델들을 가리킨다. 산업화 이래 200여 년 간 고도로 발달된 목적<br />

합리적 사회체제들이 여러 다양한 정치체제와 결합해 왔다. 그 때문에 산업화 과정과<br />

자유주의적 국가형태 사이의 필연적 연관은 상정할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 민주<br />

화 과정은 근대화의 필수적인 기준으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적 사실은<br />

근대와 근대성이 내포하는 ‘양가성 Ambivalenz’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가성은<br />

개발도상에 있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 뿐만 아니라 첨단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역<br />

사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우 개개인의 자유가 점점 더 증대<br />

하면서 동시에 사회가 총체화해 가는 가운데 개인의 자유가 다시 철회되는 양상을<br />

보여주기 때문이다.<br />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40년대 중반에 이 타자의 현존을<br />

국가사회주의(나치)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이 망명을 갔던 아메리카에서 인지한다. 두<br />

저자는 유럽의 파시즘이 미국적 자본주의가 준비해온 것을 완성했을 뿐이라는 주장<br />

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미국에서 경험적 사실만을 중시하는 실증주의적<br />

과학의 태도와 점차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어가는 문화산업의 체제에 대한 두 저자의<br />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긴 해도 전폭적으로 수긍하기에는 무리한 주장이었다. 왜냐하<br />

면 제3제국과 3, 40년대 미국의 사회체제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을 뿐 아니


20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라 근대화의 추동력으로 표상되었던 미국이 그 이후의 시기에 나치가 1933-45년에<br />

밟게 된 경로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두 저자의 문화비판적이고 사회비판<br />

적인 염세주의의 또 다른 대상으로 떠올랐을 소련이 축소되어 있는 것도 사람들의<br />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한 연구자는 “비판이론이 놓친 점은 ‘진보된 의식’의 권<br />

위주의적 자기이해가 바로 아도르노의 철학이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싶은 담론을 공<br />

유하고 이어받고 있다는 인식이다. 아메리카를 아도르노적 사유의 그늘로 만드는 역<br />

설이 바로 이것이다” 11)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러한 명제는 아도르노의 철학에 대<br />

한 비판으로 의도된 것이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획일화와 총체화로 치닫는 자본<br />

주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외려 아도르노의 사유가 그러한 현실의 경향에 대한 냉철<br />

한 진단에 바탕을 두고 전개된 급진적 비판이었음을 반증해 준다는 점에서 아이러니<br />

하게도 그의 사유가 근본적으로 옳았음을 시사해주는 평가로 읽히기도 한다. 이 점을<br />

주목하여 본 연구자는 ‘근대의 타자’에 대한 성찰이 전개된 양상을 바이마르 공화국<br />

시대 지식인들의 담론에서 잠시 추적한 뒤, 나치 독일과 미국 망명기의 체험이 비판<br />

이론에서 이론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br />

Ⅱ.2. 신즉물주의의 현실과 이데올로기<br />

‘신즉물주의 Neue Sachlichkeit’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는 근<br />

대성이 20세기 전반부에 그 근대성의 반대되는 이미지와 대립되는 모습으로 발전하<br />

지 못하고 오히려 그 근대성의 타자가 근대성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양<br />

상을 보여준다. 신즉물주의는 원래 1920년대부터 흔히 ‘문화적 아메리카니즘’을 뜻하<br />

는 표어로 쓰이게 된다. 그것은 미국화, 합리화, 목적에 대한 신봉, 적나라한 사실, 기<br />

능적 노동에 대한 선호, 직업소명, 유용성 등의 함의를 갖는 시대정신의 명칭이었다.<br />

문제는 이 신즉물주의라는 용어를 이데올로기적 경계 없이 이 시대의 징표로 사용할<br />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과거 독일 문예학에서는 신즉물주의를 좌우의 이데올로기에 귀<br />

속시키는 도식에 비추어 해석하는 관행이 지배했다. 이 시기 문학과 담론에 대한 독<br />

11) Ingo Stöckmann, Vollendetes Verhängnis. Adornos Amerika, in: Weimarer Beiträge 47 (2001), H.<br />

4, pp.525-39, 여기서는 537.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05<br />

일의 중요한 연구자인 헬무트 레텐 Helmut Lethen은 신즉물주의를 아메리카니즘의<br />

의미에서 사회가 우파적인 전체주의로 흐르는 경향에 무감각했던 유행으로 해석했<br />

다. 즉 레텐은 아메리카니즘을 환영하는 신즉물주의가 진부한 문화비판 및 국가의 비<br />

호 하에 득세한 중산층의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대의 태도를 보였음에도 파시<br />

즘으로 흘러가는 실제적인 지배 과정의 경향과는 전혀 모순적 관계에 있지 않았다고<br />

지적한다. 12) 그는 심지어 브레히트, 융거, 헬무트 플레스너, 카를 슈미트, 마리루이제<br />

플라이서 등 출신과 경향이 서로 다른 작가들의 텍스트에서 그간 간과되거나 억압된<br />

공통점을 읽어낸다. 예를 들어 그는 융거의 저작에서 귄터 안더스 Günter Anders,<br />

그리고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이 ‘문화산업’에서 진단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br />

이 서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예단됨으로써 그 진<br />

단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나는<br />

당시 지식인들이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에서 보이는 차이는 단순히 사상될 수 없으며<br />

당대의 정치적 경향과의 연관 또한 괄호로 묶을 수 없다고 본다. 즉 근대화 과정에서<br />

문제시되는 개별 사안에 대해 각 작가와 이론가의 태도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br />

하더라도 중요한 정치적 태도, 특히 파시즘에 대한 태도에서 어느 정도 분명한 선을<br />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br />

한편 신즉물주의 시대의 특기할 또 다른 현상은 긍정적 의미의 ‘새로운 원시성’,<br />

또는 ‘새로운 야만성 neues Barbarentum’ 내지 ‘새로운 야만 neue Barbarei’이라는 개<br />

념들이 출현한 점이다. 이 개념은 적지 않은 문화비판적 목소리들과는 달리 ‘산업화<br />

이전의 순박함’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근대 생활세계에서<br />

잔존하고 있는 전승된 문화보수주의적 이원론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13) 이러<br />

한 자세는 아방가르드, 특히 미래파에서 이미 나타났었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전<br />

통적인 교양 시민적이고 휴머니즘적인 문화, 그에 기반을 둔 자율적 부르주아적 개인<br />

12) Vgl. Helmut Lethen, Neue Sachlichkeit 1924-1932. Studien zur Literatur des “Weissen Sozialismus”,<br />

2. Aufl., Stuttgart 1975(zuerst 1970), p.52.<br />

13) “새로운 야만성”에 관해 벤야민은 경험과 빈곤 (1933)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야만성? 실제로 그<br />

렇다. 우리는 새로운 긍정적인 개념의 야만성을 도입하기 위해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도 그럴<br />

것이 경험의 빈곤이 야만인을 어디로 데려간단 말인가? 경험의 빈곤은 그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br />

하는 데로 이끈다. 새롭게 시작하기, 적은 것으로 견디어내기, 적은 것으로부터 구성하고 이때 좌<br />

도 우도 보지 않기이다”(Benjamin, GS II/1, 215;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5권, p.174).


20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을 표방하는 대신 그것을 청산하여 새 출발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이 ‘20세기의 야만<br />

인’들에게는 새로운 기술문명이 자연스러운 생활공간을 형성했으며, 이 새로운 ‘문화<br />

적’ 야만성의 원천이 진보, 테크놀로지, 도시문화의 선구로 여겨지는 미국임은 자명<br />

하다. 유럽의 아메리카니즘 역시 “비 추상적이고, 비 감상적이며, 긍정적 의미에서 소<br />

박한” 이미지, “젊고, 야만적이고, 조야하고, 의지로 충만한” 이미지를 띠었다. 14) 그<br />

리하여 ‘근대적 야만성’은 아메리카의 이미지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br />

모티프들의 얽힘 관계를 주목하여 나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신즉물주의 시대 지식인<br />

담론에서 기술, 근대성, 문화, 정치에 대해 개진된 성찰들을 선별하여 아메리카의 이<br />

미지와 연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br />

Ⅱ.3.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서 아메리카니즘과 안티아메리카니즘<br />

이들 작가와 사상가들은 서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지님에도 불구하<br />

고 현대의 삶에서 기술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 그로써 전통적인 휴머니즘이<br />

나 그에 바탕을 둔 경험 및 문화비판적 입장, 더 나아가 당시 또 다른 철학 조류였던<br />

‘생의 철학 Lebensphilosophie’적 입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렇지만 역으<br />

로 고찰해보면 이 작가들이 기술과 예술과 삶 사이에 그어진 경계를 극복한다는 공<br />

동의 목표를 추구했다고 해서 정치적 입장까지 공통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차이<br />

가 그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결정적으로 특징짓는다고 볼 수도 있다. 예컨대 융거는<br />

파시즘과 기술을 신화화하고 1차 대전 이후 전쟁의 경험에 대한 냉철한 정치적 성찰<br />

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 경험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기운 반면, 벤야민은 융거와<br />

마찬가지로 테크놀로지를 중시했음에도 그것의 해방적 잠재력을 주목하면서 유물론<br />

과 사회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15) 똑같은 우파라 해도 기술 적대적 입장이 있는가 하<br />

14) Rudolf Kayser, Amerikanismus, in: Vossische Zeitung(1925), Nr.232, 27.9.1925, p.20, Viktor Otto,<br />

앞의 책, p.17에서 재인용.<br />

15) 벤야민은 융거가 편찬한 에세이 모음집 전쟁과 전사들[Ernst Jünger(Hrsg.), Krieg und Krieger,<br />

Berlin: Junker und Dünnhaupt Verlag, 1930]을 서평하면서 우파 보수주의 및 파시즘의 논리를 해<br />

부하기도 한다.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이라는 제목의 이 서평에서 그는 그 책이 담고 있는 융거<br />

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작가들이 데카당스에서 자라나왔음을 스스로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br />

다. 벤야민은 이들 보수 논객들의 정치적 태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07<br />

면, 기술 친화적 입장이 있으며, 이는 좌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br />

이 사상가들 모두가 당시 지배적이었던 아메리카니즘과 안티아메리카니즘에 각기 상<br />

이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br />

그 가운데서 아도르노가 아메리카와 맺고 있는 관계는 그간 연구에서 적지 않게<br />

조명되어왔다. 이 연구들을 통해 결국 아도르노의 사유에는 스스로 해결하거나 매개<br />

하지 못한 모순들이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것은 곧 그가 자신의 초기 주요 저작들,<br />

특히 계몽의 변증법과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진단한 미국의 전체주의적, 실증주<br />

의적, 파시즘적인 경향의 축과 그의 개인적 서신과 강연 및 라디오 강연에서 보여준<br />

망명기 미국체험들 사이의 모순을 말한다. (한편 아도르노 주변의 지식인들 가운데<br />

호르크하이머는 비판이론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두드러지게 반미적 경향에 반대하<br />

는 입장을 보였으며, 그와는 반대로 많은 독일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특히 같은 프랑<br />

크푸르트학파 출신이었던 마르쿠제는 미국에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 특히 서구<br />

의 대중 소비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저서 일차원적 인간에서 - 미국 사회가 독일의<br />

파시즘을 계승했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게 된다.)<br />

그러나 이러한 아도르노의 사유와 그 사유 속의 모순은 후기산업사회인 오늘날 한<br />

층 더 치밀해지고 견고해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맥락에서, 특히 한미 FTA의 국면을<br />

맞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시각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보수와 진<br />

보, 세계화와 반세계화는 이데올로기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선명하게 구별되지 못하고<br />

그 개념들이 담고 있는 의미와 내용에 따라 모순적으로 결합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br />

Ⅲ. 아도르노와 아메리카<br />

Ⅲ.1. 망명 시절의 경험들<br />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론들이 거침없이 전쟁에 전용”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Benjamin,<br />

Gesammelte Schriften. Bd. I-VII, Frankfurt a. M. 1972-1989, Bd.III, p.240. 이하 벤야민의 전집 인<br />

용은 약어 GS와 쪽수로 표기함.) 그 모음집의 저자들은 운명에 복종하는 영웅주의를 숭배하며 전<br />

쟁의 경험을 심미화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전쟁 경험을 심미화하는 것은 그들이 전쟁의 기술적<br />

측면, 즉 물량전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대량으로 죽어가는 모습에서 혼란스럽게 마주치게 되는 그<br />

측면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20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주지하다시피 아도르노는 그보다 100년 앞서 미국을 여행한 토크빌이나 그 뒤의<br />

막스 베버와는 달리 미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을 갖고 ‘자의로’ 미국에 간 것이 아니<br />

었다. 16) 그가 활동했던 ‘사회연구소’가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 것이<br />

고, 그 망명의 과정에서 그는 11년을 미국에서 체재하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br />

지 않으면서 미국 시민권까지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물화와 소외를 비판<br />

하는 유물론적 입장을 바탕에 둔 그의 문화비판적 시각은 다분히 자본주의적 발전의<br />

첨단 국가인 미국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비판의 칼날이 더 날카로워진다. 다른 한편<br />

우리는 아도르노의 그러한 시각이 19세기 이래 독일 지식인 계층에 안착한 안티아메<br />

리카니즘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독일 출신의 유대인<br />

으로서 아도르노는 미국에 망명해 있는 동안 함께 망명해 있던 독일인들과 사상적<br />

교류를 하는 데 치중했으며 미국 사회의 정치 제도와 정치적 동향, 또는 문화적 구조<br />

에 대해 세밀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는 유럽적 의미에서의 시민 사회의 문화적 전<br />

통과는 거리가 먼 문명의 상징인 미국 사회에서 문화적 파시즘의 경향들을 읽어내고,<br />

결국 그러한 경향들을 비판이론적인 자신의 사유에 접목시켜 활용하게 된다. 문화<br />

산업론 에서 주장하듯이 그는 미국이 유럽보다 문화적으로 뒤처진 나라가 아니라 오<br />

히려 유럽이 미국의 문화산업의 선례를 따르게 될 것으로 진단한다. “문화산업의 야<br />

만성은 ‘문화 지체 cultural lag’ 17)의 결과라든가 미국의 의식이 기술의 수준에 못 미<br />

치기 때문이라는 신념은 완전한 착각이다. 문화독점으로 가는 경향을 따라잡지 못한<br />

것은 파시즘 이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유럽이었다”(DA 154).<br />

다른 한편 전쟁에서 패망한 독일로 돌아온 그는 5, 60년대에 자신의 미국 망명기<br />

16) Claus Offe, Theodor W. Adorno. “Kulturindustrie” und andere Ansichten des “Amerikanischen<br />

Jahrhunderts”, in: ders., Selbstbetrachtung aus der Ferne. Tocqueville, Weber und Adorno in den<br />

Vereinigten Staaten. Adornovorlesungen 2003, Frankfurt a. M. 2004, pp.91-120, 여기서는 91. 필자<br />

는 이하 아도르노와 미국의 관계에 관한 서술에서 클라우스 오페의 이 논문을 많이 참조했음을<br />

밝힌다. 나중에 서술되겠지만 오페는 결국 아도르노의 미국 체험이 그의 사상에 양가적으로 작용<br />

했고 모순으로 남았음을 드러내고자 했다.<br />

17) 미국의 사회학자 W. F. 오그번이 사회변동론에서 주장한 이론으로서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문<br />

화와 비교적 완만하게 변하는 비 물질문화 간에 변동 속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부조화를<br />

가리킨다. 통상 물질적인 영역에서의 변화가 앞서기 때문에 정치․경제․종교․윤리․행동양식<br />

등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도나 가치관의 변화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비<br />

물질문화가 물질문화의 변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심각한 사회적 부조화 현상이 야기된다.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09<br />

의 경험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순적 언술들을 전개한다. 그 긍정적 평가들은<br />

‘민주주의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하지만 그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미국의 민<br />

주주의는 정치제도나 문화 영역에서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그 긍정적 평가는 대부<br />

분 개인적 체험에서 얻은 미국인들에 대한 인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연구자들<br />

이 아무런 위계와 신분상의 차이 없이 자유로이 협동하는 모습에서 얻은 긍정적 이<br />

미지가 두드러진다. 거기에는 유럽의 문화적 전통이 유지해온 개인주의와 ‘야만적’<br />

기술문명에 대한 적대와 회의, 나아가 근대화 과정 전체에 대한 보수 진영 시민사회<br />

의 적대적 분위기에 대한 그의 반감이 많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는<br />

‘미소를 잃지 말라 keep smiling’는 격률을 실천하는 일상의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진<br />

정으로 인간적인 측면을 보기도 한다.<br />

그럼에도 그의 사유에는 대중보다는 개인, 기술보다는 예술, 현실정치보다는 미학<br />

에서 진정한 것을 찾는 엘리트주의적이고 모더니스트적인 요소가 다분히 작용하고<br />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벤야민과 차이를 보인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br />

대의 예술작품 에서 보여주듯이 당시 채플린과 미키마우스로 대변되는 미국 영화에<br />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물론 영화자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아도르노와 공통되<br />

지만, 벤야민은 초기 러시아 무성영화 못지않게 미국의 영화들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br />

다. 18) 그것은 그가 영화산업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br />

불구하고 모더니티 이래 기술화와 문명화가 개인과 사회 전체에 몰고 온 위기에 대<br />

해 똑같은 기술화의 상징인 영화가 수행할 수 있는 예방적이고 심리치료적인 효과를<br />

중시했기 때문이다. 19) 그래서 그는 미국의 괴기영화들이 “기술과 벌이는 거리낌 없<br />

는 유희”와 실험이 갖는 진보적 측면을 주목했던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영화관에서<br />

터져 나오는 웃음이 사회의 지배적 권력에 투항하는 부르주아의 사디즘적 웃음이라<br />

고 보는 아도르노의 해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0) 벤야민은 아도르노와 파시즘의<br />

18) “미국의 괴기영화들이나 디즈니의 영화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심리 치료적 의미에서 폭파시키는<br />

효과를 가져온다”(Benjamin, GS VII/1, 377).<br />

19) Benjamin, 같은 곳. 아울러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2권, p.85 참조.<br />

20) “영화관의 관객들이 터뜨리는 웃음은, 내가 이미 막스(=호르크하이머)와 얘기했고 그가 귀하에게<br />

틀림없이 이야기했을 테지만 결코 선하고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열악한 부르주아적 사디즘<br />

으로 가득 찬 웃음입니다”(Benjamin, GS I/3, 1003: 벤야민에게 보낸 1936년 3월 18일자 아도르노<br />

의 장문의 편지, 발터 벤야민 선집, 2권, p.29 참조). 또한 DA 163 참조.


21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위협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아도르노가 진지한 예술(고급예술)<br />

과 가벼운 예술(저급예술), 시민문화와 대중문화의 이원론을 자신의 사유의 추동력으<br />

로 삼았던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당시 추상화와 대중문화 비판으로 치닫<br />

는 고급예술의 경향을 경고하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21) 이 점에서 똑같은 아방<br />

가르드 미학을 표방하면서 두 사상가의 입장은 미묘하면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준<br />

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벤야민의 기술 긍정적 태도는 결코 자본주의 체제,<br />

진보, 기술화 등을 맹목적으로 긍정하는 아메리카니즘이 아님은 분명하며, 아도르노<br />

의 태도 역시 기술적대적인 엘리트주의로 환원시킬 수 없다.<br />

아도르노는 미국에 1938년 2월부터 1949년 11월까지 11년간 체류했으며 연구를<br />

위해 ‘자의로’ 미국에 간 것은 독일에 귀국한 뒤 얼마 후 1952-53년이었다. 그 뒤 그<br />

는 미국에 가지 않았다. 11년간의 망명생활에서 그는 휴가차 몇 군데 경관이 좋은 곳<br />

을 여행을 한 것 이외에 줄곧 뉴욕(1938-41)과 로스앤젤레스(1942-49)에 머물렀다. 같<br />

은 지식인이면서 토크빌이나 베버와 달리 아도르노의 경우 미국의 문화나 사회상황<br />

에 대한 지적 관심은 제한되어 있었고 선별적이었다. 그는 미국에 대해 탐구하기 위<br />

해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연구 활동을 펼쳤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는 미<br />

국의 생활환경을 알게 되었다. 40년대 이래 그의 저술에서 미국의 일상에서 사용하<br />

는 어휘와 어법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우선 미국은 아도르노에게 “내가 구제되었<br />

던 나라” 22)였으며, 그는 미국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생존을 가능케 해준 나라로 기억<br />

하며 늘 미국에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망명자로서의 고달픈 운<br />

명의 경험을 여러 글에서 털어놓고 있으며, 특히 그 경험은 미니마 모랄리아 ― 손<br />

상된 삶으로부터의 성찰들에서 서술하는 경험의 배경을 이룬다. 그는 1943년 미국<br />

시민권을 취득하지만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적은 없다.<br />

미국에 가기 전 영국의 옥스퍼드에 잠시 체재한 기간에도 아도르노는 그곳 생활에<br />

적응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과 고독한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여기에 모국어인 독일<br />

21) Benjamin, GS VI/1, 499f. [K 3a, 1] 참조.<br />

22) Adorno, Auf die Frage: Was ist deutsch(1965), Gesammelte Schriften, Bd.10.2, 698. 이 논문은<br />

1965년 5월 9일 “도이칠란트풍크 Deutschlandfunk”에서 방송된 강연문이다. 이하 아도르노의 텍<br />

스트를 전집(Gesammelte Schriften)에서 인용할 때 텍스트의 생성연도를 명기하고, 약어 GS 뒤에<br />

권수와 쪽수로 표기한다.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11<br />

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 그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더 결정<br />

적인 것은 10여 년이 지나면서도 감소되지 않은, 유럽의 교양시민 출신의 지식인이<br />

미국의 일상에 적응하면서 받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는 “영화를 보러 가서 돌아<br />

올 때마다 나는 아무리 깨어 있어도 아둔함과 열패감에 휩싸여 영화관을 나왔<br />

다”(MM 26, 5번째 단편)고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적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책은<br />

그가 미국의 일상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철학적 성찰들을 담고 있다. 이 책과 그<br />

이전에 쓰인 계몽의 변증법의 문화산업론 에서 그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띠는 미<br />

국의 사회 상태 및 문화산업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성격들을 서술하면서 그에 대해<br />

어떤 구원이나 화해를 위한 이론적 연결점을 찾지 못한 채 “존재하는 것의 위<br />

력”(MM 26)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철학적 절망을 곳곳에서 표현하고 있다.<br />

당시 독일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고, 미국에서도 반유대주의<br />

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 절망과 경악이 더해지게 된다. 이러한<br />

절망은 그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던 누구든<br />

운명처럼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아도르노는 사회연구소 멤버들인 호르<br />

크하이머, 레오 뢰벤탈, 프리드리히 폴로크 등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연구와 직업<br />

활동을 펼친다. 다른 한편 그는 유럽에서 온 이주자들과도 비슷한 운명을 겪는 처지<br />

에서 소통을 하며 지낸다. 더욱이 그 이민자들 가운데에는 그의 지적 작업과 연관하<br />

여 주목할 만한 작가들이 여럿 있었는데, 토마스 만, 하인리히 만, 프리츠 랑, 루트비<br />

히 마르쿠제, 한스 아이슬러,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놀드 쇤베르크, 이고르 스트라빈<br />

스키, 폴로크, 알프레드 되블린, 펠릭스 바일 등이 그들이다. 그는 이들 중 몇 사람과<br />

는 소통뿐만 아니라 협동 작업도 했지만, 미국의 사회나 정치 상황, 또는 특별한 문<br />

화적, 지적 산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테면 미국 내 흑인<br />

들의 상황, 뉴딜 정책을 통해 경제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40년대 미국의<br />

도시, 산업, 인구 동향, 미국의 2차 대전 참전, 그밖에 미국의 사법, 노동조합, 복지단<br />

체 및 미국의 종교생활 등 사회이론가로서의 그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들이 많이 있<br />

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관심했다. 그는 또한 당시 미국의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철<br />

학적, 사회과학적 연구결과들이나 음악, 영화, 건축 등에서 이룩된 성과들에 대해서<br />

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보인 것들은 그것이 당시 집필하던 문화<br />

산업론 과 관련하여 증거자료로서 선별하여 수집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들이 대


21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부분이었다. 또한 그는 미국의 철학계에 일던 실용주의 조류와 같은 것은 기껏해야<br />

희화화의 대상으로 여겼다.<br />

그러나 이러한 무관심이나 도를 넘는 것 같은 혹독한 평결들은 그가 처한 개인적<br />

고립과 불안에 대한 반영이라고 치부할 수 없고, 처음부터 견지해온 반실증주의적 경<br />

험개념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바로 자신의 이러한 경험개념을 바<br />

탕에 두고 “지식인과 연구기술자”를 구별하며, 23) 또한 그와 관련하여 자신의 지적 작<br />

업을 “경험주의적 조작에 맞서 경험을 복원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24)<br />

이러한 경험의 복원작업은 특히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철저하고 섬세하게 이루어지<br />

고 있다. 그가 여기서 서술한 경험들은 “생산적인 이론적 인식은 그 인식의 자료들과<br />

의 내밀한 접촉을 통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원칙과 신념을 예증하는 경험들<br />

이라고 할 수 있다. 25) 이처럼 일상적 경험의 파편에서 그 경험을 낳은 세계 전체의 총<br />

체성을 읽어내는 것은 아도르노 특유의 시각인데, 바로 그러한 경험을 가능케 한<br />

것은 미국이었다고 그는 말년에 쓴 긴 에세이 미국에서의 학문적 경험들<br />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1968)에서 고백한다.<br />

Ⅲ.2. 부정적 아메리카 이미지 ― 가장 진보한 나라로서의 미국<br />

문제는 이렇게 총체화된 사회로서의 미국을 특징짓는 것이 최첨단의 산업자본주<br />

의, 교환사회, ‘현혹관계’, ‘관리된 세계’라는 점이다. “도가니는 고삐 풀린 산업자본<br />

주의의 한 기구이다. 그 도가니 속으로 빠진다는 생각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고통의<br />

죽음이지 행여 민주주의가 아니다”(MM 116, 66번째 단편). 한 연구자는 “이러한 문<br />

장들이 갖는 진리가치는 그 문장들이 지닌 명제로서의 내용이 아니라 언어 제스처의<br />

노골적인 표현력에 바탕을 두며, 그러한 표현력을 갖고 하나의 경험이 언어화될 권리<br />

를 얻는다”고 평하면서, 그 근거로서 “오늘날 과장만이 진리의 매체라는 격률을 따른<br />

다” 26)는 아도르노의 언술을 인용한다. 27) 우리가 과장이 없이는 이질적인 개별적 경<br />

23)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1968), GS 10.2, 715.<br />

24)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38.<br />

25) Adorno, 앞의 글, 같은 곳.<br />

26) Adorno, Was bedeutet: 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1959), GS 10.2, 567. 이 글은 1959년 가을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13<br />

험들만 얻을 뿐 이론적 인식을 얻기 어렵지만, 다른 한편 그러한 과장이 바로 이론의<br />

결핍된 부분들을 은폐 내지 왜곡하는 악덕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br />

한다면, 아도르노의 이론적 작업은 바로 이 이론에 필수적인 과장과 그것의 오점인<br />

은폐의 견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은폐의<br />

측면을 아도르노가 당시 자신이 처했던 세계사적 상황에 대한 반응들에서 엿볼 수<br />

있다. 그는 한편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미국의 문화적 상황과 불행의 조짐들을 누<br />

구보다 날카롭게 감지하고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 당대의 경제적 상황, 군사적 사건<br />

들(이를 테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 투하)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으<br />

며, 미국 내 정부정책(이를 테면 매카시즘)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호르<br />

크하이머도 마찬가지인데, 점점 더 자제하면서 조심하는 이들의 어조는 당시 자본주<br />

의와 제국주의적 경향에 대해 마르쿠제가 보인 과격한 입장과 확연하게 대비된다. 그<br />

들은 한편으로 전체주의적 경향을 띠는 독점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표현을<br />

고수하면서, 다른 한편 이러한 개념어를 계몽의 변증법의 까다로운 맥락 이외에서<br />

는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28) 이렇게 조심하는 태도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br />

아도르노는 40년대 말 당시 이미 독일로 귀국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귀국을 앞<br />

두고 미국에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극도로 피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한스<br />

아이슬러 Hanns Eisler와 공동으로 작업한 영화를 위한 작곡 Komposition für den<br />

Film이 1947년 뉴욕에서 영어로 출판될 때 그 당시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린 아이슬<br />

러가 단독 저자로 명기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그들이 방해할지도 모를<br />

모든 것이 두려웠다”고 술회한다. 29)<br />

“기독교와 유대교의 협력을 위한 협의체 Koordinierungsrat für Christlich-Jüdische Zusammenarbeit”<br />

에서 행한 강연이다.<br />

27) Vgl. Claus Offe, 앞의 글, 98.<br />

28) 이렇게 조심하는 태도는 아도르노뿐만 아니라 사회연구소가 나치를 피해 스위스와 영국을 거쳐<br />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연구소가 취한 방침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심성은 당시 정황을 보면 어느<br />

정도 납득할 수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때로는 연구소 내부에서 지나친 내부검열로 이어져 왜<br />

곡을 낳기도 했기에 역사적 평가는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왜곡의 사례로 벤야민의<br />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이 사회연구지에 실릴 때 편집 과정에서 연구소 측에 의해 이루어<br />

진 자의적 수정 작업을 들 수 있다. 발터 벤야민 선집, 2권, p.19f. 참조.<br />

29) Adorno, Zum Erstdruck der Originalfassung(1969), GS 15, 144. 이 책의 초판: Hanns Eisler,<br />

Composing for the Films, N.Y.: Oxford University Press, 1947.


21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아도르노가 미국에서 얻은 통찰과 신념들 가운데 당시 유럽의 현실을 이해할 수<br />

있는 핵심적인 열쇠로 입증될 수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을 방문했던 세대 가<br />

운데 40년대에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처럼 충격적인 미국 현실에 맨 몸으로 부딪쳤던<br />

세대는 없었다. 이들은 스스로 든든히 기댈 긍정적인 유럽적 정체성이라든지, 미국에<br />

비해 “정신의 절대적 중요성이 자명했던” 교양시민적이고 문화귀족주의적인 배경을<br />

더는 주장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유럽에는 야만이 발호하고 있었고, 그 야만<br />

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그들이 제아무리 미국의 자본주의와 문화산업을 비판한다고<br />

하더라도, 자신들이 총탄을 피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곳으로서 선호할 수 있는<br />

곳이 미국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도르노는 미국을<br />

“옛 유럽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제적 휴머니티의 잠재력”이 살아 있는 나라<br />

로 기술한다. 30) 유럽적 정체성이 이처럼 상처를 받은 데다 아도르노에게는 또 다른<br />

상처가 더해지는데, 즉 미국 현실에서 읽어낸, “전체주의적 지배형태로 전도될 위험<br />

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31) 경향들, 미니마 모랄리아와 계몽의 변증법에서 기술<br />

한 그 파국적인 경향들이, 유럽에 비해 가장 진보한 미국에서 유럽으로 번질지도 모<br />

른다는 우려가 그것이다.<br />

미국에 살면서 가까이에서 관찰한 문화생활들, 이를 테면 라디오, 재즈, 영화, 일<br />

간지의 점성술, 잡지, 스포츠, 실증주의적 사회연구 ― 이른바 “행정적 리서치<br />

administrative research” 32) ― 와 같은 것들을 통해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함께<br />

나중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사회비판적 이론들을 펼치게 된다. 사회에 대한 이러<br />

한 비판적 진단은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천명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경향에 대한<br />

공식들, 즉 경쟁의 자본주의에서 독점 자본주의로의 발전, 그와 병행하여 자유주의적<br />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적 국가” 33)로의 발전이라는 공식을 보완하게 되는데, 그것은<br />

자율적인 시민문화에서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으로의 발전이다. 이로써 사회분석의 사<br />

회심리학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에 따르면 스탈린주의적 사회와 파시즘적<br />

30)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35.<br />

31) Adorno, 앞의 글, 같은 곳.<br />

32) Adorno, 앞의 글, 707.<br />

33) Vgl. Max Horkheimer, Autoritärer Staat, in: Horkheimer, Gesammelte Schriften, 19 Bde, Hrsg. von<br />

Alfred Schmidt und Gunzelin Schmid Noerr, Frankfurt a. M.: Fischer Taschenbuch Verlag 1985-88,<br />

Bd.5: Dialektik der Aufklärung und Schriften 1940-1950, pp.293ff.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15<br />

사회를 비롯해 명목상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이 단절 없이 ‘전체주의적’으로 통합<br />

되는 현상이 모두 똑같이 문화적 재생산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br />

한 사회들은 현존하는 것을 선전함으로써 스스로 공고(鞏固)하게 되며, 34) 그와 동시<br />

에 인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저항력이 없는 취약한 자아를 가진 유형의 사람들, 그러<br />

한 선전에 무력하게 노출된 그런 사람들이 사회구조적으로 지배적 세력이 된다. 이러<br />

한 사회구조적 차원을 비판이론은 권위와 가족에 대한 연구 라든지 권위주의적 인<br />

격에 대한 연구 에서 탐구하고 있다. “문화산업은 홍보활동 public relations으로 넘어<br />

가고, 특정한 회사나 제품을 고려할 필요 없이 어떤 순수한 호의(好意)를 만들어 내<br />

는 일로 바뀐다. 일반적인, 무비판적인 동의가 강매되며, 각각의 문화산업의 산물은,<br />

그것이 그 자체의 광고가 되듯이, 세상을 광고하게 된다.” 35) 더욱이 이러한 미국적<br />

경험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이용된다. 여기(캘리포니아)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br />

고 있는 것이 아직까지 ‘낙후된’ 유럽에 곧 닥칠 것이라는 예측이 그것이다. 1831-32<br />

년에 미국을 여행했던 토크빌에게 자율성을 방어하는 매체였던 것, 즉 클럽, 교회, 연<br />

합체들의 시민 사회적 구조들이 비판이론가들의 시각에서 볼 때 체제 순응적 통제의<br />

중개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형식적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누구도<br />

자신의 생각에 대해 공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사람들은 일찍부터 사회<br />

적 통제의 가장 민감한 도구인 교회라든지 클럽이라든지 직업별 단체라든지 그 밖의<br />

관계들의 체계에 소속된다”(DA 172).<br />

이것이 미국에서의 경험에서 형성된 진보된 사회에 대한 진단이다. 이러한 진단은<br />

자연지배가 진전되어 이루어지는 생산력 발전과 그 생산력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생<br />

산관계의 모순적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기본 공리를 수정하게끔 만든다. 고전<br />

적인 역사적 유물론의 낙관주의적인 공리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에서 진보가 광범위<br />

하게 이루어짐으로써 불필요한 억압이 줄어들고 인간 해방이 촉진되는 방향으로 발<br />

34) Aodrno, Résumé über Kulturindustrie(1963), GS 10.1, 337-345. “문화산업이 세뇌시키는 질서의 개<br />

념들은 기껏해야 기존 상태 status quo의 질서 개념들일 뿐이다. (……) 문화산업의 정언명법(定言<br />

命法)은 칸트의 정언명법과는 달리 자유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그것은 어디에 복속(服屬)하<br />

라는 언급이 없는 ‘너는 복속하라’는 명령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있는 것, 그것의 권세와 편재<br />

성에 대한 반영으로서 누구나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복속하라는 뜻이다. 적응이 문화산업의 이데<br />

올로기의 힘으로 의식의 자리에 들어선다”(p.343).<br />

35) Aodrno, Résumé über Kulturindustrie, GS 10.1, 339.


21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전하게 된다. 그것은 물질적인 결핍뿐만이 아니라 생산관계와 정치적 지배관계에 의<br />

해 규정된 부자유가 극복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계몽과 진보는 외적인 자연을<br />

점점 더 잘 통제하게 되고 사회적 권력을 경제조직의 필요성을 근거로 그 권력의 정<br />

당성이라는 척도에서 비판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인간의 이성이 지닌 이 두 잠재력<br />

이 역동적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킴으로써 그 결과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자<br />

유로운 “연합 Assoziation” 36)이 가능해지고 그것이 “공장노동의 압제”가 지배하던 자<br />

리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역동적 발전은 아도르노가 보기에 정지되었다.<br />

자연의 강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사회적 권력과 통제를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승<br />

시키게 된 것이다.<br />

오늘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이탈된 상태는 사회적 진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경제<br />

적인 생산성의 증가는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지만 다른 한<br />

편 기술 장치와 이를 운용하는 집단으로 하여금 국민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엄청난 우월성<br />

을 갖도록 해준다. 개인은 경제적 세력 앞에서 완전히 무력화된다. 이 세력은 자연에 대한<br />

사회의 폭력을 일찍이 예견하지 못한 정도로까지 밀고나간다. 개인은 그가 사용하는 기술<br />

장치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그 대가로 이 장치에 의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br />

을 제공받는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대중에게 분배되는 재화의 양이 증가할수록 대중<br />

의 무기력과 조종 가능성은 더 커진다.(DA 14f.).<br />

이처럼 두 저자는 인간이 자연의 힘으로부터 해방될수록 인간에 대한 체제의 힘이<br />

증가하는 부조리한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계몽의 부정변증법적 발전을 고발한다. 즉,<br />

“자연의 폭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매 걸음마다 인간에 대한 체계의 폭력이 점점 커<br />

져가는 부조리한 상황이 이성적 사회의 이성을 진부한 것으로 비난한다”는 것이 그<br />

들이 내리는 당대의 문명사적 발전경향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다(DA 56).<br />

아도르노는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파시즘이 보편적 경향이라는 점, 미국은 파<br />

시즘의 주요한 요소들을 넘겨받을 수밖에 없게 되리라는 점, 자신은 여기(미국)에서<br />

파시즘의 위험을 지극히 심각하게 여긴다며 거듭 자신의 신념을 밝힌다. 1945년의<br />

36)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I권, 최인호 외 옮김, 박종철출판사, 1994(1판 4쇄),<br />

p.421.(공산주의 선언); 또한, 저작 선집, 제III권, p.11.(칼 맑스: 국제노동자 협회 발기문 1864.<br />

9.28.)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17<br />

편지에서는 현재 앞으로 분명해질 것으로 보이는 냉전 상황의 조건 아래에서 미국의<br />

자본주의가 파시즘적 방향으로 밀고 나가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37) 이처럼 미국<br />

의 현실은 아도르노에게 미국뿐만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 사회들 전체와 관련되는 전<br />

범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작용한다. 그는 자신의 미국 체재를 “가장 앞선 관찰자의 위<br />

치 die fortgeschrittenste Beobachtungsposition” 38)에서 미국의 발전 경향을 포착할 수<br />

있는 기회로 파악하는데, 여타의 세계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그 발전 경향은 ‘진보의<br />

파괴성’, ‘이성의 야누스적 얼굴’, ‘대중기만으로서의 계몽’으로 특징지어진다. 1968<br />

년에 미국생활을 회고할 때에도 아도르노는 유럽이 이러한 미국의 경향을 뒤따라간<br />

다는 확신을 드러내고 있다.<br />

물화된 의식은 결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적 경향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br />

다만 그것을 나는 미국에 가서야 처음으로 의식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한 정신이 형성되<br />

는 측면에서도 유럽은 경제적-기술적 발전에서 보조를 맞추면서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그<br />

사이 미국에서는 이러한 징후가 보편적 의식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39)<br />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은 호르크하이머를 비롯한 비판이론의 대표자들에게 이러한<br />

인식을 얻을 수 있는 특권적 위치로 보였고, 그들은 이러한 특권적 위치에서 미국뿐<br />

만이 아니라 현대화된 서구 전체의 구조와 경향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br />

리하여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은 “기술의 진보가 절정에 달한 시대에 가공할 야<br />

만상태가 빚어진 현대는 어떠한 시대이며 인류는 어떻게 이러한 지경에까지 오게 되<br />

었는가”를(DA 11) 해명하기 위해 부심하게 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두 저자가 분석<br />

해야할 것은 특히 당대 지식인들이 겪은 정치적 실망의 경험으로서, 곧 “서구에서 일<br />

어나지 않고 잠들어 버린 혁명, 소비에트 러시아를 지배한 스탈린주의, 독일에서의<br />

파시즘의 승리에 대한 정치적 실망”이라는 세 가지 문제였다. 40) 미국이 이러한 물음<br />

37) Adorno, Briefe an die Eltern, 65.<br />

38)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36. 여기서 ‘가장 앞선 관찰자의 위<br />

치’는 미국이 나중에 미국화될 유럽을 부정적 의미에서 앞서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19세<br />

기에 토크빌이 긍정적 의미에서 미국이 유럽보다 앞서 있다고 진단한 것과는 대조된다.<br />

39)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12.<br />

40) Jürgen Habermas, Der philosophische Diskurs der Moderne. Zwölf Vorlesungen, Frankfurt a. M.<br />

1985, 141.


21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들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관찰자적 위치에 실제로 적합하다는 확신은 미국이 기술적-<br />

산업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유럽에 비해 우월하다는 인상에 바탕을 둔다. 그렇지만<br />

이러한 확신은 오늘날 되돌아볼 때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위의 세 가지 실망 가운<br />

데 두 가지, 즉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는 미국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br />

그럼에도 아도르노는 미국에서 체재할 때만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뒤에 쓴<br />

글들에서도 앞서 언급한 입장을 견지한다.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유럽의 미래를 바<br />

라보는 시각인 것이다.<br />

아도르노는 미국이 옛 대륙인 유럽을 쫓아가기보다 오히려 유럽이 자신의 발전과<br />

정의 중력 때문에 미국의 조건들에 동화된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는 계급의<br />

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계급 갈등이 중단된 상태라고 본다. 미국은 그밖에도 청년<br />

문화나 세대 간 갈등에서도 선구적이며, 이것은 대학문화, 학생과 교수 간의 관계에<br />

도 해당한다.<br />

대학교수에 대한 관계에서도 구조적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과정들이 이 나<br />

라(=독일)에서보다 더 현저하게 진행되는 미국에서 이미 그랬듯이 교수는 점차, 하지만 내<br />

가 생각하기로 막을 도리가 없이, 지식을 판매하는 자가 되는데, 그 지식을 자기 자신의 물<br />

질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는 법을 더 잘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약간의 동정을 받는다.<br />

이 점에서 부덴브로크가(家)의 사람들에 나오듯이 친애하는 신과 같은 교사라는 관념에<br />

비해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이 계몽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정신이 그<br />

와 같은 목적합리성을 통해 교환가치로 축소되며, 이것은 현존하는 것 내부에서 모든 진보<br />

가 그런 것처럼 문제성이 있다. 41)<br />

또한 문화산업과 관련해서 아도르노는 이미 지적했듯이 미국의 의식이 기술의 수<br />

준을 따라가지 못해서 문화산업의 야만적 상태가 빚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환상으로<br />

치부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화독점으로 가는 경향을 따라잡지 못하고 낙후된 것은<br />

파시즘 이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유럽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의 현대화 과정에서<br />

진보된 세계에 대한 비판의 요체는 부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평등 개념에 들어 있다.<br />

미국 사회에서 읽어낼 수 있는 시대의 징표는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동화과정으로<br />

41) Adorno, Tabus über den Lehrberuf(1965), GS 10.2, 662.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19<br />

서, 그 과정에서 일탈하는 자들에게 비관용적인 분위기로 이해된다. 극단적인 경우에<br />

는 ‘차이’를 폭력적으로 없애는 경향이 등장한다. “미국에 오면 모든 장소가 똑같아<br />

보인다. 기술과 독점자본의 산물인 이러한 표준화 과정은 사람들 사이에 불안을 조장<br />

한다. 사람들은 진보해가는 합리성이 질적인 차이들을 방법에서 절멸시키듯이 그 차<br />

이들이 실제로 삶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2) 문화산업론 에서도 아도르노<br />

는 이러한 기존 질서에 합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주체들에게서 주체성을 박탈<br />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토크빌의 말을 인용한다.<br />

사적인 문화독점 아래에서 ‘폭군체제는 육체를 자유롭게 놓아두는 대신 곧바로 영혼을 공<br />

략한다. 지배자는 이제 더 이상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순응하지 않는 자는 경제적으로 무력해지며 이 무력감은 괴짜로 낙인찍힌 자의 정신<br />

적 무력감으로 이어진다.(DA 155). 43)<br />

이러한 상황에서 차이들은 허용되지만 그것은 가상일 따름이고 그러한 현상은 사<br />

회체제의 기능으로 작용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이비 개성들, 그때그때 전시되는<br />

개인이 반항적인 과묵함을 보여주는 것이나 아니면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들<br />

을 아도르노는 대량생산된 산물들로서 모두 다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서로 차이가<br />

날 뿐인 “예일 자물통 Yale lock”에 비유한다(DA 177). 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해 대<br />

체 가능하며, 심지어 이러한 상품교환의 원칙 자체도 유보된 듯한 논리가 문화산업을<br />

더욱 총체적인 논리로 만들게 된다.<br />

42) Adorno, Amorbach(1966), GS 10.1, 304.<br />

43) 문화산업론 에서 토크빌은 다음에서 인용되어 있다. A. de Tocqeville, De la Démocratie en<br />

Amérique, Paris 1864. Band II, p. 151. 한국어판에서 해당 구절은, 토크빌, 앞의 책, 제1권, p.342<br />

참조(필자는 이 판본의 번역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약간 다듬었음). 토크빌은 이 15장: “합중국에<br />

있어서 다수의 무제한한 권력과 그 결과”에서 다수의 권력이 미국의 민주공화제에서 실제적으로<br />

는 폭정의 형태로 행사됨으로써 결국 “미국만큼 사상과 언론의 진정한 자유가 결여된 나라도 없<br />

다”(p.341)는 비판적 진단을 내리는데, 아도르노는 토크빌이 관찰한 다수에 의한 폭정이 바로 문<br />

화산업의 체제에서 행사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22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문화적 산물들이 전반적으로 상품의 영역으로 흡수되는 상황에서 라디오는 자신의 문화적<br />

산물들을 상품으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포기한다. 미국에서 라디오는 시청자로부터<br />

시청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라디오는 아무런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은 중립<br />

적인 권위라는 기만적 형태를 취하는데, 이것은 파시즘에 안성맞춤이다.(DA 182).<br />

한편 문화산업의 과학주의적 지류는 아도르노에게는 ‘사회연구 social research’라<br />

불리는 정량적인 경험적 사회연구인데, 이것의 방법은 ‘질적’이라고 불리는 차이들을<br />

도외시할 것을 강제한다. “이미 그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소재들과 획득된 본래의 인<br />

식 사이의 불균형은 단순한 잘못된 발전의 산물로서 심지어 ‘아메리카니즘’의 산물이<br />

라고 할 수 있다. 이 아메리카니즘의 징후들은 그것들이 미국에서 번성한다는 한 가<br />

지 이유 때문에 관철되고 있다.” 44) 경험적 사회연구가 미국에서 만연하는 현상은 미<br />

국 사회의 실용주의 경향과 맞물려 있으며, 그리하여 그러한 연구가 시장에 대한 연<br />

구에서 생겨나고, 더 나아가 그 기법들이 상업적이거나 행정적인 목적에 맞추어져 있<br />

다는 것은 연구 경향에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사람들이 그<br />

러한 사회연구를 통해 ‘교양적 지식 Bildungswissen’이 아니라 ‘지배의 지식<br />

Herrschaftswissen’을 취득한다고 주장한다. 45) 문화산업과 이 문화산업을 위해 봉사하<br />

는 응용된 정량적 사회연구가 가져오는 결과를 아도르노는 ‘얼치기 교양 Halbbildung’<br />

이라는 개념으로 특징짓는다. 그런데 이 개념은 이미 계몽의 변증법을 비롯해 40<br />

년대에 쓴 글들에 등장하고 있으며 1959년의 강연에서 깊이 있게 논구되고 있다. 46)<br />

여하튼 한 연구자가 특징지었듯이 아도르노에게 미국은 그의 “텍스트를 생성시키는<br />

원리”로 작용한다고 해석될 수 있을 정도로 학문을 비롯해 문화 전반의 역사적 발전<br />

경향을 진단하는 데 중요한 지표의 역할을 한다. 47)<br />

44) Adorno, Teamwork in der Sozialforschung(1957), GS 8, 494.<br />

45) Vgl. Adorno, Zur gegenwärtigen Stellung der empirischen Sozialforschung(1952), GS 8, 491.<br />

46) Adorno, Theorie der Halbbildung(1959), GS 8, 93-121.<br />

47) 슈퇴크만은 이러한 경향이 자기모순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음을 읽어내며 비판적으로 본다. “미국<br />

이 아도르노적 사유의 중요한 추동력이 생겨날 수 있게 된 중심적인 체험의 연관이라면, 미국은<br />

그의 텍스트들을 식별하는 일을 매우 쉽게 만들어주며 늘 똑같은 것 ― 등가성의 강박의 지배,<br />

차이의 절멸, 사물들을 교환을 위해 처리하는 일 등 ― 의 서사로서 펼치는 혼동할 수 없는 어조<br />

를 만들어낸 텍스트를 생성신키는 원리 Textgenerierungsprinzip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보<br />

편사적 추상화 과정을 자신의 정보에 따라 ‘탄핵’하고자 하면서 그럼에도 식별하는 사유를 자신<br />

의 텍스트들의 내면으로 전치시키는 철학은 쉽게 자기모순의 혐의에 빠져든다”(p.534, 강조는 슈


Ⅲ.3. 긍정적 아메리카 이미지 ― ‘민주주의의 정신’<br />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21<br />

위에 서술한 것처럼 아메리카가 아도르노에게 거시적 차원에서 파국적인 발전의<br />

의미에서 진보된 사회의 이미지로 비쳐진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50년대 후반 이래<br />

직업세계와 일상의 삶에서 사람들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미시적 차원<br />

에서 지극히 긍정적 의미의 아메리카 이미지를 드러내는 일련의 진술들을 펼친다. 이<br />

것은 특히 미국에서의 학문적 경험들 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토착 미국인<br />

들이 이주해온 유럽인들보다 더 개방적이고 특히 도움을 주려는 자세를 보인다는 자<br />

신의 경험을 피력한다. 심지어 그는 유럽인들이 선입견과 경쟁의 압박 아래에서 종종<br />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적인 경향을 보이며, 어쩌면 새로 온 동료 유럽인들을 모두 자<br />

신이 적응하는 데 방해가 되는 훼방꾼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여준다고까지 말한<br />

다. 48) 또한 그는 “학계에서 민주주의적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는 협동”의 모습을 상<br />

찬하면서, 그것을 자신이 미국에서 배운 가장 생산적인 점이라고 고백한다. 49)<br />

이런 맥락에서 앞서 서술했듯이 미국에서는 이미 이루어졌고 유럽에서도 바야흐<br />

로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 즉 교수직이 ‘지식을 판매하는 자’로 전락해가는 과정이나<br />

대학의 구조에 대해 교사직에 대한 금기들 Tabus über den Lehrberuf 에서 표명한<br />

부정적 견해들은 또 다른 에세이 독일 대학들의 민주화에 대하여 에서는 완전히 긍<br />

정적인 이미지로 바뀐다.<br />

퇴크만). 그러면서 슈퇴크만은 “아도르노가 미국의 대중문화를 격렬하게 비난함으로써 풍부한 전<br />

통의 유럽중심주의적 성찰을 따랐다고” 비판한다(Ingo Stöckmann, 앞의 글, p.536). 그러나 우리<br />

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아도르노에게서 이러한 측면은 다시금 상대화된다. 한편 슈퇴크만과 유<br />

사하게 아도르노가 안티아메리카적인 문화비판의 자세로 미국에서 하게 된 ― ‘트라우마’와 같은<br />

― 개인적 체험을 엘리트주의적으로 또는 무책임하게 자기 철학의 부정적 배경으로 착취했다고<br />

과격하게 비판하는 연구자들로 한스 마이어와 다그마르 바누가 있다. Hans Mayer, Nachdenken<br />

über Adorno, in: Frankfurter Hefte 25(1970), H.4, April 1970, pp.268-280; Dagmar Barnouw,<br />

“Beute der Pragmatisierung”. Adorno und Amerika, in: Wolfgang Paulsen(Hrsg.), Die USA und<br />

Deutschland. Wechselseitige Spiegelungen in der Literatur der Gegenwart. Zum Zweihundertjährigen<br />

Bestehen der Vereinigten Staaten von Amerkia am 4. Juli 1976, Bern und München 1976, p.61-83.<br />

그러나 나는 이 연구자들 모두 아도르노의 특정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에 아도르노 사상<br />

의 양가적 측면을 고찰하고 있는 오페에 비해 균형 있는 해석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판단한다.<br />

48) Vgl.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16.<br />

49) 앞의 글, 724.


22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학생들이 권위에 종속되던 예전의 관계는 대학 체제가 미국적인 형태들과 유사해져 가는<br />

과정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해체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아마도 사회 내재적인 법칙성을 따<br />

를 것이며, 결코 피상적인 미국화로 치부될 수 없을 것이다. 50)<br />

그는 또한 “현금에 이루어지고 있는 독일 대학의 내적 민주화를 위한 노력들은 내<br />

게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친숙하다”고 고백한다. 51) 미국의 대학을 비롯해 사회<br />

상황 전체에 대한 아도르노의 평가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68 학생운동 당<br />

시 팽배한 미국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의 분위기를 반박하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것으<br />

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은 그 당시 호르크하이머의 유별난 아메리카니즘<br />

을 따르려는 의도에서 나온 방향전환으로 보는 해석과 마찬가지로 표피적이다. 우리<br />

가 그보다 더 주목해야할 점은 50년대와 60년대에 아도르노가 대학의 울타리 밖에서<br />

정치 교육이라는 과제를 열정을 갖고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치 독일과 같은<br />

어두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지식인으로서 이론적 작업 이외에 대중적인<br />

교육활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의 학문적 경험들 에<br />

서 그는 자신이 독일에 귀국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이처럼 “정치적 계몽 작업”에<br />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회고한다. 52) 그는 ‘얼치기 교양’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분<br />

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정치적 계몽의 영역에서 그것을 제대로 된 교양으로 완성시<br />

키는 일을 자신이 진력해야 할 도전적 과제로 여겼다. “사회체제의 장벽”은 그에게<br />

실제적으로나 교육학적으로 극복하고 상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비쳤다. 독일적인<br />

것이란 무엇인가 라는 논문에서 그는 “문화와 문명” 53)의 숙명적인 안티테제 관계에<br />

반대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br />

슈펭글러보다 더 오래된 문명 적대적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건너 편 대륙보다 자신들이 더<br />

우월하다고 여긴다. 그 이유는 건너 편 대륙은 냉장고와 자동차밖에 생산하지 않았지만 독<br />

일은 정신문화를 생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신문화는 고정되고 스스<br />

50) Adorno, Zur Demokratisierung der deutschen Universitäten(1959), GS 20.1, 334f.<br />

51)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24.<br />

52)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30.<br />

53) Kultur und Culture. 전자의 독일어는 유럽과 독일의 문화를 지칭하고, 후자의 영어는 미국의 문명<br />

을 지칭한다. 아울러 아도르노는 1958년 “Kultur und Culture”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다.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23<br />

로 자체목적이 됨으로써 실제적 휴머니티를 탈각한 채 자족하는 경향도 갖는다. 그러나 미<br />

국에서는 미소를 잃지 말라는 표어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타인을 위하는 분위기가 편재하<br />

는 가운데 약자의 운명에 대한 공감, 동정심, 관심도 만연해 있다. 자유를 불안하게 사유만<br />

하고 자발적으로 예속될 생각에서 자신을 비하하는 대신에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열정<br />

적인 의지는 그 의지가 실현되는 데 사회체제로 인해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는 이유 때문에<br />

그것의 좋은 점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54)<br />

그러면서 그는 “독일이 미국에 대해 보이는 오만한 태도는 정당하지 않다”고 언명<br />

한다. 55) 또한 그는 과거의 진상규명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라는 논문에서 늦게 태<br />

어난 국가인 독일이 민주주의의 도입이 늦었고, 민주주의는 전쟁에 패하면서 전승국<br />

들에 의해 도입됐는데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별로 언급하지 않는데, 그것은 민주주의<br />

체제에서 모든 것이 너무 잘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한 언급이 서방세<br />

계, 특히 미국과의 정치적 동맹관계에 반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독일인들이<br />

재교육을 받는 데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아도르노는<br />

정치적 민주주의의 체제가 지금까지 번영을 가져다주고 촉진시키기까지 한 사실만큼<br />

은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민주주의는 (독일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들의 사안<br />

으로 경험하고, 스스로 정치적 과정의 주체들로 알 정도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을<br />

54) Adorno, Auf die Frage: Was ist deutsch, GS 10.2, 697.<br />

55) 앞의 글, 같은 곳. ‘안티아메리카니즘’은 통상 유럽의 문화가 미국의 문명에 대해 갖는 우월감에<br />

바탕을 두고 있는데, 유럽적 문화 전통에 대한 이러한 우월감에 대해 아도르노는 신랄한 비판을<br />

가한다. “문화 개념을 진지하게 여기는 문화 비판이 그 문화 개념을 미국의 상황과 대결시킴으로<br />

써 토크빌과 퀴른베르거 이래 그러한 미국의 상태에 대해 무슨 반박을 제기하든 간에, 우리는 스<br />

스로 엘리트주의적으로 우리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다음의 물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br />

다. 즉 우리가 그 안에서 성장해온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낡아버리지 않았을까, 오늘날 전체적 경<br />

향을 두고 볼 때 문화에 닥치고 있는 것이 그 문화 자신의 실패에 대한 보답이고 문화가 사회의<br />

기구들에서 스스로 실현되지 않은 채 정신이라는 특수 영역에 틀어박힘으로써 스스로 짊어지게<br />

된 잘못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지<br />

만, 그것이 실현될 전망이 유럽에서처럼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Adorno, Wissenschaftliche<br />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36f.) 오스트리아 작가 페르디난트 퀴른베르거 Ferdinand<br />

Kürnberger(1821〜79)는 1855년에 아메리카 피로증(症)에 걸린 사람 Der Amerka- Müde라는 소<br />

설을 발표하는데, 단 디너 Dan Diner는 이 소설을 “독일적인 것을 우쭐대면서 인종차별주의까지<br />

쏟아내는 아메리카 적대적 팸플릿”이라고 칭했다(Dan Diner, Feindbild Amerika. Über die<br />

Beständigkeit eines Ressentiments, Berlin, 2002, p.55). 여기서 아도르노는 퀴른베르거와 토크빌을<br />

한 데 엮어 언급하고 있는데, 분화된 시각이 필요해 보인다.


22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강조한다. 56)<br />

아도르노는 이처럼 대중잡지에 강연과 논문을 거듭 발표하면서 정치적이고 교육<br />

학적인 활동을 펼치는데, 그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망명 시절 문화비판적으로<br />

의심했던 미디어인 라디오를 통해 이루어진 강연들도 많다. 그가 전후 독일 국민들을<br />

정치적으로 계몽하는 데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제시하는 메시지들에서 거론되는 모<br />

범과 척도는 점점 더 미국의 정치 상황과 미국의 민주주의가 된다. 특이한 점은 아도<br />

르노가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민주주의 정신에서의 협동”과 같이 일상<br />

의 문화를 주로 인용한다는 점, 즉 그 개념을 정부형태나 지배형태를 지칭하는 제도<br />

의 의미에서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회의 거시적 차원에서 민주<br />

주의 개념은 ‘대중기만’이라든지 대중들의 폭정, “연구소의 미신” 등 이데올로기비판<br />

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관련하여 아도르노는 미국과<br />

독일의 정치 분위기 상에서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미국이라는 국가는 시민들에 의해<br />

사회 조직의 형태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개인들의 삶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는<br />

점, 시민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위 내지 절대적인 권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을<br />

강조한다. 따라서 유럽의 국가들에 특징적인 공적인 영역이 부재하다는 것이고, 이것<br />

이 미국에 이주해온 사람이 하게 되는 강력한 경험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57) 아<br />

도르노는 자신의 미국 경험에서 민주주의의 정신이 일상의 삶 속에서 구현되고 있고<br />

그것이 바로 ‘실제적 휴머니티의 잠재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br />

더 본질적이고 행복스러운 것은 민주적 형식들의 실체를 경험한 일이었다. 민주적 형식들<br />

은 적어도 독일의 경우에는 형식적 게임 규칙들 이상의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아직도 그<br />

이상이 아니라는 점이 우려스럽다. 반면에 그 형식들이 미국의 경우에는 삶 속에 침윤되어<br />

있다. 거기에서 나는 옛 유럽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실제적 휴머니티의 잠재력을 알게<br />

되었다. 정치적 형태의 민주주의가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미국적 삶은<br />

사람들이 분주하다고 한탄하는데도 평화스러움, 온순함, 관대함의 요소가 깃들어 있는데,<br />

56) Vgl. Adorno, Was bedeutet: 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 GS 10.2, 555-72, 여기서는 559. 아도<br />

르노가 독일인들이 독일에 민주주의가 전승국들에 의해 도입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미국을 위<br />

시해 서방세계와의 정치적 동맹관계에 반할 수 있는 이유는, 만일 독일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면<br />

언제든지 반민주적 파시즘이 발호할 수 있는 불안한 나라라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으로<br />

풀이된다.<br />

57) Vgl. Adorno, Individuum und Staat(1951), GS 20.1, 290f.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25<br />

이러한 요소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오다가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폭발한 것<br />

과 같은 악의나 질투심과 비교해볼 때 현저하게 대조된다. 58)<br />

이처럼 아도르노가 미국에 체재하면서 했던 경험들은 계몽의 변증법을 중심으<br />

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이론을 정립할 때에는 부정적 사례들이나 총체적 물화의 전<br />

조들로 이용되는 반면, 귀국 후 정치적-교육적 활동과 연관하여 쓴 글들에서 제시하<br />

는 미국 이미지는 종전의 이미지를 암묵적으로 수정하면서 긍정적인 색조를 띠게 된<br />

다. 그가 학술활동과 출판활동을 통해 기울인 노력들의 보편적 주제는 독일의 과거사<br />

를 ‘진상규명’함으로써 나치 시대의 야만으로 퇴행하는 일, 특히 그 역사를 억압하거<br />

나 함부로 제거하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그는 1958년에 행한 강연 문화와 문명 에<br />

서도 미국에서의 삶을 거의 미화하다시피 회고한다. 59) 미국은 유럽대륙의 봉건적이<br />

고 절대주의적인 전통의 잔재들, 특히 혁명이 실패하고 근대화가 늦었던 독일과 비교<br />

해볼 때 절대적으로 앞서 있으며 “시민 혁명이 일어난 순수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br />

는 이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교환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까지 한<br />

다. 또한 아도르노에 따르면 모든 가능한 비공식적인 그룹들, 클럽, 학교 교실 등에<br />

까지 의회 민주주의적 형식들이 침투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확산된 평등한 연합<br />

의 문화, ‘시민 사회적’ 문화는 유럽에서보다 “전체주의적 조류에 대한 저항력”, “파<br />

시즘적 조류에 대한 저항력” 60)이 더 커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br />

이러한 언술들은 그가 문화산업론 에서 한 주장들, 즉 미국에서 전체주의적 조류<br />

가 정치, 경제, 문화 부문에서 이미 주도권을 잡았다는 진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아<br />

도르노는 미국에 대한 자신의 이 ‘양가감정’의 수수께끼를 변증법적으로 해결하지 않<br />

은 채 아무 해명 없이 내버려 두고 있다. 61) 이 양가감정을 아도르노를 비롯해 그의<br />

58)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35.<br />

59) Vgl. Adorno, Kultur und Culture, in: Hessische Hochschulwochen für staatswissenschaftliche<br />

Fortbildung, Bd.23, Bad Homburg etc: Max Gehlen, 246-259.<br />

60) Adorno, Wissenschaftliche Erfahrungen in Amerika, GS 10.2, 735.<br />

61) 한 연구자는 “아도르노의 미국 비판은 미국에 대한 그의 진정한 ‘애정’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하<br />

면서, 이러한 양가감정이야말로 오히려 아도르노가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한 말, 즉 “자유는 흑<br />

백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규정된 선택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일일 것이다”(MM<br />

150, 85번째 단편)라는 명제를 확인시켜준다고 주장한다. “미국에 대한 아도르노의 반응, 애정과<br />

비판이 혼합된 감정, 그가 느낀 두려움과 매력은 이러한 양가감정의 포용이라는 시각에서 이해되


22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이론에 내재한 본질적 모순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만, 미국 사회의 파시즘적 경향에<br />

대한 우려가 아도르노 생전이나 생후에도 현실이 되지 않았고 미국이 다양한 발전과<br />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모순적 측면에 닿아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br />

고 그 모순들은 쉽게 해결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 모순들은 아도르노의 사<br />

상과 비판이론의 실패를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모순을 열<br />

린 변증법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이론과 현실을 끊임없이 대결시키면서 우리가 역사<br />

속에서 수행할 몫으로 남겨져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순들은 오늘날까지도 유럽의<br />

지식인들,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의 문화를 바라보는 데 여전히 작용하고<br />

있다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br />

Ⅳ. 나가며 ― 새로운 ‘미국의 세기’?<br />

이상에 살펴본 아도르노와 미국의 관계는 유럽에서 2백여 년 간 지속되어온 아메<br />

리카니즘과 안티아메리카니즘이 한 사상가 내에서 착종하는 양상을 보여주면서 많은<br />

의문점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 아도르노를 통해 본 유럽과 미<br />

국의 관계는 그로부터 반 세기가 흐르면서 두 대륙을 비롯해 세계 전체가 정치적, 경<br />

제적,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바<br />

라볼 필요가 있다.<br />

1990년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한 이래 미국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br />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다.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자본주의 체제<br />

에서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더욱 거세게 일어왔고 그 중심에 미국이 있다. 그렇기 때<br />

문에 오늘날 한국에서도 세계화는 미국화를 뜻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회자되고 있<br />

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여러 차례 경제적 위기도 생겨났고 이러한<br />

위기는 최근에 유럽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한편 여러 계<br />

기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세계화 시위들이나 최근의 ‘반 월가 시위’에서 드러<br />

나듯이 사회 양극화를 비롯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오는 폐해들을 막기 위해 대<br />

어야 할 것이다.”(David Jenemann, Adorno in Amerika,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br />

2007, 188f.)


안적 세계화의 모델에 대한 모색도 계속되고 있다.<br />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27<br />

20세기가 야만의 시대이자 평화와 자유의 이름으로 그 야만과의 전쟁을 주도한<br />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에 들어 미국은 또 하나의 “미국의 세기”를 시작하고 있<br />

다. 게다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지구촌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미국이 “테러<br />

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주도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볼 수 있<br />

듯이 미국은 점점 더 자국의 이해관계를 협상보다는 무력으로 관철시키는 양상도 보<br />

여준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두고 보자면, 그 관계는 물론 유럽 국가들은 국가마다<br />

약간의 편차를 보이긴 하지만 20세기에 세계사적 격랑을 헤쳐 오면서 많은 부침과<br />

변화를 겪었다. 유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동맹<br />

관계(나토)를 유지하며 동질화 과정을 겪어온 한편, 문화, 경제, 정치의 구조에서 여<br />

전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차이와 이질성은 “구 유럽”(낡은 유럽, Old Europe)과<br />

미국의 관계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br />

국가와 개인의 관계, 종교의 의미, 경제 질서, 문화의 역할 등에서 보이는 차이이다.<br />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 연구자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br />

시대에도 안티아메리카니즘이 계속 작용해왔는데, 특히 늦어도 9.11 테러 이후 유럽<br />

과 미국의 관계는 안티아메리카니즘을 벗어나 체제의 갈등으로 변화를 하는 양상을<br />

보인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인들이 미국적 생활방식과 가치들에 맞서 유<br />

럽 고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62)<br />

분명한 것은 이러한 연구와 성찰들이 차이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고착시키거나<br />

문화 내지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을 예견하고 심지어 불러내는 데 목적이 있<br />

지 않다는 점, 즉 양 대륙, 나아가 전 세계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계를 건설하는 데<br />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1세기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가 아니라 나라와<br />

문화들이 서로로부터 배우는 세기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점에서 경쟁과 시장의 자<br />

유를 의미하는 자유를 넘어선 진정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를 위한 비판적<br />

성찰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br />

는 연구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br />

62) Alexander Stephan, Vom Antiamerikanismus zum Systemkonflikt. Deutsche Intellektuelle und ihr<br />

Verhältnis zu den USA, in: Jochen Vogt/ Alexander Stephan, Das Amerika der Autoren: Von Kafka<br />

bis 09/11, München: W. Fink Verlag 2006, pp.407-29, 여기서는 427f.


22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참고문헌<br />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2권, <strong>최성만</strong> 옮김, 길, 2007.<br />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5권, <strong>최성만</strong> 옮김, 길, 2009.<br />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전2권, 임효선, 박지동 공역, 한길사 1997.<br />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I권, 최인호 외 옮김, 박종철출판사,<br />

1994(1판 4쇄).<br />

Adorno, Theodor W., Gesammelte Schriften, 20 Bde, Unter Mitwirkung von Gretel<br />

Adorno, Susan Buck-Morss und Klaus Schultz hrsg. v. Rolf Tiedemann,<br />

Frankfurt a. M. 2003.(특히 Bd.3: Max Horkheimer/ Th. W. Adorno, Dialektik<br />

der Aufklärung = DA; Bd.5: Minima Moralia = MM; Bd.10.1: Kulturkritik und<br />

Gesellschaft I; Bd.10.2: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II.)<br />

Adorno, Theodor W., Kultur und Culture, in: Hessische Hochschulwochen für<br />

staatswissenschaftliche Fortbildung, Bd.23, Bad Homburg etc: Max Gehlen,<br />

246-259.<br />

Adorno, Theodor W., Briefe an die Eltern 1939-1951, Frankfurt a. M. 2003.<br />

Barnouw, Dagmar, “Beute der Pragmatisierung”. Adorno und Amerika, in: Wolfgang<br />

Paulsen(Hrsg.), Die USA und Deutschland. Wechselseitige Spiegelungen in d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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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n, Walter, Gesammelte Schriften. Bd. I-VII, Frankfurt a. M. 1972-1989.<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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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nner, Peter J., Vom 4. Juli zum 11. September. Die deutschen Intellektuellen und ih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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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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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mas, Jürgen, Der philosophische Diskurs der Moderne. Zwölf Vorlesungen,<br />

Frankfurt a. M. 1985.<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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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üngers Frühwerk, in: Wirkendes Wort 39(1989), H.1, März/April 1989,<br />

pp.95-111.<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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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ka der Autoren: Von Kafka bis 09/11, München: W. Fink Verlag 2006,<br />

pp.407-29.


23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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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öckmann, Ingo, Vollendetes Verhängnis. Adornos Amerika, in: Weimarer Beiträge 47<br />

(2001), H. 4, pp.525-39.<br />

Zusammenfassung<br />

Das Amerkabild im deutschen Intellektuellen-Diskurs des 20.<br />

Jahrhunderts unter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von Adornos Verhältnis<br />

zu Amerika<br />

Choi, Seong Man (Ewha Frauen Uni)<br />

In dieser Studie habe ich herauszuarbeiten versucht, welches Amerika-Bild (d. h.<br />

der USA) unter den Intellektuellen der Weimarer Republik in Deutschland<br />

vorherrschte, auf welche Weise dieses Bild sich in den Diskursen geformt und wie es<br />

gewirkt hatte. Darüber hinaus habe ich anhand des kulturkritischen Denkens und der<br />

Theoriebildung bei Theodor W. Adorno verfolgt, welche Spuren dieses Bild in seinen<br />

theoretischen Reflexionen als politischer und ideologiekritischer Code hinterlassen hat.<br />

Seitdem die Modernisierung auf allen Bereichen der Gesellschaft vorangetrieben<br />

wurde, galt Amerika den Deutschen unter anderem als ein Vorbild für den Prozess der<br />

kapitalistischen Modernisierung. Es war in diesem Zusammenhang vom Amerikanismus<br />

die Rede – ein Ausdruck, der bereits die Ausrichtung Europas bei diesem Prozess<br />

nach Amerika hin impliziert. Aber andererseits gab es die Welle des in der Tradition<br />

tief verwurzelten Antiamerikanismus, der aus dem Überlegenheitsgefühl der


근대 독일의 지식인 담론에 나타난 아메리카 이미지 231<br />

europäischen Kulturnationen gegenüber Amerika als dem Symbol der Zivilisation<br />

entsprang.<br />

Dieser Zwiespalt im Amerika-Bild spiegelte sich in den Diskursen der<br />

Intellektuellen der Weimarer Republik, dem Zeitalter der sogenannten “Neuen<br />

Sachlichkeit”, wider und führte im Zusammenhang mit dem Konflikt zwischen dem<br />

links gerichteten, progressiven Lager einerseits und dem konservativen Lager<br />

andererseits zu komplizierten und oft widersprüchlichen Betrachtungsweisen.<br />

Eben in diesem Sinne erscheint Adornos Verhältnis zu Amerika, wenn nicht in sich<br />

widersprüchlich, so doch zwiespältig und ambivalent. Wie es in Dialektik der<br />

Aufklärung und Minima Moralia zu sehen ist, gilt ihm Amerika als ein Land, das<br />

unter dem glänzenden Gesicht des sich fortschreitenden Kapitalismus totalitaristische<br />

Züge und Tendenzen der Zivilisation verbirgt. Ihm hat sich das Land als “die<br />

fortgeschrittenste Beobachtungsposition” geboten, von der aus er prognostizieren<br />

konnte, dass andere Länder, vor allem in Europa, sich auf einen ähnlichen Zustand<br />

hinbewegen würden. Diese kultur- und ideologiekritische Perspektive spielt nun in der<br />

Theoriebildung der Kritischen Theorie eine zentrale Rolle. Die Gesamtentwicklung der<br />

Welt stand dabei im Zeichen der “Destruktivität des Fortschritt”, des “Janusgesicht(s)<br />

der Vernunft”, der “Aufklärung als Massenbetrug”.<br />

Aber nach der Rückkehr in die Heimat nach dem Ende des zweiten Weltkriegs, vor<br />

allem in den 60er Jahren, häufen sich in seinen Reden und Essays Äußerungen, in<br />

denen Amerika als ein Land mit dem “Potential realer Humanität” durchaus positiv<br />

bewertet und als ein den “Geist der Demokratie” verkörperndes Land gepriesen wird.<br />

Dennoch beziehen sich diese positive Bewertungen nicht auf politische Institutionen<br />

oder die Kultur von Amerika. Sie beruhen vor allem auf den persönlichen Eindrücken,<br />

die er während seiner Exilzeit im Berufs- und Alltagsleben in Amerika gewonnen<br />

hatte. Die nicht autoritären Beziehungen der miteinander frei kooperierenden<br />

Menschen, in denen er den Geist der Demokratie verwirklicht sah, hatten ihm ein<br />

positives Gegenbild zu den kulturkonservativen und technikfeindlichen Europäern<br />

geboten. Aber Thesen wie die, dass es in Amerika eine “größere Resistenzkraft gegen


23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totalitäre Strömungen gibt”, stimmen mit der Behauptung aus dem<br />

Kulturindustrie-Kapitel der Dialektik der Aufklärung, dass eben solche totalitären<br />

Strömungen in Politik, Wirtschaft und Kultur der USA die Oberhand gewonnen haben,<br />

nicht überein. Adorno hat jedoch kaum einen Versuch unternommen, die Ambivalenz,<br />

die in seinen Amerikabildern deutlich zu spüren ist und sich manchmal in<br />

Widersprüche zuspitzt, im Denken dialektisch zu vermitteln. Über diese Ambivalenz,<br />

die womöglich für den Wahrheitsgehalt seines theoretischen Denkens spricht, mit den<br />

inzwischen veränderten Bedingungen der Welt heute weiter nachzudenken, ist uns zur<br />

Aufgabe gegeben.<br />

Keyword<br />

(한글/독일어)<br />

근대<br />

die Moderne<br />

안티아메리카니즘<br />

Antiamerikanismus<br />

새로운 야만성<br />

Neues Barbarentum<br />

⋅필자 E-Mail: smchoi@ewha.ac.kr (<strong>최성만</strong>)<br />

아메리카니즘<br />

Amerikanismus<br />

아도르노<br />

Adorno<br />

문화산업<br />

Kulturindustrie<br />

⋅투고일: 2011년 12월 10일/ 심사일: 2012년 1월 10일/ 심사완료일: 2012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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